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있어서 원초적인 본능이 둘 있다. 하나는 식욕이고 다른 하나는 성욕이다. 이는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다. 이중에서도 앞서는 것은 바로 식욕이다. 원초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다른 그 무엇도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이는 비극이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시는 이런 본능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시는 이런 원초적 욕구가 모두 다 충족되고 난 뒤에 생기는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예술 행위다. 맑은 영혼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문학이다. 문학 중에서도 시는 더욱 더 정수만을 요구한다. 마음과 마음에 공명될 수 있는 시어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능을 노래한 시가 있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시들은 노래가 아니라 차라리 절규다. 그것도 원초적인 외침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시원적 욕구인 것이다. 이리도 아프고 참담한 노래가 있단 말인가? 이리도 마음 저리게 다가오는 시어들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시어를 통해 형성되는 이미지는 마음을 무겁게 그 것도 아주 무겁게 내려앉게 만들고 있다.
탈북 시인 장진성이 두만강을 건너면서 가슴에 품고 왔다는 시집이다. 사선을 넘으면서도 시인의 사명감을 잊지 않고 참상을 알리기 위하여 가지고 온 시라고 하였다. 시인의 올곧은 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2008년 5월 7일 조갑제 닷컴에서 펴낸 시집이다. 심금을 울리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그릇 더운 밥/ 목매어 세어보니/ 어머니가 그동안 못 드셨던/450개 밥알이었네] - ‘밥알’ 부분
[밤이라면/시퍼런 풀죽으로만 얼던 아이/생일날 하얀 쌀밥 주었더니/싫다고 발버둥치네/밥 달라고 내 가슴을 쥐어뜯네.] - ‘밥이라면’ 전문
[누구나/침통하게 쳐다보는/삼백만의 무덤이다.] -‘궁전’ 부분
[아빠 나두 젖 먹었나? - 중간 생략 - /넌 엄마눈물 먹었다.] - ‘젖’ 부분
[그는 어머니였다/딸을 판 백 원으로/밀가루 빵 사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내 달을 백 원에 팝니다.’ 부분
[돌처럼 얼어붙은/국경 두만강/뛰어가면 몇 발자국/넘으면 단 몇 초//고작/이것이었던가/우리에게 한생 없어보이던/자유의 거리가/해방의 시간이] -‘두만강을 넘으며’ 전문
[우리의 고통은/지금부터 시작이다./말로만 들어왔던/분단된 조국의 비극이/우리의 아픔에서 또 시작이다.] -‘반세기를 넘어서’ 부분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시어들로 가득 차 있다. 읽고 낭송하고 또 되뇌어볼수록 더욱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시들이다. 그렇지만 시어들은 살아서 머리에 박히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저절로 가지게 한다. 원초적 절규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가슴과 가슴에 전해지는 참담함이 부르르 떨리게 만든다.
분단의 고통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된 작품을 본적이 없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하려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걸어온 길을 돌아다보게 하고 앞으로 어디로 향해서 걸어가야 할 것인지를 숙고할 수 있게 해주는 시집이다. 일독을 권한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