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윤리위원회 참석해 주세요"
전화벨이 울리더니 친절한 목소리의 여성이 참석을 종용한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아! 맞다. 나 동물실험윤리위원이지. 지난 2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가서 교육을 받고 그 자격을 얻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그런데 위치를 물으니 위원회의가 열리는 곳은 수원이라 너무 멀고(내가 사는 곳은 서울 강북), 내가 한창 책을 한 권 마감 중이라 영 참석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분에게 연락하면 어떻겠냐 했더니 가능한 사람이 없단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열려면 적어도 한 명은 동물보호단체에서 추천한 동물실험윤리위원이 참석해야 하니 회사로서도 다급한 일인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참석하기로 했다.
내가 교육을 받을 때 그래도 꽤 여러 분이 교육을 받으셨는데 모두들 시간을 내기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 거주지 근처만 커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동물의 복지가 인간의 허영에 우선한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개정되어 올 초 발효된 동물보호법에 의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제도이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란 동물실험에서의 생명윤리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실험에 한해 동물실험을 허가하는 제도이다.
물론 이 제도는 국내 동물단체의 요구도 있었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동물복지에 관한 부분이 강화되면서 FTA 등 국제협상의 의제로 논의되어 무역장벽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마련된 면이 클 것이다. 하지만 계기야 어쨌든 동물실험에 관한 제재 장치가 마련된 것은 동물애호가의 입장에서 쌍수 들어 반길 일이고 앞으로 동물보호단체들이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동물의 복지가 인간의 허영에 우선한다’고 결정하고 2009년까지 화장품 성분 동물 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2013년에는 동물실험을 통해 만든 화장품의 생산과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로서도 대비가 급박해진 것이다.
위의 경우는 작은 예로 실제로 OIE(국제수역사무국-최근 정말 지겹게 많이 들은 단체 이름^^;;;)는 2005년에 농장동물의 운송과 도축에 관한 복지가이드라인을 제정하였고, 실험동물에 관한 복지가이드라인도 마련중인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유럽연합과의 FTA에서 동물복지가 이슈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로서도 어쨌든 제도를 만들어 놓긴 놔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동물실험의 천국인 한국과 미국
내가 처음 동물실험문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 전까지는 나는 내가 쓰는 수 많은 일상용품들이 동물실험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샴푸, 화장품, 의약품, 세제 등이 동물들의 고통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고통스러웠다.
이 책에는 수 많은 동물실험의 사례가 나오는데 샴푸나 잉크 등의 물질이 토끼의 눈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자극을 주느냐를 실험하기 위해 얼굴만 내 놓고 움직일 수 없는 고정장치에 고정된 토끼들의 이야기가 그 중 덜 충격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고정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토끼가 괴로워할 때 눈을 긁거나 비비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토끼의 눈에 샴푸 등을 넣고 눈에 종기, 궤양, 출혈 등이 생기는지 조사한다. 실험 중 토끼는 비명을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지만 꼼짝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통증은 인간에 비해 훨씬 크다고 한다. 결국 실험용 토끼들은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다.
알고 나니 이런 잔인한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다. 제품을 살 때면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는지의 여부를 살펴보게 되었고 이런저런 책을 보며 공부를 하다가 결국 동물실험윤리위원까지 가게 된 것이다. 동물실험을 없앨 수 없다면 줄이기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에. 그간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동물실험의 천국인 나라였으니까.
턱없이 부족한 동물보호단체 윤리위원
국제무역 때문이든 어쨌든 만들어진 제도이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 제도를 동물보호단체들이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는 것인데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단 동물보호단체에서 추천할 수 있는 윤리위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원에서 나한테까지 연락이 왔지.) 동물실험은 하는 곳에서는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실험을 하는데 동물단체에서 추천할 수 있는 윤리위원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제가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데요, 회사에서 제게 동물단체 쪽 동물실험 윤리위원이 되라고 요구를 하네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내가 동물실험윤리위원 교육 받은 얘기를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온 쪽지이다.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의 직원은 원칙적으로 동물단체에서 추천하는 윤리위원이 될 수 없음에도 이런 식의 편법을 준비하는 곳이 벌써부터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건 동물보호법 14조에 근거해서 위법이라고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연락해 보라고는 했지만 그가 회사의 압력을 피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이런 편법이 눈에 보이다니 과연 이 제도가 원래의 취지에 맞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편법을 감시하는 것도 동물보호단체의 몫이겠지만.
내 사인으로 마우스 3천 마리가 실험용이 되다
그날 나는 강북에서 수원까지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며 정확하게 2시간이 걸려 회사에 도착했다. 가기 전 동물실험에 관한 책을 몇 권 뒤적이고, 아는 수의사를 통해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사전 지식을 갖고 갔지만 정작 내가 이번 동물실험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어떤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지는 도대체 자신이 없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이번 동물실험에 관한 개요를 들었다. 이곳은 내가 사전에 조사한대로 동물들의 의약품을 만드는 곳이었고, 이번 동물실험은 약품을 만드는 재료를 개발하는 것이었다(윤리위원의 규약상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이번 실험에는 마우스 3천 마리가 사용되는데 마리당 1만원이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으로서는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경제적인 이유로도 최소한의 동물만을 실험용으로 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마우스 사육 공간도 둘러봤고, 실험용으로 쓰인 마우스들의 안락사 과정까지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연구자들의 성실한 답변을 들었지만 전문적인 이야기는 도대체 들어도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나는 마우스 3천 마리를 실험용으로 쓰는 실험에 윤리위원으로 사인을 했다. 내 사인에 의해 마우스 3천 마리가 죽는다는 생각에 그 책임감에 사인하는 펜이 얼마나 떨리던지. 사인을 하며 물었다.
“원래 마우스는 자연 수명이 어떻게 되나요?”
“한 1년 정도 될 겁니다.”
“그럼 실험에 쓰인 마우스는요?”
“12주 정도 사육되다가 8주 정도 실험하게 되니까 20주 정도 되는 거네요.”
20주면 5개월이니 자연수명의 반도 살지 못하는 것이구나. 그것도 실험실에 갇힌 상태로. 미안하다.
동물실험에 더 많은 관심을...
오는 길에 아는 분을 잠시 만났다. 대형견 훈련을 위해 훈련소에 맡겼는데 보고 싶어서 먹을 것을 잔뜩 가지고 훈련소를 찾은 것이다. 방금 동물실험 동의서에 사진을 하고 온 나로서는 행복한 그 강아지를 보니 마우스들에게 더 미안할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일본의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일본은 동물실험 관련 법안이 아직 없다며 이번에 개정된 한국의 동물보호법을 부러워했다. 그렇구나. 우리가 일본보다 나은 동물 관련 법이 있었구나.
하지만 제도가 좋은들 뭐할까. 활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 테니 많은 동물애호가들이 동물실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한국동물보호연합(http://www.kaap.or.kr/)을 비롯한 여러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상시적으로 동물실험 윤리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얼마 전 많은 사람을 울렸던 밤톨이를 기억하는지. 유기견으로 버려져 실험용으로 쓰이다가 다시 버려진 밤톨이. 앞으로는 이런 밤톨이도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된다. 개정된 동물보호법 제13조 6항에는 유기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동물실험은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 그날 그곳 회사에서는 내게 교통비라며 10만원을 주었다. 내가 들인 교통비와 시간 소비를 생각하니 적당한 액수라고 생각했다. 그 돈을 받아 와 한국동물보호연합에 후원금으로 보냈다. 오늘 나의 사인에 의해 죽어가는 3천 마리 마우스에 대한 죄스러움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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