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화물연대는 물류대란의 파국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8차가 넘는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 차가 커 협상 타결을 내지 못하고 총파업에 이은 국가적 물류대란의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개인차주를 대표하는 화물연대 요구사항에 대해 물류기업 및 화주사, 정부 모두 막판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선뜻 내놓을 수 있는 명쾌한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업계 그 어느 전문가도 대안을 찾기 위해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간사회 스스로 만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 리 없다. 단지 없는 것은 의지와 노력이며, 찾지 못한 것은 상대에 대한 근본적 이해와 양보인 듯 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얽힌 실타래를 풀 듯 핵심쟁점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부터 접근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국가 기간 물류망으로서 화물운송산업 중요성 인식해야경유가 폭등에 따른 대책으로 정부가 지난 8일 내놓은 경유가 1800원 기준 추가인상분 50% 환급안은 화물연대 뿐만 아니라 화물 3개 단체도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안은 누가 봐도 분명 실효성이 없다. 예를 들면, 서울-부산 5톤 카고트럭 기준 현재 시장운임은 차주 지급 기준 26만원 선. 기름은 100ℓ 가량 소모돼 유가보조금 환급을 감안해 16만원 정도 지출된다. 통행료가 약 3만원, 식대 및 잡비 2만원을 제외하면 5만원이 남는다. 차량감가상각비와 부품·정비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기준가 1800원의 현 상태도 무조건 적자인 것이다.
현재 유가보조금 환급 수준을 감안해 1500원 기준가에서 추가인상분 50% 환급이라면 어느 정도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역시 기름값이 2000원을 넘어간다면 467원 교통세 한도에 근접하기 때문에 또 다른 대책이 요구된다.
따라서 정부는 휘발유가 대비 85수준으로 맞추려고 했다가 결국 실패한 에너지세제 개편방안의 문제점을 깨닫고 국가 기간 물류망으로서 화물운송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공공서비스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내버스와 같이 보조금 제도도 지급해야 한다. 정부가 이에 대해 건설기계, 택시 등과 형평성 원칙을 잣대로 들이대고자 한다면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공급자가 운임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장해야 한다.
또 화물운전자들이 부담을 많이 갖고 있는 고속도로 통행료도 영세 차주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해 장애인 50% 할인제와 같은 대폭적인 할인제도를 실시할 필요성이 있다. 운송산업의 주요 원가구조상 정부의 정책이 원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유류비, 고속도로 통행료 등에 대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표준요율제와 운임 현실화... 정부 제도적 장치 마련 필요
작금의 상황처럼 산업의 기층 종사자인 화물운전자들이 단결을 통해 실력행사를 하는 경우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화물운송산업이 산업경제의 대동맥이라는 중요성에 맞게 영속성과 서비스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공급자가 정당한 대가를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따라서 더 이상의 유가 보조가 어렵다면 운임 인상을 통해 산업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화물연대의 표준요율제 도입 등을 통한 운임 현실화 요구에 대해 당사자간 해결할 사안이라며 한 발 빼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의 국내 화물운송산업 구조는 35만 명에 이르는 영세 개인차주들이 개별적인 운송사업자로 돼 있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위로는 중소 운송·주선업체로부터 대형 운송·주선회사를 거쳐 화주사에 이르는 공급사슬의 맨 밑단에 위치하고 있어 위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운임 현실화 요구에 대해 운송회사들도 화주기업이 올려주지 않으면 자신들도 올려주지 못한다는 논리는 이와 같은 시장 구조에 기인한다. 따라서 규제완화 차원에서 1997년 폐지됐던 화물운송 신고운임제의 부활이라는 의미와 함께 영세 차주들의 최저 생계를 담보할 수 있는 표준요율제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입장대로 법적 강제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중장기적 과제로 풀어 나가야 한다. 당장의 운임 현실화는 화물운전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아 이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이들에게 스스로 사용자들과 운임을 협상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화물연대 조합원을 위시한 개인화물차주들은 말이 좋아 개인사업자이니 그 업무 속성이나 행태를 보면 노동자에 가깝고 명목상 개인사업자라는 것은 허울에 불과하다. 일찍 출근하지 않으면 화주사나 운송회사 배차직원들에게서 배차를 받지 못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고, 퇴근할 때까지 그 직원들의 업무지시에 따라줘야 한다. 다만 그들이 받는 수입이 월급 형태가 아닌 운임 형태일 뿐이다.
이 시점 정부의 할 일은 화주기업을 상대로 운임을 인상해줄 것을 '협조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간 운임 결정이 대등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단계 거래 문제...화주들의 투명성 확보 노력 선행되야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국내 산업구조에서 유독 우리 화물운송시장에서만 다단계 거래와 그에 따른 중간유통 비용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화물운송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른 산업과 달리 화물운송산업은 시장 자율기능을 통한 거래단계 축소와 그에 따른 유통비용 절감이 불가능하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거래의 기본이 되는 화물 정보와 차량 정보를 가지고 있는 주체가 그 특성에 따라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업체 수는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주선업체가 약 7천여 개(개인사업자 포함, 이사화물 주선업체 6천여 개 별도), 법인 운송회사 역시 약 7천여 개로 두 업종을 겸업하는 업체 수는 50.2%에 불과하다.
또 13만여 대의 개인차주들이 차량지입 형태의 개인사업자 명목으로 법인 운송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비율이 97%에 이른다. 이 같은 자료는 교통연구원 발간 '07년 화물자동차운송·주선업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른 내용이다.
정리하면, 화물운송시장이 차량지입만 하는 운송업, 개인차주들에게 화물정보만 알선하는 주선업으로 나뉘어 있고, 이들 운송과 주선업은 다시 차량 특성에 따라 지입과 화물주선의 형태들을 세분화해 달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와 보유 정보의 차이만 있을 뿐 사업의 내용과 성격은 대부분 유사한 실정이다.
시장 구조가 이렇다 보니 화주사들의 다양한 화물운송 특성에 따라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운송·주선회사와 여러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발생되는 중간 유통비용은 최종 시장 공급자인 개인화물차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단계 거래 해소를 위한 해법은 현재와 같은 실효성 없는 다단계거래 규제나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주선료 상한제와 같은 거래수수료 규제 등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대책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단계 거래를 시장논리에 따라 화주, 운송·주선업체, 개인차주 등 운송시장 참가자들이 자율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과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정책적 대안은 국가적인 화물운송정보망 구축 및 화주사들의 내부 관련자에 대한 운임 공개, 그리고 부동산 거래수수료 제한과 같은 주선료 제한 제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화주사들이 원청 및 하청 협력업체에 대해 운임공개를 통해 거래의 투명성을 스스로 유도하고, 정부는 화물정보망 구축과 주선료 총량 제한 형태의 시장질서를 세워 운송·주선업체들이 잉여 화물과 차량을 공개함으로써 거래단계를 축소해 스스로 이익을 배가하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과거 일정 부분 실패한 종합물류정보망의 사례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만 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이해 단체간의 첨예한 기득권 싸움에 휘둘려 근본적 해법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급 조절과 지입구조 개선...업종 통폐합으로 투명성 효율성 강화이 문제는 수급 조절과 지입구조 개선의 문제가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차량 과잉공급의 원인이 된 수급조절의 실패는 화물운송 지입제라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 수급의 원리는 수요에 대응하여 공급량이 결정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화물운송시장의 지입 구조는 수요에 대응한 공급량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지입제 자체가 실제 화물운송사업과 거리가 멀어 지입료를 목적으로 면허(영업용 번호판)만을 임대해주고 화물은 나가서 주선업체에게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수급과는 증차가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또한 2004년 이후 증차 제한 이후에도 4년 동안 차량 감소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지입만을 목적으로 하는 운송회사의 지역간 수평이동을 허용하고 사업운행 실적이 거의 없는 일부 업종을 적극적으로 감차하지 않고 시장에 방치한 정부의 책임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의 이 같은 정책 부재는 업계의 기득권을 둘러싼 반발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운송시장환경에서 차량을 운송회사에서 구입해 기사를 고용하는 직영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버스나 택시운송사업과는 또 다른 면이다. 이들과 달리 화물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력 및 비용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특정 업종의 기득권에 휘둘리지 않고, 용달·개별·일반화물 등 3개 운송업종 통폐합 및 지입과 실제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의 분리 운영, 실제 수요에 대응하는 증차와 감차 정책과 아울러 운송사업 면허의 지역간 수평이동을 막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면허 발급을 전후해 실제 운송거래 실적을 증빙으로 증차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실제 수요에 대응한 일부 차종에 대한 공급량 확대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트럭신문(www.trucknews.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