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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하나는 작은 불빛일 수 있습니다
촛불 하나는 작은 불빛일 수 있습니다 ⓒ 김형태

 그러나 높이 치켜든 촛불은 횃불이 될 수 있고...
그러나 높이 치켜든 촛불은 횃불이 될 수 있고... ⓒ 김형태

 

[촛불집회 기념시] 모이면 커집니다

   - 시 / 리울 김형태

   반딧불이 하나는

   별 볼일 없는 작은 불빛입니다.

   그러나 모이고 모여 백을 이루면

   결코 작지 않은 불빛입니다.

 

   장작개비 한두 개는

   해볼 일 없는 낮은 불꽃입니다.

   그러나 합치고 합쳐 백을 이루면

   세상을 태우고도 남을 큰 불꽃이 됩니다.

 

   물방울이 어깨동무하듯 모이고 모여 

   시내를 이루고 강을 만들고

   끝내는 육지보다 큰 바다를 이룩하는 것처럼……

 

   각각 흩어져 홀로 있는 촛불은

   낮은 어둠밖에 몰아낼 수 없지만

   모이고 모여 수십, 수백 개가 하나를 이루면

   태양빛에 오금이 저려 꼬리 내린 낮달처럼

   높은 어둠도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하나의 촛불은 외롭지만, 그러나 둘이 모이면 정겹고...
하나의 촛불은 외롭지만, 그러나 둘이 모이면 정겹고... ⓒ 김형태

 

지난 6월 10일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밝혔습니다. 말 그대로 촛불의 물결이요, 촛불의 바다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촛불집회를 21년 전 6월 항쟁과 비교, 대조합니다. 87년에는 분명한 주도 세력이 있었고, 독재 타도를 외치는 운동권 중심에 넥타이 부대 등 시민들이 가세했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으며, 목숨 건 투쟁에 하루하루 목이 타들어가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셋, 넷, 다섯... 모이고 모이면 결코 작은 불빛이 아닙니다~
셋, 넷, 다섯... 모이고 모이면 결코 작은 불빛이 아닙니다~ ⓒ 김형태

 

그러나 현재 전개되는 있는 촛불집회는 분명한 주도세력 없이 여중생부터 아주머니, 유모차 부대, 휠체어 부대, 예비군 부대, 연인, 가족 등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쏟아져 나와, 할 말 다하고 즐기는 놀이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 축제의 한 마당을 보는 같습니다. 그래서 긴장과 초조보다는 웃음과 즐거운 모습들입니다.

 

80년대 시위와 집회가 군사독재라는 어둠을 물리치려는 것이었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는 우매한 정부를 깨우치려는 성숙한 시민들의 조롱과 냉소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수 위의 여유와 세련됨이 돋보입니다.

 

 위정자들은 왜 촛불을 치켜든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할까요?
위정자들은 왜 촛불을 치켜든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할까요? ⓒ 김형태

 

80년대 정국에도 허균의 '호민론'이 떠올라 읽었는데, 요즘 다시 자꾸만 '호민론'이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허균의 호민론을 다시 읽다

 

천하에 두려워할 대상은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홍수나 화재 또는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업신여기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는데 어째서 그러한가? - 백성을 소홀히 다루는 현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고, 늘 보아 오던 것에 익숙하여 그냥 순순하게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항민(恒民 : 온순한 백성)이다. 이러한 항민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모질게 착취당하여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집안의 수입과 땅에서 산출되는 것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이바지하느라, 혀를 차고 탄식하면서 윗사람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원민(怨民 : 원한을 품은 백성)이다. 이러한 원민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세상을 흘겨보다가 혹시 그 때에 어떤 큰일이라도 일어나면 자기의 소원을 실행해 보려는 사람들은 호민(豪民)이다. 이 호민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다.

 

호민이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편을 이용할 만한 때를 노리다가 팔을 떨치며 밭두렁 위에서 한번 소리를 지르게 되면, 원민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서도 소리를 지르고, 항민도 또한 제 살 길을 찾느라 호미, 고무레, 창, 창자루를 가지고 쫓아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백성들의 세 가지 유형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도 기꺼이 촛불집회에 함께 하였습니다~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도 기꺼이 촛불집회에 함께 하였습니다~ ⓒ 김형태

허균은 ‘호민론’에서 백성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항민은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사고나 의식이 없이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면서 얽매인 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원민은 수탈당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항민과 마찬가지이나 이를 못 마땅하게 여겨 윗사람을 탓하고 원망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원망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행동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위정자들이 볼 때, 항민과 원민은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들었나요? 그리고 보았나요? 들불처럼 타오르는 이 촛불의 함성과 물결을!
들었나요? 그리고 보았나요? 들불처럼 타오르는 이 촛불의 함성과 물결을! ⓒ 김형태

 

허균에 의해면, 진정 두려운 것은 호민이라고 합니다. 호민은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호민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저절로 모여들고, 항민들도 또한 따라 일어서게 된다고 말합니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어쩌면 선량한 백성들이 민중봉기로 발전하는 3단계를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그저 순종적으로 살아가던 백성들(항민)이, 거듭되는 학정과 폭정에 불만이 쌓여가다가(원민), 마침내는 마음 속 불만을 표출하는 집단행동(호민)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80년대 군사독재정권은 참으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투사로 내몰았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80년대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느낌에 마음이 씁쓸합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도 선량한 국민을 자꾸만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이 촛불의 함성과 물결을 과연 콘테이너박스로 막을 수 있을까요?
이 촛불의 함성과 물결을 과연 콘테이너박스로 막을 수 있을까요? ⓒ 김형태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과 서울방송 등의 매체에도 송고합니다.


#리울#김형태#시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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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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