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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고 푸짐한 음식들 하지만 식사가 끝난 후의 식탁은?
정갈하고 푸짐한 음식들하지만 식사가 끝난 후의 식탁은? ⓒ 우광환

 

가족과 함께 모처럼 즐거운 외식을 하기 위해 근처 맛집을 찾았다고 치자. 식당에 들어서면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가족 간의 즐거운 대화로 작고 잔잔한 삶의 맛까지 덤으로 느낄 것을 기대하며 빈 테이블 앞에 둘러앉았다고 치자.


그런데 마침 옆자리엔 방금 다녀간 손님들로 인해 먹다 남은 음식이며 흩어진 뼈다귀, 흘려진 국물, 아무렇게나 내 동댕이쳐진 것 같은 먹다 만 반찬그릇들로 온통 어질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고 치자. 하지만 식당의 바쁜 종업원들은 손님들의 시중을 들기에도 정신이 없어 금방 그 식탁을 치우지 못하고 한동안 방치했다고 치자.


식당 종업원이 옆 식탁을 치우지는 못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방금 온 우리를 위해 주문을 하러 와서는 기본적인 반찬과 수저 등을 식탁에 늘어놓는다고 치자. 마침 다른 종업원들이 부산하게 달려들어 옆 테이블을 치우는데, 정말 심할 정도로 어질러진 것들을 아주 짧은 시간에 후딱 치워야 하기 때문에, 그 테이블이 정갈하게 치워질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한다고 치자.


자,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음식주문을 재촉하는 종업원을 놔두고 그냥 일어나서 그 식당을 나와야 할까? 어딜 가나 대부분의 식당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청결을 확신할 수 있는 특별한 고급식당으로 가족과 함께 발길을 돌리자니 지갑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대부분 체념하고 그냥 음식을 주문할 수밖에 없다. 그저 바쁜 종업원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한 번만 더 닦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고작이다.


게다가 종업원이 편치 않은 표정으로라도 식탁을 닦아주는 행주를 자세히 보면, 손님들이 손을 닦고 난 물 수건이다. 옆자리의 어질러진 식탁을 정신없이 치우는 데 사용 되는 것도  물수건이다. 그것은 이미 행주가 아니라 지독하게 지저분한 '걸레'들이다.  물론 그 수건들은 다시 수거 되어 세탁과정을 거친 후 다시 손님들의 위생수건으로 쓰일 것들이다.


이토록 그 수건들은 수십 차례나 음식 찌꺼기와 오물로 더럽혀진 걸레로 변화했던 것들이며, 우리는 다시 그것으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닦고 심지어는 입까지 닦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일회용 물티슈를 사용하는 업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재생 물수건을 쓰는 업소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고급식당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식당들은 대부분 수저 받침대도 잘 쓰지 않는다. 테이블을 건성으로라도 다시 닦아준다고 해도 철없이 테이블 위에 수저를 막 굴리는 아이들을 보면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다시 닦았다 해도 고춧가루며 말라붙은 국물 흔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저 결벽증이 좀 심한 것으로 치부해야만 할까.


내가 먹었던 자리에 앉을 다음 손님들을 위해 식사를 깨끗이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란 어려운 일일까. 마음껏 어지럽혀도 어차피 종업원들에 의해 치워질 식탁을 두고, 그런데까지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 자리에 외국손님과 함께 앉아있다고 상상할 때, 우리 마음은 어떨까. 손님에게 유난히 마음을 쓰기 좋아하는 우리 정서일진데, 그 외국손님에게 그런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하는 경제대국으로 변모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것에 더해, 세계의 유명한 명문대학의 수석이나 상위권 자리도 거의 도맡아 차지하고 있다. 머리 좋고 많이 배운 사람들답게 우리는 '촛불 시위'라는 새로운 시위방식을 개발했다.


그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말 독특한 발상이며 더 할 나위 없는 평화의 마음을 담은 비폭력 시위방식이다. 요즘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연일 촛불시위가 벌어지지만, 혹시 일부시민이 감정이 격해져 폭력을 쓰려 해도 주위 시민들로부터 제지를 당할 정도다. 오죽하면 사실상 시위행위인 그것에 '촛불문화'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토록 우리 국민은 높은 문명의 척도와 앞선 시민의식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식탁 앞에만 앉으면 반문명적이 될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써야하는 공공장소의 물건들을 왜 우리는 나 혼자만 쓰고 마는 물건들로 착각하기 좋아할까.


오래 전 일본에서 수년간 생활 할 때 일이다. 일본인 친구와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그 친구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후 그것을 잘 접어서 테이블 귀퉁이에 놓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 친구 생긴 거와는 다르게 참 깔끔하네.'


그러나 이후 대중식당에서 본 일본 손님들의 행동을 보면서 그 친구가 유난히 깔끔 떤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 친구와 똑같이 행동했던 것이다. 다음부터 나 역시 물수건을 아무렇게나 던져놓던 버릇이 없어진 것은 물론, 음식을 먹고 난 자리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나라 음식의 특성상 먹고 난 자리를 깨끗이 유지하기가 조금 어렵긴 하다. 유난히 많은 가지 수의 반찬을, 그것도 코스요리가 아닌, 한꺼번에 모두 차려놓고 먹는 식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조금만 신경 쓴다면 먹고 난 자리가 그토록 유난스레 전쟁을 치른 자리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녀간 자리가 아름다울 때, 그 사람의 품성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공중 화장실에도 붙어있을만큼 유명한 구절이다. 더구나 식사가 끝난 식탁을 보면서 느끼는 깊이는 더 하다. 이제 우리도 자신이 떠나간 자리의 식탁에 신경을 돌릴 때다. 내가 먹고 떠난 그 식탁에 내 품격을 남겨놓기 위해서는 말이다.  


#우리의 식사문화#식사문화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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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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