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릿고개' 세대가 아니다. 보리쌀이 없어서 초근목피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태어나고 자란 곳이 시골이라 어릴 때 봄철에는 어린 솔가지 껍질과 솔방울을 먹었다. 어른 솔가지와 솔방울을 먹은 것은 보릿고개 탓이 아니라 새참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추 뿌리 역시 맛있는 먹을거리였다. 목화 새순, 특히 옥수수 새순가지는 사탕이 없던 시절 단 것을 먹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바닷가에 가면 톳·모자반·청각·지충이·우뭇가사리 등은 덧없는 먹을거리였다. 메뚜기와 개구리 뒷다리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시절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보릿고개 경험도 없는 사람이 하늘이 주신 모든 자연식품을 먹으면서 살았다. 안타깝게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넉넉한 먹을거리는 없었지만 가장 건강한 삶을 살았던 시기다.
솔방울, 솔가지, 목화 새순, 옥수수 새순가지로 건강하게 살았던 그 시대보다 먹을거리는 풍족하지만 왠지 ‘배고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 보릿고개’가 등장했다. 입안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는 많지만 먹을 때마다 왠지 불안하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다. 고향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초등학교 3학년(1975년), 부모님이 텔레비전을 산 것은 초등학교 5학년(1977년)이었다. 전화는 고등학교 2학년(1983년)에 개설했다. 버스는 하루에 3번 들어왔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버스를 타기 위하여 1시간 30분을 걸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무 불편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불평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있다. 이는 우리 집에 전기는 당연한 것이고 인터넷에 가입했음을 뜻한다(2001년 가을 가입). 1998년 휴대전화 가입을 했고, 그 때 구입한 단말기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는 분이 계시기에 1998년산 단말기이지만 나는 현대문명에 더 젖어 있다. 디지털 카메라는 아직 없다.
‘신 보릿고개’라 말하면 정말 초근목피로 삶을 살았던 부모님 세대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 때는 절대빈곤시대였다. 지금은 상대빈곤 시대다. 신자유주의가 이 시대를 지배하면서 상대빈곤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절대빈곤은 모두가 같이 공유하기에 서로 위로가 되고, 쌀밥 한 번 먹는 소원으로 힘겨운 나날을 이길 수 있지만 상대빈곤은 박탈감과 증오, 열등감과 우월감이 사회를 혼란으로 이끈다. 신 보릿고개가 보릿고개보다 더 빈곤감을 주는 이유다.
그럼 나는 이 신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는가? 달리 방법이 없다. 먹을거리를 어떻게 넘는가? 아직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동생이 볍씨 담그면 볍씨 담그러 간다. 모내기 하자고 하면 모내기하러 간다. 고추 심자고 하면 고추 심으러 간다. 마늘 심으면 마늘 심으러 간다. 타작하면 타작한다. 그럼 먹을거리는 당연히 해결된다.
우리집은 2층 건물인데 30년 전에 지은 건물로 한여름엔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온다. 경남 진주는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더운 동네다. 그런데도 아직 에어컨 없이 산다. 8년을 살다보니 아이들도 적응해버렸다. 무식한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 몸은 이상하게도 적응했다.
휴대전화 단말기는 또 어떤가. 아직 교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1998년산 단말기라 온통 상처투성이다. 액정은 2004년 가을 지리산 등반 도중 비를 만나 이상이 생긴 이후 절반이 깨졌다. 단말기 본체와 배터리가 접촉이 잘 되지 않아 테이프로 꽁꽁 묶었다.
깨진 액정, 접촉이 불량한 단말기 본체와 배터리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빨리 단말기 교체를 권하지만 10년을 함께 한 단말기를 정말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 디카가 없어 사진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마이뉴스>에 엄지뉴스를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다. 1998년산 단말기에 카메라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당연히 인터넷도 불가능하다.
디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당연히 필름 카메라로 산다. 필름 카메라면 아주 좋은 제품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제품일 뿐이다. 디카가 없어 불편한 것은 많다. 특히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쓸 때 반드시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휴대전화 단말기는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디카를 사고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기에 아직은 부담스럽다.
신 보릿고개 시절 가장 어려운 일이 아이들 교육비다. 다른 것은 다 줄여도 교육비만은 줄일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어교육은 영어성경을 읽고, 외우는 것으로 끝낸다. 다들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이 방법을 유지할 것이다. 영어성경은 영문화권을 이해하는 내 경험상으로는 가장 좋은 길임을 알고 있다. 물론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과 다른 교육에는 아내가 어떤 경우 마귀할멈이 된다. 나는 조금 넉넉하게 하면 좋겠는데 아내는 아닌 모양이다. 학원에 가지 못하니 하루에 조금씩 문제를 풀어가면서 실력을 쌓고 있다. 얼마 전에는 첫째 아이(초등 4) 수학문제를 고민 고민 끝에 풀었다. 환호했다. 조용한 아이인데 춤을 추기까지 했다. 얼마나 기뻤으면 춤까지?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다 풀어주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푸는 것이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는 엄청난 힘이 될 것은 분명하다.
신 보릿고개를 나는 이렇게 넘고 있다. 어릴 때보다는 풍성한 먹을거리, 현대문명을 누리고 살지만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 시대. 먹을거리는 자급하고, 휴대전화 단말기는 10년을 하루같이, 디카는 조금 미루고, 아이들 교육은 스스로 능력을 쌓게 한다.
월수입 150만원이 되지 않는 사람이 300만원, 500만원, 1000만원, 수 만원을 버는 이들과 같이 갈 수 없다. 스스로 길러 먹고, 현대문명에는 조금 뒤쳐져 가고,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게 함으로써 우리 가족은 아직은 몸과 마음, 정신 모두가 건강하다. 이 건강이 내일도 지속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고, 소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