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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넘어지시지 않게 조심 하세요”  

 

 인산인해를 이루는 시청의 촛불 집회 현장을 향해 가던 할머니에게 중년 남성이 던진 말이다. 한 편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여성이 먼저 갈 수 있게 사람들이 좁은 길을 비켜준다. 6월 10일 항쟁이 있던 날에 열릴 대규모 시위라며 정부는 경찰력을 더 동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21년이 지난 시위 현장은 성숙한 시민 정신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무력에 대항할 준비 태세를 갖춘 시위 진압대의 모습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외치며 조용히 촛불을 켜든 사람들과 대조적이었다. 광화문의 프레스 센터 앞에는 최대 인원이 촛불 시위에 나올 것이란 예상으로 취재를 나온 방송사가 ENG 카메라로 시민들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고 시민들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삼삼오오 집회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처음 촛불 집회에 참여한다는 오채영(26. 여)씨는 이명박 아웃이라는 메시지를 몸에 부착하고 피켓을 든 채 “이명박 물러가라”를 외쳤다. “언론에서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고 저희가 모르진 않잖아요. 신문에서 쉬쉬해도 인터넷을 통해서 진실을 알 수밖에 없는데 왜 자꾸 조중동은 숨기려고만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친구와 쇠고기 문제에 대해 얘기하다가 화가 나서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때 여기저기서 들리던 확성기 소리며 노랫소리가 잠잠해지더니 하나의 확성기 소리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고 이병렬씨는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며 늘 선행에 앞장서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고인을 위해 묵념합시다.”

 

지난 5월 2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와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이병렬씨를 위한 묵념이었다. 묵념은 잠깐 동안 이뤄졌지만 대중은 그 잠깐 동안 고인을 추모하며 침묵했다. 프레스센터 건물 앞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서 촛불을 들고 있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도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묵념이 끝나자 아내는 가지고 나온 보온병에서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시곤 다시 집회가 열리는 곳을 바라보지만 남편은 긴 숨을 내쉬었다.  

 

 “21년 전 시위가 있던 날 최루탄 냄새가 곳곳에서 났는데도 장사하느라 먹고살기 바빠서 시위에 동참할 수 없었어.”라고 당시 상황을 말하는 박지후(56. 남)씨는 “오늘이 3번째 집회 참여인데 이제야 마음의 빚을 갚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직접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걸 보니 마음이 흐뭇하다”고도 했다. 당시와 지금 상황의 공통점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정부나 일부 언론사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래도 지금은 평화적으로 최루탄 냄새 없는 상황에서 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그동안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촛불 드는 사람은 늘어갔고 곳곳에서 타오르는 초 냄새가 진동했다. 어둑어둑해질수록 주위를 밝히는 촛불로 인해 거리는 낮보다도 환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속에서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힐끔힐끔 촛불집회 현장을 바라보다 가던 길을 간다. 이방인들의 눈에 촛불 집회는 어떤 모습일까 싶어 금발에 파란 눈의 외국인 곁으로 다가갔다. “Excuse me"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명한 발음이지만 불안정한 억양으로 ”한국말 조금 할 줄 알아요.“라고 대답한다.

 

미국에서 왔다는 너대니얼 콜(24. 남)씨는 자신이 미국인이지만 이런 한국의 상황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자신도 한미 FTA 반대자라는 그는 “한국에서 1년 살면서 한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미국인으로서 양쪽의 상황에서 생각할 때 정치적이긴 하지만 한미 FTA의 협상 과정은 옳지 않았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그 와중에 몇몇 외국인들은 아예 팜플렛까지 들고 집회 현장을 누볐다.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동료들끼리 집회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촛불 집회 현장의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시위라기보다는 축제의 현장에 가까웠다.  

 

친구들과 나왔다는 21살의 대학생이라고만 자신을 밝힌 한 남학생은 “처음 촛불 집회에 참석해 보는 이 경험이 마냥 즐겁다”고 하며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같이 인터넷을 통해 흥미를 느끼게 돼서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제 참여가 변화를 일으키는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앳된 모습의 남학생은 양손에 촛불을 들고 사뭇 진지하게 말하다가 또 다른 친구가 곧 오기로 했다며 자리를 떠났다. 인터넷의 영향을 받는 웹 2.0 세대답게 길거리엔 현장 장면을 바로 찍어서 전송할 각종 장비들로 무장한 시민들로 넘쳐났고 현장 상황은 문자 메시지와 동영상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한 손엔 촛불을 다른 한 손엔 핸드폰이나 카메라들 든 모습이 과거의 시위현장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며 서로를 격려하던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우리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가 반복되는 노래가 시민들의 외침과 같이 반복되면서 그렇게 집회 현장의 밤은 깊어만 갔다. 

 

 


#촛불시위#6월 10일집회#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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