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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지면서 하루에 한번은 꼭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수박이나 참외껍질 등 과일소비가 많은 요즘은 바로 버리지 않으면 냄새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아파트 한구석에 마련된 음식물쓰레기통은 청소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날마다 주변을 깨끗이 하지만, 나오는 쓰레기는 너무나 많아 비상용이 하나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물가가 오르고 생활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 때에, 음식물쓰레기통을 열어보면 정말 그런가 싶을 정도로 멀쩡한 먹을거리들이 들어가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생고구마가 작은 소쿠리 한가득 정도 버려져 있을 때도 있고, 냉동실에서 갓 나온 것 같은 갈치가 뭉텅이로 들어가 있을 때도 있다. 그 뿐인가. 제사를 지내고 바로 내다버린 것처럼 수박 윗부분이 살짝 베어지고 통째로 버린 것도 있다.

 

'세상에… 이런 걸 어떻게 버리는 걸까?'

 

아까운 마음은 당장이라도 꺼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먹을 만하고 쓸 만할 때 이웃을 주거나 같이 불러 먹었다면 이런 쓰레기는 나오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이  아쉽다.

 

그러나 한편, 내가 나누려고 하는 것들을 이웃이 흔쾌히 받아주는 게 요즘 어디 쉬운 일이던가. 얼굴은 알아도 말 한번 건네지 못한 옆집 사람에게 평소 하지 않던 웃음을 보이는 것도 왠지 쑥스럽거늘 말을 붙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복도식 아파트에 산다. 열두 가구 한 층에 엘리베이터는 두 개가 있다. 우리 집을 포함해서 양쪽으로 여섯 가구가 오며 가며 얼굴을 마주치면, 애들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정도는 하고 산다. 수년을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3년째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꽤 잘 어울리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친정에서 갖고 온 대파와 완두콩이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았다. 적당히 내가 먹을 양만 대충 정리해놓고 나머지는 모두 다듬었다. 지난 금요일 오전엔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아주머니로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는 뭔가를 들고 계신다. 그리고는 겸연쩍게 웃으셨다.

 

 쑥향기와 아주머니 정성이 더 쫄깃하고 맛좋았던 쑥개떡.
쑥향기와 아주머니 정성이 더 쫄깃하고 맛좋았던 쑥개떡. ⓒ 한미숙

"이런 거 줘도 젊은 사람이 잘 먹으려나 모르겠네."

"어머, 이거 쑥개떡이잖아요. 우리 식구는 참 좋아해요."

"그라믄 다행이네. 올봄에 쑥 뜯어다가 떡해서 얼려놨던 거여."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아주머니는 손바닥만큼 큼직하게 만든 쑥개떡을 두 개씩 비닐에 담아 얼린 것 세 뭉치를 갖고 오셨다. 대파와 완두콩을 조금 드렸더니 뭐라도 주고 싶었나보다. 아주머니는 이곳 아파트에 처음 입주하던 십여년 전부터 살고 계신다. 우리는 이사 와서 어수선한 시간이 얼추 지나자 같은 층에 사는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침저녁 직장과 학교를 오가는 시간들은 대충 비슷하여 엘리베이터에서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웃들은 살고 있는 모습들도 다양하다. 과일점을 하는 아저씨도 있고 택시운전을 하는 분도 있으며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시간제 알바를 하는 30대 현이 엄마도 있다. 서울의 '강부자'는 아니더라도 제 각기 열심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서민들이 바로 내 옆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서로 나누는 인사가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흐리거나 맑거나 날씨 얘기는 단골메뉴다. 요즘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때문에 나눌 얘기는 더 많아졌다. 트럭에 과일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아저씨는 기름값이 무섭다고 하고, 현이 엄마는 바빠서 뉴스도 잘 안 본다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남매가 시험결과에 따라 우열반으로 나눠질까 전전긍긍한다.

 

이웃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슨 고민이 있는지 건네는 인사로 짐작할 뿐이지만, 내 말을 얘기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힘을 받는다. 내 집의 냉동실이나 냉장고에서 꺼내져야 될 음식들, 아니 음식들이 아니라 내 '욕심'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지금 훑어보자. 옆집 아주머니가 망설이다가 건넨 쑥개떡을 밥통에 넣어뒀다 꺼내 먹으니 여름 간식으로 이렇게 훌륭한 게 없다.

 

나한텐 너무 많아 짐스러운 음식들.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면 집안 냄새 신경 쓸 것 없이 깔끔하게 처리된다. 그러나 돈은 쓰레기통에게 넣을 수 없다. 그 아까운 '돈'을 이웃과 함께하려는 '용기'를 내보자. 정으로 돌아오는 인정이 팍팍한 세상을 살맛나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음식물쓰레기#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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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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