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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담론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예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거나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갈등만 증폭되는 현상도 보입니다. 담론의 복원을 위해 어느 때보다 건전하고 창의적인 언론활동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매체창업 또는 칼럼과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우리사회의 건전한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하는 '저널리즘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기사를 이번 학기에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합니다.<기자 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한 달 보름 넘게 이어지는 동안,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토론방 '아고라'는 누구나 인정하는 '소통의 성지'로 떠올랐다. 그리스어로 '광장'이라는 뜻을 가진 아고라에서 때로는 하루 수만, 때로는 수십만의 네티즌이 저마다의 의견을 펼치고, 논쟁하고, 지지와 반대의 뜻을 밝힌다. 촛불집회를 처음 제안한 것도, '공영방송 사수' 등으로 관심 영역의 확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아고라의 논객들이다.

 

지난 2004년 12월 아고라 토론방을 직접 개설한 석종훈 다음 커뮤니케이션 대표는 5월 30일 '인터넷과 상상력'을 주제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가진 특강에서 "아고라는 인터넷에 만든 투석전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의견을 신문이나 방송에 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축구 경기가 끝나면 '감독을 바꾸라고 쓰라'는 식이었죠. 하지만 인터넷기사에 댓글 달기가 가능해지면서 이런 전화는 확 줄었습니다. 심지어 화장실 낙서도 줄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권력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돌을 던져 저항했다면, 이제는 인터넷 댓글로 투석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고라는 이런 댓글 투석전에 멍석을 깔아준 사이버 공간인 셈이죠." 

 

아고라라는 이름도 석 대표가 붙였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크로폴리스, 플라자, 아고라 등 세 개의 광장이 있었다. 이 중 아크로폴리스는 주로 정치가나 학자들이 연설을 하는 곳이었고, 플라자는 상거래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반면 아고라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는 공간이었다. 석 대표는 바로 이런 격식 없는 토론의 장을 사이버 공간 속에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소통의 장으로 터를 닦아 온 아고라는 촛불시위 과정에서 진가를 발휘했고, 이것은 네이버와의 경쟁에서 다소 위축됐던 다음의 재도약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코리아클릭' 조사에 따르면 쇠고기협상 문제가 처음 불거진 지난 4월 하순 이후 아고라의 고객방문빈도(트래픽)는 전달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지난 5월의 주당 방문자수는 300만을 넘어섰다. 

 

석 대표는 아고라와 블로거 뉴스로 대표되는 네티즌 참여의 시대를 '인터넷 4기'로 정의하고, 이 시대는 이용자가 리더(Reader)에서 리포터(Reporter)로 진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1월 어느 여고생이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 아빠가 사라졌어요'라는 제목이었죠. 퇴근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늦은 밤까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답니다. 방송이나 신문이었다면 이런 개인적인 호소에 신경을 썼겠습니까?

 

그러나 아고라의 네티즌들은 여고생의 하소연에 진지한 관심을 보였고, 격려와 위로의 댓글을 줄줄이 달았습니다. 그래서 미디어 다음의 기사로까지 올라갔죠. 불행히도 그 여고생의 아버지는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이 사건은 얼핏 개인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일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죠."

 

이렇게 네티즌이 직접 뉴스와 여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터넷 4기의 현상이라면, 그 이전 시대는 어땠을까. 인터넷 1기는 우리나라에 정보통신부가 설립되고, 주요 언론사에 인터넷 사이트가 개설되었던 95년 무렵에 시작됐다. 이 때 그가 몸담고 있던 <조선일보>에서는 '디지털 조선일보'를 출범시켰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고,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한 미디어라는 구호를 내걸고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인터넷 미디어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어요. 신문에 3줄만 쓰면 되는 기사를 왜 인터넷에 5줄, 7줄씩이나 써야 하는지 기자들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고, 신문 마감시간이 오후 5시인데  보도 자료가 오전 10시에 나왔다고 해서 더 일찍 써야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생각했죠. 특히 특종기사는 다른 언론이 베껴 쓸까봐 걱정해서 절대 인터넷에 먼저 올리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종이신문 위주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죠."

 

 이런 생각들은 기술의 진보와 벤처 열풍에 따른 자금 풍년 등으로 인터넷 미디어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2000년 무렵 <머니투데이>, <오마이뉴스>, <아이뉴스24> 등 특정 수용자 층을 겨냥한 인터넷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실시간 뉴스 전달'이라는 인터넷 2기의 특성이 제대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고려대학교 강의를 갔다가 총학생회의 저지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치하는 상황이 <오마이뉴스>에 1신, 2신, 3신 등으로 생생하게 보도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2기 인터넷 미디어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수익모델을 고민하게 되는 등 곧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다.  

 

인터넷 3기는 2003년  미디어다음과 네이버뉴스가 등장하면서 인터넷 미디어들이 소극적인 뉴스 전달에서 적극적 뉴스 편집의 기능까지 갖게 된 시기를 말한다. 미디어 다음은 특히 자체 취재 기자를 두어 주류 언론들이 소홀하게 다루는 '실시간 뉴스 서비스'를 강화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벌어지는 박세리의 골프경기 상황을 신문 방송의 사각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새벽에 시시각각으로 전달해 준 것이다. 여기에 기사에 대한 댓글 쓰기를 활성화하고, 많이 본 기사를 돋보이게 편집하는 등 '쌍방향성'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켰다.

 

여기에서 아고라와 블로거 뉴스처럼 '이용자가 직접 뉴스를 만드는' 인터넷 4기가 발전되어 나왔다. 2005년 이후, 정확히 말하면 아고라가 탄생한 2004년 12월 이후다. 독자들이 직접 객원기자가 되는 블로거 뉴스의 경우 2005년 3월에 50명으로 시작했는데, 2008년 5월 현재 참여자가 6만8000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송고하는 기사 건수는 하루 3500여 건.

 

"사실 이 분들의 기사 품질은 훈련받은 기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100개 중 1개는 건질 만 합니다. 나아가 2~3년 후에는 송고기사 건수에 '0'이 하나 더 붙을 것이고 10년 후에는 또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정보가치 있는 기사가 하루 3500 개씩 생산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또 블로거들이 자연스럽게 기사쓰기 훈련을 받게 되면서 '건질 만한 기사'의 비율이 더 늘어날 수도 있구요."    

 

그는 이미 등장 했을 수도, 혹은 한참 후에 등장할 지도 모르는 5기 인터넷 미디어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는 전망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치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몇 발자국 앞은 보이지만, 멀리 바라보면 그저 뿌옇기만 한 것이죠. 지금 우리는 6개월 앞을 자신 있게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주에 그리고 다음달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죠.

 

인터넷 미디어의 미래와 관련해 분명한 것은 지금의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시스템이 IPTV(인터넷기반텔레비전)와 같은 수용자별 내로우캐스팅(Narrowcasting)으로 갈 것이라는 것, 그리고 동영상,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모바일이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모바일과 인터넷이 결합한 3차원 인터넷이 핵심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석 대표는 이런 시대에 신문, 방송 등 전통 매체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오프라인 미디어로서 갖고 있는 정보망, 훈련된 인적자원, 신뢰성을 잘 살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온라인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윤전기를 몰라도 신문을 잘 만들 수 있었던 과거의 기자들과 달리, 앞으로는 언론인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미디어환경이 제공하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의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다음이 10년 후에 원양어선 회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변화를 읽고, 빨리 판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을 어떻게 기존 미디어와 결합시킬 것인지, 스스로도 고민하고 있다는 석 대표는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기술을 이해하고 바른 판단력을 갖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토론할 것,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머뭇거리지 말 것"을 강조했다.


태그:#아고라, #저널리즘스쿨, #세명대, #다음, #석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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