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예로부터 감염된 상처를 소독하고 낡은 것을 갈아엎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 조상들은 비옥한 땅을 얻기 위해 밭과 논두렁에 불을 질렀고, 가족이 죽었을 때 망자의 옷을 태우며 집안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을 물리치곤 했다. 만신 역시 축문에 불을 붙이면서, 재앙을 축출하는 기원을 올린다.
서양에서도 촛불은 십자가와 더불어 희생을 통한 대속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십자가가 배타적 권위를 가진 하나의 상징으로 고정된 것에 비해 타오르는 촛불은 자신의 몸을 녹이면서 주변을 밝히는 그 특유의 이타적 이미지에 의해 늘 새로운 정신으로 갱신된다.
그 불의 정신이 지금 광화문에서, 서울광장에서 촛불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을 나는 엄숙하게 목도하고 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마땅히 태워서 없애버려야 하는 것에 대하여, 소독해야 하는 불의의 근원에 대하여 불의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촛불집회를 '저항의 불꽃놀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어린 유치원생들부터 고희를 훌쩍 넘긴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을 아우르는 국민들이 촛불을 손에 들고 서울 도심 한복판으로 모이고 있는 것은 일방통행식의 정책을 강권하는 독선적인 현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저항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쇠고기 수입 협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적시하고 그것의 무효와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풀리지 않는 경제난과 고유가 등에 시달린 성난 민심이 더해지면서 이제 점점 더 불꽃의 화력을 키워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일부 보수언론은 이 근본적인 사태의 본질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불순분자나 사회 불만세력 정도로 호도하고 있다. 이에 따른 배후설도 나왔다. 이 어이없는 주장에 따끔한 일갈을 가한 것은 다름 아닌 어린 학생들이었다. 어린 학생들은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이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촌철살인의 단순명료한 정의인가.
하지만 여전히 정부와 경찰은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한 데에 책임을 느낀다고 하면서도 잘못한 게 없다는 표정이다. 정부가 국민의 정당한 요구인 고시 철회와 재협상의 의사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 사이 오만무도한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국민이 쇠고기의 과학적 사실에 대해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당한 건강주권을 요구하는 우리 국민을 모독하고 우롱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정부의 기획홍보수석이라는 사람이 시위 군중을 가리켜 '사탄의 무리'라는 정말 돼먹지 않은 표현을 했다. 정말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어이없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언제나 진실을 옹호하는 존재다. 진실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면,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작가일 수 없다. 작가는 비록 진실이 작두날 같은 것이라고 해도 그 위에 올라서야 한다. 진실은 사실을 기초로 하는 것이지만 사실과는 달리 가변적이고 가외적인 조건으로부터 언제나 자유롭다. 촛불이 비추고 있는 진실은 자명하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보다 더 가치 있게 꿈꿀 수 있는 것을 정당하게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젊은 작가로서 나는 현재의 촛불집회를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라고 보고 있다. 정부와 경찰은 시위대의 폭력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그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꼼수다. 일각에서는 사복 입은 경찰을 시위대에 투입해 폭력을 선동한다는 프락치설까지 나오고 있다.
미선 효순양 6주기다.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미선 효순 양이 스러져갔을 때 발화된 촛불집회는 순수한 추모 열기와 더불어 SOFA 개정을 요구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그 절정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정치적 계산이나 함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는 위정자들을 냉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 시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은 그 어떤 타율적인 원리에도 간섭받지 않고 배후도 없이 거리에 나섰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와 심장과 발로서 촛불을 밝힌다. 이 저항은 진실을 기초로 한 것이기에 정당한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젊은 작가로서 뜨거운 가슴과 투명한 눈물로 응원한다. 우리의 촛불이여, 태울 것을 모두 태운 뒤에도 영원토록 형형하리라.
덧붙이는 글 | 김도언 약력
1972년 충남 금산 출생.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악취미들>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