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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리운 그곳, 지리산. 그 능선들을 바라보며, 때론 그 숲에 묻히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열렸다. 지리산의 숲길과 지리산의 마을길들이 '지리산길'이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야할까.
 

아직은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부터 함양군 세동마을까지 이어지는 20.78km가 전부지만

앞으론 지리산 둘레 800리길(약 300km)이 모두 지리산길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될 거라고 한다.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는 시골집처럼 친절한 느낌이 드는 매동마을을 지나면 지리산길이 시작된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숲 향기가 황홀할 정도로 싱그러운 소나무길. 시멘트 포장도로지만 첫인상이 푸근하다. 고사리밭, 자주감자밭을 구경하며 오르다보면 어느새 폭신폭신한 숲길. 

 

첫 번째 다리쉼을 하기에 좋은, 개서어나무가 있는 곳. 저 멋진 나무아래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그리곤 바라보는 것 만으로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걸을 땐 저절로 깊은 숨을 쉬게 되고 느릿느릿 걷게 되었다.

 

 

개서어나무에 닿기 전 숲속으로 들어서는 길. 이것처럼 정성스럽게 깎아놓은 표지목들이 지리산길 군데군데 있다. 촘촘히 있어서 덕분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빨간색 가로줄은 남원이라는 뜻, 빨간색 화살표는 진행방향을 가리킨다.

 

 

지리산길에서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들꽃이었던 하구초와 엉겅퀴.

 

 

 

이 길이었다. 나를 부른 사진 한 장은.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을 수 있는 길이라는 유혹적인 표현으로. 6월의 햇살은 뜨거웠으나, 비오듯 흐르는 땀방울마저 상쾌했던 길이다.

 

 

상황마을 위에 자리잡은 다랑논들. 지리산길이 품은 보석같은 풍경이다.

 

 

상황마을을 지나 오르막이었던 농로가 무척 힘들었지만 등구재를 넘으면 이런 길이 이어진다. 충만함이 차오르는 행복한 길, 내겐 그랬다.

 

 

지리산길에서 만난 농민분들은 모두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사이좋게 콩을 심고 계시던 노부부. 여기에 도착하기 전 나는 1리터나 되는 물을 다 마셔버리고 물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물 있느냐며 부르셔서는 밭가에 샘물이 흐르는 곳을 알려주셨다. 산 밑에서 흘러나오는, 샘이랄 것도 없는 무척 작은 샘이었는데 물맛이 어찌나 시원하고 달았는지 모른다.

 

 

창원마을부터 금계마을까지 이어지는 그늘도 없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금계마을을 지나 의중마을에서 벽송사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정말 소박하고 예쁜 길이었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한둘 걸었을만한 폭신폭신한 숲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지리산길 걷기의 종착점이 된 벽송사. 공사중이어서 많이 어수선했지만, 숲그늘이 짙은 진입로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완공이 다 되고 오랜 세월이 깃들면 멋진 절집이 될 듯.

 

 

지리산길은 속도를 다투는 길이 아니라, 꼭 종주가 목적인 길이 아니라 실상사 도법스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느끼고 성찰하는 일종의 수련의 길"이라는 표현이 꼭 맞았다. 숲 향기에 취해 느릿느릿 걷는 것만으로 행복한 구간이 있는가 하면 땡볕아래서 고행처럼, 수행처럼 고되게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 덕분에 이 길은 '성찰의 길'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열린 길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300km가 다 이어지면 지리산길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무게를 지닌 길이 될까. 천천히 이어질 그 길이 나는 벌써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 도보여행자를 위한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길, 지리산길은 현재 시범구간으로 1구간과 2구간이 열려있습니다.
1구간 :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 -> 다랑논 -> 상황마을 -> 등구재 ->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 금계마을 (총 10km 정도)
2구간 :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 -> 벽송사 -> 송대마을 -> 세동마을 (총 10km 정도)
* 2구간은 아직 완벽히 정비된 상태가 아니어서 벽송사까지만 걷는 게 좋으며, 매동마을에서 벽송사까지는 14km가 조금 못됩니다.
* 지리산길을 걷기 전에는 남원시 인월면에 있는 지리산길 안내센터에 꼭 들러보세요.  
* 숲에 흔적을 남기거나 농작물에 손을 대면 절대 안됩니다. 지리산을,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녀오세요. 


태그:#지리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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