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지기 식구들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가고자,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갑니다. 용산역에 내려서 뒷간에 한 번 들릅니다. 종로3가역에 내려서 뒷간 다시 한 번 들릅니다. 용산역에서 내려 '표 끊고 나가야 하는 바깥'이 아닌, 안쪽에 하나 있는 뒷간으로 가자면, 인천에서 서울 가는 쪽으로 나 있는 계단 두 곳 가운데 뒤쪽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종로3가역에서 뒷간을 찾아가자면 1호선 타는 곳 맨끝으로 가거나 5호선 타는 곳 맨끝으로 가야 합니다. 사이에는 뒷간이 없기에, 길을 잘못 들면 한참 걸어가야 합니다. 낮이라서 전철은 뜸하게 옵니다. 뜸하게 오는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서 있습니다. 어느 전철역이든 앉을 자리는 거의 없습니다.
서울역부터는 땅 밑으로 달립니다. 땅 밑 전철, 지하철입니다. 땅위에서 달릴 때에는 철길 긁는 소리가 그리 크게 안 들렸으나, 땅 밑으로 들어오면 대단히 크게 들립니다. 안내방송 소리도 크게 들립니다. 이에 따라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목소리는 한결 높아집니다. 손전화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목소리를 높입니다. 형광등은 파르르 떨리기도 하여 책을 읽던 눈이 아파서 한동안 책을 덮고 눈을 감습니다.
전철칸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물결은 늘 있습니다. 그렇게 움직인들 얼마나 더 빨리 갈 수 있으랴 싶지만, 이렇게 요리조리 움직이는 분들은 다문 몇 초라도 아끼고 싶으실 테지요. 이리하여 사람으로 꽉 차 빈틈이 없어도 밀치고 쑤시며 지나가려고 할 테지요. 으레 밀치고 쑤시고 지나다녀야 했기에, '널널할' 때에도 애꿎은 사람을 밟거나 치거나 밀어도 미안하다는 느낌 한 번 없을 뿐더러, 미안하다는 말 한 번 없을 테지요.
간첩을 신고하고 반체제를 꾀하는 사람을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은 2008년 여름을 접어들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요즈음에도 간첩이라는 사람이 있으려나. 얼마 앞서 시청 앞에서 '대북침투공작원 집회'가 있었는데, 그 간첩이라고 하는 사람은 북녘에서 남녘으로 내려보내기도 했지만, 남녘에서도 북녘으로 올려보냈는데, 남이고 북이고 왜 이리 뒤에서 꿍꿍이셈만 헤아렸을까.
왜 서로서로 평화와 자유와 민주와 평등으로 감싸면서 돌보려는 마음을 키우지 못했을까. 반체제라 한다면, 그제(6월 16일) 나온 여론조사에서 12% 지지율까지 떨어진 대통령 이씨를 꾸짖거나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반체제가 되려나. 촛불모임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반체제이려나. 아니면, 대통령 이씨를 꾸짖지 않는 사람들이 반체제가 되려나. 촛불모임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반체제가 되려나.
3호선 구파발역을 지날 무렵부터 보이는 바깥세상. 지하철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바깥세상은 온통 아파트 새로 짓는 공사터 세상. 북한산을 휘감아 주는 아파트 세상. 모두들 아파트가 좋다고 하니 아파트만 이렇게 지어댈 터이지. 모두들 자가용을 좋아하니, 아무리 기름값이 치솟아도 자가용 씀씀이는 줄어들지 않을 터이지. 모두들 '사랑'보다는 '돈'을 더 좋아하니까, '믿음'보다는 '대학교 학벌'을 더 좋아하니까, '나눔'보다는 '개인 명예와 권위'를 더 좋아하니까, 우리 세상은 이렇게 저렇게 흘러갈 터이지.
다문 몇 초라도 아껴서 더 빨리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 우리나라이니까, 더 많은 돈을 남(내 이웃)보다 더 많이 벌어서 어깨를 우쭐거리고 싶어하는 우리나라이니까, 책 한 권 느긋하게 읽을 마음을 일구기는 어려울 수 있구나. 책 한 권을 손에 들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휴머니스트,2008)나 <항일유적답사기>(눈빛,2006) 같은 책은 고르기 어려울 수 있구나. <두 친구 이야기>(양철북,2005)나 <눈물나무>(양철북,2008) 같은 책은 '아이들이나 읽는 책'으로>(미다스북스,2005) 같은 책을 손에 들고 눈물을 똑 똑 똑 똑 …… 흘릴 일은 없겠구나. <슬픈 미나마타>(달팽이,2007)라든지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삼인,2006) 같은 책을 가슴에 안고 우리가 여태껏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 틀거리를 가슴 시리게 붙잡을 수는 없겠구나. 그렇지만, 조그마한 꿈 하나를 품어 보아야지. 가녀린 꿈 하나를 살며시 손바닥에 올려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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