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껏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의 등원을 바랐다. 단 한 번도 민주당 등원에 대해 어중간한 태도를 보인 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히 고민된다. 정부가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현 상태로 강행하려는 것 외에도 한반도대운하, 한미FTA, 친(대)기업 정책, 언론길들이기식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려는 터에, '힘없는 야당' 민주당에게 그저 또다시 등원을 촉구한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 그래도 민주당 등원을 바라는 마음을 전하려 한다. 교과서식 발언에 불과하다 하여도, 나는 지금 민주당의 등원을 바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몇 가지 말하려 한다.
민주당은 시민에게서 권리 받고, 국회에서 책임을 지라
땅 깊숙이 시민의 눈물이 스며들고 있다. 땅 위에선 촛불을 타고 피어오르는 '제2의 민주화' 열기로 세상이 덮이건만, 땅 아래는 하염없이 흐르는 시민의 눈물로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참 걱정스럽게도 하늘마저 기약 없이 따라 울려고 한다. 장마가 움직인단다.
지난달 5월 31일이었던가. 가는 사람에게 손 흔들 새도 없이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었으나 6월 5일 개원식은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거리국회'는 이미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느새 6월 중순이 지나가고 말일이 가까워져 온다. 18대 국회 개원 한 달이 멀지 않다. 근 한 달 이상을 이끌어 온 '촛불' 민심은 18대 국회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놔두자니 걱정스럽고, 맡겨보자니 불안하다. 어찌 이끌어 온 '촛불' 민심인데 '식물국회'에 함부로 맡기나 싶어서이다.
이 같은 국민 시선을 한몸에 받는 여당 한나라당과 제1야당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의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지금, 더이상 떨어질 곳도 없을 만큼 지지율 하락을 겪는 정부를 밀자니 '후폭풍'이 걱정스럽고 그냥 두자니 '역풍'이 걱정스럽다. 18대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거리국회' 상황을 엿보는(?!) 민주당 처지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다.
18대 국회에 대한 시선만큼이나 민주당을 보는 시선 역시 애증 섞인 시선일 바에야 민주당이 그 무엇을 한들 시민들에게 환영받겠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민주당은 어찌해야 하는가. 이쯤 해서 나는, 그래도 민주당의 등원을 바라는 마음과 그 이유를 전하려고 한다.
첫째, 민주당은 시민에게서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 단순히 이런저런 개별 사안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민주당의 존재 자체에 책임질 일이 많다. 모든 것이 아래에서 흘러나오고 그것이 곧 지지기반과 실력이 되는 시민정당을 표방했던 열린우리당의 자멸, 결국 과거 민주당과 '재결합'한 씁쓸한 사연, 온갖 세력이 모여 혼합정당이 된 뒷이야기 등 민주당 태생 자체는 이미 누더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그 어떤 행보에서도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민주당의 등원을 바라기 전, 민주당이 시민에게서 자신의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점을 말했다. 그것은 '거리국회' 참여 여부와는 별도로 모든 정책과 그 추진에 있어서 시민을 머리로, 그리고 뿌리로 삼는 것이다. 끊임없는 시민 목소리를 듣고 그에 따라 만든 정책을 다시 시민에게 제시하고 재평가를 거듭해가는 노력이 지금 민주당에게 필요하다.
법안을 만들고 심의해야 할 국회 활동을 못하는 마당에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서 '거리국회'에 법안 활동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모아가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그럴듯하거든, 그만큼 시민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만 한다. 그것이 국회등원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게다.
둘째, 민주당은 책임질 모든 일을 국회에서 감당해야 한다. 민주당은 공식 정당이다. 제1야당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지울 수 없는 열린우리당 잔영을 가진 당이다. 게다가 과거 민주당 그림자마저 덧쓴 당이다. 모든 걸 과거로 돌리자는 말은 아니지만, 민주당은 공식 정당으로서, 그리고 과거 유산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 당으로서 '내일'로 가는 길을 다시 다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국 처음 자신들이 발 딛고 섰던 '민의를 대변하는 무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등원 여부를 놓고 내부 격론을 벌이는 민주당에 다시 등원 촉구 의견을 덧붙여본다.[관련 글: 통합민주당 원내대표회의록(2008.06.17)]
정당이라는 지위와 처지를 버리지 않는 한, 민주당은 국회 등원과 의정 활동을 결코 한없이 외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 국민적 불신에 휩싸인 정부와 여당 손에 놀아날 18대 국회 개원을 속시원히 지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등원을 재차 요구하는 것이 결코 좋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민주당의 등원을 바란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민주당은 시민들에게 머리 숙여 책임감을 토로하는 동시에 그 실천에 있어서는 결국 의정활동으로 답해야 한다.
믿을 만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18대 국회는 언젠가 열린다. 물론 시민 스스로 '새로운 민의 대변 무대'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것이 정말 구체화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제1야당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거리국회'에 참여한 야당들이 되돌아가야 할 곳은 국회이다. 달리 말해, 등원 방법과 명분은 둘째치고 라도 등원 문제가 후순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거리국회'는 말 그대로 시민이 주도해가고 있다. 그 상황에 민주당이 끼어들 공간은 항상 '중심'이 아닌 '곁'이다. 그 자체가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지만, 공식 정당인 민주당이 바라봐야 할 곳은 아니다. 무슨 말로 현 상황을 평가하고 분석해도, 여기서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곳은 분명히 국회이다. 그래서 나는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으면서도 또다시 민주당의 국회 등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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