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頭陀)'란 불교용어로 출가수행자가 무소유의 정신으로 세속의 모든 욕심을 떨쳐 버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한 수행을 의미한다. '청옥(靑玉)'은 산채나물의 한 종류로 청옥산 정상 주변에 곤드레 나물과 더불어 자생하는 식물의 이름이다. 두타(頭陀山, 1352.7m)산은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 정선군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동해시 삼화동에서 서남쪽으로 약 10.2Km 떨어져 있다.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을 품고 있으며 박달재를 사이에 두고 청옥산(靑玉山,1403.7m)과 연결되어 있다. 백복령을 지나서 남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이 동해시, 정선군, 삼척시를 조망할 수 있는 고적대로 연결되고 남동쪽으로 힘차게 뻗은 태백산맥의 주봉을 이루는 두 개의 봉우리가 청옥과 두타산이다. 두타산은 가파른 두타산성과 압도하는 큰 바위가 많아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릿지와 암벽코스로 이용되는 암장이 있는 피라미드 모형을 하고 있어 골(骨)산으로 불리는 반면, 청옥산은 주변 능선이 비교적 완만하고 정상 주변에 볍씨가 6백두락이나 된다는 의미에서 '육백마지기'라 불리는, 고랭지 채소 재배의 적지인 평탄한 고원이 펼쳐져 있어 육(肉)산이라 불린다. 북으로 오대산을 등반했고 남으로 태백산을 등반한 나와 집사람에게는 태백산과 오대산 사이의 백두대간을 받치고 있는 양 기둥 두타·청옥은 언제나 가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였으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인도어 클라이밍(indoor climbing, 실제 등산을 하지 않고 책이나 지도로 등산 기분을 느끼는 것)을 해오는 산이다.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산골에 살고 있는 첼리스트 도완녀씨와 메주스님 돈연 스님의 생활 얘기를 담은 도완녀씨의 책을 읽고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준 넉넉한 삶의 도장인 두타·청옥을 더욱 그리게 됐다. 나는 집사람과 가끔 나누는 메주스님 내외의 생활에 관한 얘기를 통해 우리 나름의 미래 삶을 그려보곤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에서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하는 두타산까지 차로 6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거리이다. 평소 일요일 하루밖에 허락되지 않는 우리의 산행일정에 두타산 산행은 부담스러워 지금까지 산행계획을 세우지 못한 산이다. 전전 주일에 지리산, 전 주일에 월악산을 등반한 나는 내친 김에 이번 주는 미루고 미룬 두타·청옥산 등반계획을 세웠다. 집사람은 6주간 한번도 쉬지 않고 주말마다 계속된 산행 때문에 피곤이 누적된 상태라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갈등하는 모습이다. 평소대로 집사람이 가게를 마치고 두타와 청옥을 향해 출발하니 저녁 10시 30분이다. 단번에 동해시까지는 너무 벅차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을 자야 한다. 어렵고 귀한 기회라 욕심을 부리다 보니 등반일정에 무리가 따른다. 지도 및 안내 책자를 통해 계획된 등반거리를 계산해보니 33km이며 예상 등반시간이 12시간이다. 토요일 저녁 11시부터 월요일 아침 9시까지 34시간 동안에 왕복 12시간 운전, 12시간 등반, 6시간 수면 시간을 빼면 4시간이 식사를 포함한 기타 시간이다. 가능할까? 이건 작전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2시간 30분을 달려 일요일 새벽 2시가 되자 영동고속도로 소사 휴게소에 이른다. 피곤을 감당하기 힘들고 집사람도 신경이 날카로워 이 시간을 넘기면 잠을 이룰 수 없다. 바로 취침 준비를 끝내고 집사람과 나는 깊은 잠에 빠진다. 눈을 뜨니 5시 20분이다. 약간 피곤하지만 정신은 맑다. 집사람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차를 정숙하게 운전하면서 강릉을 향해 새벽을 가른다. 대관령 가까이 이르자 집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대관령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가잔다. 대관령 휴게소의 황태 국밥은 일미였다. 영동고속도로 휴게소들의 환경은 정결하고, 주변 경관 또한 뛰어나 좋은 인상이다. 강릉을 지나 동해시에 이르고 거기서 20여분 거리의 두타산 자락에 이르니 아침 8시이다. 수면부족 때문에 바로 산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시 잠자리에 누어 한숨 붙이고 일어나니 9시이다. 비로소 밖으로 나가 두타와 청옥과 상견례를 한다. 정상은 보이질 않고 멀리 고적대 정상이 보인다. 아주 멀다. 팔다리를 펴고 심호흡을 해보나 약간 겁이 난다. 집사람은 두타와 청옥산을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에 위치하는 한적한 이름 없는 산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금난정과 무릉반석은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풍류를 대변한다.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매표소를 지나 20여 분 가벼운 기분으로 걷다보니 정결한 고찰 삼화사가 반긴다. 여행안내 책자의 내용에 의하면 월정사 말사인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서기 642년) 두타산 무릉계곡에 지장율사가 창건한 고찰로 몇 차례 소실과 복구를 거듭하다가 계곡 아래로 이전한 후 지금까지 전해온단다. 무릉계곡과 같은 방향으로 난 등산로는 두타산과 청옥산의 갈림길에 이르고 푯말에 따라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산성터에 이른다. 흰색이 도는 거대한 입석들을 대하는 순간 말이나 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다. 문수보살의 청산유수 같은 설법보다 유마거사의 벼락같은 침묵이 진리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하지 않던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다가 정신을 차려 등산로를 찾으니 두타산 정상 7.8km라고 쓰인 푯말이 보인다. 한 시간 반 동안 2.4km 왔는데 앞으로 7.8km 라니, 무릎에 힘이 쭉 빠진다. 11시 25분 출발 후 2시간 가까이 되자 우리는 깔딱고개 입구에 도달하였다. 집사람은 지친 빛이 역력하다. 집사람 짐의 무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의 바위를 찾아 앉는다. 주변에 우뚝우뚝 솟은 적송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령이 족히 100년은 넘을 것 같다. 산과 나무는 불가분의 관계다. 산의 격을 올리는 것으로 적송 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주변의 적송군락을 감상하며 묵묵히 걷는다. 집사람은 앞에서 걸으나 자꾸 보폭이 좁아지고 속도가 느려진다. 나도 숨이 차고 지친다. 주변 공기는 습기가 많다. 바람 한 점 없어 매우 무덥다. 가파른 깔딱고개를 겨우 올라서니 우측에 청옥산이 주변 나무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도에서 보면 두타와 청옥을 잇는 북사면(北斜面)이 가파르다. 나는 바위가 많은 악사면(岳斜面)을 기대했으나 실제 북사면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용추폭포 부근과 건너편 고적대와 갈미봉에 이르는 능선에 바위와 숲이 어우러져 그 위용이 대단하다. 능선 상에는 바람 한 점 없다. 심한 무더위다. 등반일정의 1/4밖에 오지 않았는데 준비한 물은 절반밖에 없다. 물을 정확히 계량하여 마시고자 적은 병으로 나눠 담으면서 등반 시간과 비율을 맞춰 마신다. 집사람은 보통과 달리 신중해하는 나의 행동에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를 하는 듯하다.
출발 후 3시간에서 다시 20여분이 지나 두타산 성터에 이른다. 집사람이 많이 지친 모습이다. 나도 많이 지친다. 비교적 편한 자리를 잡아 사과를 깎아 먹으면서 눈을 감고 편한 휴식을 취한다. 갑자기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대항하면서 외치는 우리 선조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눈을 뜨자 집사람도 역시 나와 비슷한 상념에 젖었는가 보다. 외국 땅 이 높은 곳까지 쫒아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살육하는 광경을 상상하니 치가 떨린다. 산성터 안내판에 쓰인 안내 문구가 깊숙이 뇌리에 새겨진 모양이다. 지도에는 두타산 정상까지 앞으로도 2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터를 출발한지 30여분 지나자 쉰움산에서 두타산으로 연결되는 능선 따라 난 길과 만나는 갈림길이 나선다. 두타산 정상이 지척에 보이나 지도에는 1시간 30분이 걸리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코스가 험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가 오늘 등반 중 가장 힘든 코스로 보인다. 서로 격려하면서 길을 재촉한다. 출발 4시간 45분 만에 두타산 정산에 섰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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