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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쇠고기 추가협상을 맡고 있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16일 오전(이하 한국시각) 급작스럽게 귀국을 번복한 배경에는 '협상 결렬'을 우려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만류가 있었음이 확인됐다.

 

홍 원내대표는 17일 오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전날 언론보도를 통해 김 본부장이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즉각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하지 말고 워싱턴에서 계속 협상을 진행하도록 종용했었다고 밝혔다.

 

이에 유 장관은 청와대와 조율을 거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협상 연장'을 요청했고, 버시바우 대사가 미 국무부를 움직여 김 본부장을 돌려세우게 된 것이라고 홍 원내대표는 설명했다.   

 

중대한 국익이 걸린 국제협상이 외교당국이나 현지 협상단의 판단이 아닌 여당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정부가 분명한 전략이나 원칙 없이 협상에 임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어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는 청와대와 내각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에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발생한 일로, 정부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쇄신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는 여론도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우리측 요청으로 김 본부장이 잔류하게 된 사실을 '음모론'이라고 일축하는 등 당과 청와대, 정부 사이의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김종훈 귀국' 소식에 놀란 여당 지도부... "성과도 없이 돌아오나?" 

 

한나라당 지도부가 김 본부장의 귀국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16일 오전 9시 43분경. 여당 지도부는 당시 최고위원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조윤선 대변인이 '한미 쇠고기 협상 잠정 중단… 김종훈 본부장 오늘 귀국 예정'이라는 언론사 뉴스속보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뒤 이를 보고했다.

 

그 시각 김 본부장은 뉴욕발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워싱턴D.C에서 뉴욕으로 가는 암트랙 열차에 탑승한 상태였다.

 

홍 원내대표는 "김 본부장이 아무 성과도 없이 그냥 돌아온다는 얘기에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눌러 앉아서 어떻게든 결론을 냈어야지, 그냥 와버리면 내각 쇄신이든 뭐든 모든 카드의 효과가 반감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김 본부장이 미국에 남아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고, 유 장관은 청와대와 조율을 거쳐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에게 우리 측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결국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버시바우 대사가 미 국무부 라인을 움직여 무역통상부(USTR)로 하여금 김 본부장에게 "장관급 추가협의가 필요하다"는 공식 요청을 하게 만들었다.

 

숀 스펜서 USTR 대변인은 17일 <연합뉴스>에 "금요일(13일)과 토요일(14일)에 협상을 했고, 일요일에는 만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김 본부장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우리가 연락해 계속 협상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오후 브리핑에서 "미국 쪽에서 자기들 요청으로 한 것이라고 발표하지 않았느냐"며 "김 본부장이 돌아와야 알겠지만 미국 측에서 '하루 더 얘기해 보자'고 요청한 건 틀림없다, 국내에는 '음모론의 유령'이 곳곳에 떠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의 귀국 연기를 공식 요청한 당사자가 미 정부라는 점에서 "미국측 요구로 협상을 계속하게 됐다"는 것이 한미 외교당국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러나 사태의 이면에 김 본부장의 귀국을 막는 여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요청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설명들은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

 

당초 17일 오전으로 예상됐던 김 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USTR 대표간 3차 회동이 뚜렷한 이유 없이 다시 연기된 것도 김 본부장의 귀국 번복이 미국측의 '적극적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홍준표 "청와대와 내각이 일손 놔버렸는데 여당이라도 정무 판단을 해야"

 

결국 김종훈 해프닝을 '벼랑 끝 전술'로 포장하려던 외교부는 망신을 자초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16일 배경설명을 통해 "1999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협상을 벌일 때도 미 USTR 대표가 호텔 체크아웃을 3번이나 한 적이 있었다. (이번처럼) 협상장을 떠나는 대표를 붙잡는 일은 외교 협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의 '폭로'로 이 같은 설명은 진실과 거리가 먼 '포장'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번 일로 유명환 장관을 비롯한 외교사령탑에 대한 불신도 커져 인사쇄신이 외교통상부를 비켜가선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한편으로 청와대 수석비사관들(6일)과 내각(10일)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후임 인선이 거의 이뤄지지 않이 이런 사태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날지 모르는 분위기에서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들이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다가 쇠고기 협상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분위기가 만연된 결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여당 원내대표가 (외교부 장관의) 잘못된 정무 판단에 대해 얘기해준 것을 지시로 봐서는 안 된다"며 "내각과 청와대가 전부 총사퇴해서 일손을 놔버렸는데, 당이라도 정무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태그:#홍준표, #유명환, #버시바우, #김종훈, #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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