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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주최로 '광우병쇠고기 촛불운동.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국민대토론회가 열렸다.
 19일 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주최로 '광우병쇠고기 촛불운동.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국민대토론회가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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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라는 정치사상가가 있다. 그녀는 '폭력'의 반대를 '비폭력'이 아닌 '권력'이라 정의했는데 그녀의 권력개념은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것과는 다르다. 그녀에게 있어서 '권력'은 사람들의 공동행동과 상호적 동의/지지 속에서 형성된 힘이다.

그렇기에 강제적인 힘으로 타인을 제압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폭력과 대비되며, 수단에 불과한 폭력과 달리 권력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사람들의 수평적인 토론과 논의는 이미 그 자체로서 정당한 권력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5m의 '구리스' 칠한 컨테이너 앞에서, 절대 여기를 넘어올 수 없다는 그 명박산성 앞에서, 수많은 이들은 밤을 세워가며 토론을 했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의 대비였다. 그리고 어쨌든 휴대폰과 자동차 팔아야 하니 쇠고기 문제는 재협상 힘들다고 강변하는 대통령 기자회견이 있었던 날 밤(19일)에 20명에 가까운 시민패널들과 현장발언, 온라인 토론을 통한 '국민대토론회'가 열렸다. 권력은 어느 곳에 있었을까? 이렇듯 지금의 상황은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토론회 전날 저녁 10시 반쯤 <오마이뉴스>에서 전화를 받았다. '늦게까지 일하시네요'라는 나의 인사에 '저희한테 지금은 초저녁입니다'라는 대답으로 조금 머쓱해졌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관하는 토론회에 시민패널로 참여하실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관점에서 촛불 집회를 분석한 글을 몇 편 썼는데 그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생각을 하며 부족하지만 해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밤 9시쯤 도착한 시청광장은 토론회 준비로 부산했다. 국민대책회의에서는 성별, 직업, 나이, 지역 등을 고려해서 패널들을 다양하게 선정했다고 들었는데 사전에 서로 소개하는 자리에서 실제로 의사, 교사, 주부, 농민, 대학생, 노동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패널 모두 닉네임으로 소개

서로 소개하면서,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웹상에서 쓰는 '귄태로운창', '아름다운청년', '두아들의아빠' 등의 닉네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지금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운동에서에서 온라인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16명에 달하는 패널 인원으로 인해 한 번의 발언은 3분으로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사전 논의의 핵심이었다. 새벽 3시 반까지 예정된 300분 토론이지만, 한 명이 3분씩 세 번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될 듯 했다.

10시에 시작될 국민대토론회는 11시로 늦춰졌다. 그날 오후에 발표된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관련된 전문가 좌담회가 잡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여전히도 재협상 불가원칙, FTA체결에 대한 당위성, 진의가 의심스러운 '국민을 모시겠다'는 말만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전문가 좌담회에서는 알맹이 없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제 곧 추가협상을 근거로 한 관보개제가 이루어질 것임을 공유했다. 8개월 동안 냉동창고에 있던 미국산 쇠고기들이 시장에 풀리는 순간이다. 물러설 수 없는 시간이 곧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회는 11시가 조금 넘어서 시작되었다. 논의가 진행되면서 이 토론회가 전체 시민들의 균열지점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패널들 모두는 지금의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6월 10일 이후 적지 않은 이들이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정부를 지켜보자, 혹은 거리정치로는 한계가 있으니 국회에 공을 넘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분명 그런 의견과 계속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의 차이를 쟁점으로 다룰 필요가 있었지만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의제 확대에 대한 부분도 그랬다. 미묘한 차이는 존재했지만 대부분 의제확대에 찬성하는 쪽이었다. 다음날 방송을 보니 내가 의제확대에 반대하는 쪽으로 다뤄져 '편집'의 힘에 놀랐다. 내 이야기는 의제확대는 이미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기에 따로 논의할 부분이 아니며, 국민대책회의가 그것을 슬로건으로 걸지 말지 논의하는 것은 이 자리의 성격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더 확실하게 균열지점 드러낼 수 있는 토론 되었으면

이미 초창기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문화제에서, 광우병 쇠고기만큼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0교시 폐지 등 교육문제였다. 의제는 참가한 이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연스레 의료문제,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 등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런 흐름이 있는데 '할지/말지'를 논의하는 것은 이 자리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의제 확대 역시 쟁점이 되지는 못했다.

물론 네티즌 의견에서 앞선 패널들과는 다른 의견들이 나오긴 했지만, 구조상 현장의 패널들이 중심이 되는 토론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조금 더 확실하게 균열지점을 드러낼 수 있는 토론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게다가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16명의 패널들이 섭외되었는데 발언시간의 한계로 인해 다들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려웠다.

이 부분은 사전에 예상되었고, 그럼에도 다양한 의견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고 들었지만 이후 2차 3차 토론에서는 현장 패널의 규모를 줄이고 오히려 다른 방식의 의견청취 방식을 높이면 어떨까 한다.

역시 뜨거운 감자는 정권퇴진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명박 퇴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참가하신 패널 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패널들은 퇴진 이후에 상황이 불확실하다, 여론은 거기까지 원하진 않는다, 개인에 대한 공격보다는 사회구조에 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나의 입장은 의제 부분과 마찬가지로 정권 퇴진 역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흐름이라고 봤다. 사실 이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기간에 부시를 만나서 화끈하게 내주고 온 것이고, 80% 넘는 이들이 원하는 재협상을 못한다고만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퇴진요구가 나왔던 것이다.

문제는 6월 10일 이후 정권의 가시적인 변화가 없자 정권 퇴진으로 수위를 높이고 촛불이 아닌 재신임 국민투표 등의 방식으로 인위적인 변화를 고민하는 흐름인데, 난 이 방식에는 반대했다. 끈질기게 촛불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주성영 의원의 화끈한 자살골에 밀려버린 국민토론회

토론회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다음날 언론에서는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투로 기사가 나왔던데, 형식적으로도 2차, 3차 토론회가 있기에 결론을 내는 방식의 토론이 아니었다. 또한 결론이 아닌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자발적인 공간에 모여서 토론을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했다. 이후 있을 2차, 3차 토론은 오늘을 바탕으로 보다 치밀하게 구성되어서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안타깝게도 국민토론회가 진행되던 시간, 100분 토론에서 주성영 의원은 역사를 만들고 계셨다.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인터넷을 확인했는데 모든 포털의 검색어는 '주성영', '주성영 100분토론', '주성영 진중권', '주성영 망언'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 역시 다시보기로 잠깐 봤는데 국민토론회가 밀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화끈한 자살골들이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가게 해주는 또 다른 힘이긴 하지만 말이다.

비록 같은 시간대에 진행된 100분 토론만큼의 스펙터클은 없었지만, 이번 토론회는 분명 촛불의 또 다른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보수언론들이 '변질'이라고 말하던데 같은 현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렇게도 다른가 보다. 촛불은 이미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정치'라는 말만 들으면 혐오하게 만든 이들이 죄책감은 못 느낄망정 '순수'와 '정치'라는 구분으로 촛불을 비난하는 것은 난센스다. 정치야말로 인간의 가장 품위 있는 행위이다.

그 품위 있는 정치를 이제 시민들은 제대로 해보고자 한다. 시민들은 국민주권원칙을 외치며 정치의 주체로 거리에 섰다. 늘 배제되어있던 이들이었다. 투표권도 없었던 학생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들, '이명박 OUT'이라는 예쁜 빨간 티를 입으신 할머니들, 그리고 삶에 찌들려 있던 수많은 사람들. 이제 그들이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토론하고 합의해서 행동하려 한다.

촛불집회는 이렇게 점점 품위 있는 '정치'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재 뿌리는 사람들이라도 이것은 꼭 알아야 한다. 이게 사회의 진보이며 역사의 발전이다. 중고등학교 역사책만 봐도 안다.


태그:#국민토론회, #광우병, #촛불집회, #이명박퇴진, #국민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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