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입니다. 약속 때문에 밤 12시가 다 되어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똑 같다며 빨리 TV를 보라는 것입니다.
TV에서는 KBS 2TV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이 한참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잠시 지켜보니 아내의 설명이 뒤따릅니다.
두 아들의 모친이 아들들에게 돈을 빌려줬다며 양육비를 청구했고 이와 관련해 며느리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장가갈 때 아들에게 집을 사준 것, 유학갔을 때 대줬던 각종 비용 등에 대해 월 10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줄거리입니다.
방송을 지켜보니 특히 큰 아들은 수입의 80%에 가까운 차용금(?)을 어머니한테 갚다보니 자신의 부인과 갈등을 겪다가 이혼신청에까지 이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 돈을 가지고 '여자는 가꿔야 된다'며 피부과 시술을 받고 쇼핑을 하는 등 아들 부부들의 어려운 사정과는 동떨어진 넉넉한 삶을 계속해서 살고 말입니다.
이날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방송내내 아내는 제가 요즈음 저희 둘째 아들에게 받고 있는 '차용증'과 그 동기가 비슷한 것 같다면서 방송내내 박장대소를 멈추지를 않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경제 관념은 너무 다른 듯해 걱정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들 정민이는 저희 부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지 돈의 소중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합니다. 용돈을 주어도 잘 쓰지 않고 가능하면 아끼는 편입니다. 이에 반해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 정연이는 형과는 반대입니다.
일주일치 용돈을 주어도 한꺼번에 써버리는 등 경제관념이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아들의 경제관념을 바로잡아 준다고 몇차례 노력은 해보았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달 제가 기가막힌 아이디어(?)를 냈답니다. 둘째 아이에게 차용증을 받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들 학비로 꽤 수월찮은 돈이 들어가는데 그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동안은 학원비를 은행에서 학원통장으로 자동이체 해왔지만, 제가 일부러 현금을 찾아와 이를 아들에게 건네면 아들은 엄마에게 다시 이 돈을 건네줘 학원비를 납부하게 하는 것 입니다.
물론 돈을 건네면서 차용증을 받는 것 입니다. 몇월 며칠 얼마를 학원비 명목으로 아빠에게 빌렸다며 차용증을 써서 받았답니다.
둘째 아이는 처음에는 차용증의 의미도 모르고 내민 차용증에 이름을 쓰라고 하니까 배시시 어색하게 웃기만 했답니다. 제 나름으로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일이냐는 듯 말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 그렇게 계속해서 차용증을 받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차용증에 서명을 합니다.
차용증을 받는 것이 '옳은 건지'... '틀린 건지' 아이들 경제관념은 어릴 때부터 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입학때부터 용돈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경제관념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모들의 이런 관념이 자리잡으면서 아이들의 용돈 관리는 비교적 잘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 몫으로 쓰게 되는 각종 학원비에 대해서는 아이들은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듯해 저는 아들에게 차용증을 받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는 아들에게 차용증을 받는 것에 대해 좋은 기색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말리는 편이지요. 아내의 만류에도 저는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학원비를 건네면서 꼬박꼬박 차용증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 손에 건네져온 학원비의 무게를 헤아리면서, 자신의 일주일치 용돈 2500원과 비교해 그 만큼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으니 학원수업에 충실하라는 저만의 셈법입니다.
과연 이 같은 저의 셈법이 교육적으로 현명한 것인지 아닌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라도 시도를 해보는 것이 아이에게 경제적인 개념을 심어주는 길이 아닌가 해 앞으로도 계속해 차용증을 받으려고 한답니다.
혹시 아동 교육심리에 밝으신 분이 계시다면 저의 이 같은 차용증 받기가 옳은 방법인지 아닌지 알려주실 분은 안 계실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