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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떠나게 된 경주행.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였다. 하늘은 이미 짙은 구름이 차지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듯한 날씨다.

 

무거운 하늘과 분노한 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거기다 검푸른 물살이 산더미처럼 일어서며 울부짖는 듯한 파도는 모든 것들을 부수고야 말겠다는 듯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내달린다. 꼭 굶주린 짐승이 먹잇감을 보고 달려드는 형상이다. 금방이라도 삼켜버릴 것만 같은 파도가 바다를 온통 휘젓고 있다.

 

 

14일, 멋진 바닷가 일출을 꿈꾸며 달려간 경주,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구름은 짙어가고 바람 또한 거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처럼 시간 내서 먼 길을 달려왔건만 날씨가 영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본래 사진이라는 것이 담기 나름 아닌가. 자연은 궂은 날은 궂은 날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나름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비록 의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찾아보면 얼마든지 멋진 장면, 색다른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

 

바닷가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것인지 파도를 낚는 것인지 분노한 바다에 낚싯대 길게 드리우고 서 있는 사람을 만났다.

 

 

과연 저 낚싯대로 무엇을 낚을 것인가? 물론 사진을 찍는 나에게는 무엇이 낚이든 상관이 없다. 그저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진 모델이 되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또 한편에서는 부모님과 같이 바다를 찾은 아이들이 거센 파도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파도를 따라 한참을 달리던 아이는 결국 파도의 포로가 되지만 그래도 좋은지 깡충 깡충 뛰면서 파도와 숨바꼭질을 계속한다. 그 모습 또한 아름다운 한편의 동화 같다.

 

분노한 바다에서 울부짖는 파도를 사진으로 촬영하기 위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디선가 풍물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굿을 하고 있었다. 대왕암 부근에서 작은 천막을 치고 북과 꽹과리를 울리며 굿을 하는 사람들, 간간이 저 거센 파도처럼 신들린 듯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인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굿을 하는지 모르지만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성난 파도는 바닷가를 상당부분 점령하는 것도 모자라 주변의 바위에 부서져라 몸을 내던진다.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잔해가 흐느껴 우는 듯하다. 이 세상의 모든 시름과 고통을 다 날려버리려는 듯 용트림하는 바다에서 자연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멋진 일출은 꿈도 못 꾸고 돌아왔다. 분노한 바다에서 울부짖는 파도만 한 아름 안고 돌아와 삶의 깊이를 헤아려 본다. 인생이란 어디 잔잔한 바다만 같으랴…. 저렇듯 삶에 고통과 슬픔이 동반될지라도 낚싯대를 드리운 사나이처럼, 성난 파도와 숨바꼭질 하는 아이의 해맑은 모습처럼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바다는 말하리라.

덧붙이는 글 | 유포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바다,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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