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창조하시고 온갖 동물과 인간까지 만든 후 은퇴하신 하느님, 어느 날부턴가 하루하루가 지루하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인간을 보니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이따금 담배를 피워 물고 꼬냑을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인간들이 행복하게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보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성자 베드로와 함께 뭔가 일을 꾸민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느님을 의인화하여 풍자적으로, 때론 우스꽝스럽게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는 '장 루이 푸르니에'의 소설 이야기다.
푸르니에는 그의 소설 <하느님이 뿔났다>(예담 펴냄)에서 나만 알고, 내 가족, 내 나라만 생각하면서 경제적인 풍요만 누리면 환경이야 어찌 되든, 다른 사람이야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은 오늘의 현실을, 자화상을 신랄하면서도 은유적으로 비꼬고 있다.
'요 하느님 참 고약하네'
처음 책장을 넘기면 '뭐 이래?'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다 한장 한장 넘기면 웃음이 나오면서 '요 하느님 참 고약하네'하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하느님이 뿔났다>에 나오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지만 사랑이 많은 하느님도, 엄한 하느님도 아니다. 심술꾸러기요, 질투심의 화신이요, 행복해(?) 하는 인간의 꼴을 절대 봐줄 수 없는 한 마디로 고약스런 인물이다.
여기서 굳이 인물이라고 칭한 것은 하느님이되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하기 전엔 근면하게 일을 했다. 은퇴 후엔 연금을 받고 근사한 아파트에서 퇴직자 생활을 한다. 2층 테라스에 앉아 망원경으로 인간들의 삶을 내려다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의 모습에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너무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을 불행으로 만들까 궁리하기 시작한다. 이 궁리엔 은퇴한 성자 베드로도 함께 한다.
그럼 하느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간을 덜 행복하게 할까. 그것이 역설적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푸르니에는 하느님의 손으로 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세상을 보고 기분이 나쁜 하나님은 인구를 증식시킨다. 인구과잉으로 아비규환의 지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하느님은 또 질투가 생긴다. 그래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사라지게 한다. 노화가 생기게 하고 주름살이 생기게 한다. 여성의 각선미 넘치는 다리엔 정맥류가 생기게 한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유지 못하는 형벌을 내리게 한 것이다.
또 음식을 상하게 하고, 쓰레기더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게 한다. 파리떼, 모기떼가 들끓게 한다. 잠 못 드는 밤을 만들기 위해 소리도 나고 고약한 냄새도 나는 내연기관을 만들고 만족해한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인간들이 만든 것들이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도 또한 인간이다.
음식만 해도 그렇다. 지구 한쪽에선 굶어 죽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선 남아 돌아 쓰레기가 된다. 그 쓰레기더미에선 파리 모기 같은 곤충들이 들끓고 병원균을 옮긴다, 그러면서 그 병원균을 죽이기 위해 약품을 만들어 낸다. 한 마디로 지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 하느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자선은 끝났으니 이제 돈을 내시오."
낙원에서는 돈이 필요 없었다. 입장은 무료였으며 과일과 채소는 공짜였다. 하느님은 베드로 성자에게 종이 한 장과 색연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정성껏 자신의 이미지를 본 딴 최초의 지폐를 그렸다. 완성되자 베드로 성자 앞에서 자랑스럽게 그 지폐를 흔들었다.
"자, 이걸 잘 보게. 이걸로 세상을 쑥대밭을 만드는 거야."
하느님은 덧붙였다.
"앞으로 인간들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돈벌이에만 전념해야 할 테니까."
- '최초의 지폐를 그리다' 중에서
물질에 사로잡힌 인간세계 풍자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인간 세계를 풍자한 이야기다. 오직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마음보다는 돈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현실의 모습을 작가는 하느님의 말을 빌려 비꼬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화약은 또 왜 발명하셨습니까'에선 화약을 터트리고 종교전쟁이란 이름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인간세계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은 기뻐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때론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서로 죽이는 인간들. 하느님은 그런 인간들이 정말 보기 싫었을 것이다. 왜? 그건 하느님의 목적이 아니니까. 그래서 작가는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그런 인간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으로 인해 인간성은 말살되어가고 있다. 자원은 고갈되어 세계는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이상 기후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간다. 또 환경파괴와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 때문에 광우병 같은 이상한 병이 생기고, 이에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고 미련을 떠는 인간들이 하느님은 미웠을지 모른다. 화났을지도 모른다. 뿔나고 짱 난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아름답게 만든 지구를 지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똥침을 날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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