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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원은 20년간 같이 의원을 한 정든 친구인데 이렇게 경합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박희태 후보)

 

"저도 그렇다. 그런데 오래 사귀어도 모르는 건 모르나 보다."(정몽준 후보)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인 박희태·정몽준 후보가 나눈 뼈있는 대화다. 26일 열린 첫 TV 합동토론회에서다.

 

박 후보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대세론을 만드나 싶더니 최근 정 후보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박 후보의 뒤에선 영남권 중진 그룹과 친이 진영이 돕고 있다. '외지인'이나 다름없는 정 후보는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바닥 표심을 훑고 있다. 한 의원을 세 번씩 만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진영(1번)·박희태(2번)·공성진(3번)·허태열(4번)·박순자(5번)·김성조(6번)·정몽준(7번) 후보는 이날 오후 MBC 합동토론회에서 바람직한 당·정·청 관계, 내각 개편, 공기업 민영화, 권력 사유화 논란, 친박복당 등 당에 닥친 현안에 대해 입씨름을 벌였다.

 

그러나 사안별로 뚜렷한 견해 차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토론회의 긴장도도 떨어졌다. 다만 대표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박희태·정몽준 후보의 은근한 신경전이 관심을 끌었다.

 

한나라당은 다음 달 3일 전당대회를 열어 대표 최고위원과 최고위원 4명을 뽑을 예정이다.

 

박희태 "난 노련한 선장... 당·청간 고속도로 만들겠다"

 

유일한 원외후보인 박 후보는 5선의 정치 연륜을 내세우며 자신을 '노련한 선장'으로 표현했다. 박 후보는 "태풍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련한 선장이 필요하다"며 "여당 10년, 야당 10년을 한 경력을 살려 나라를 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박 후보는 "청와대와 국민 간 의사가 소통이 안 된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대표가 되면 소통의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두고 '관리형 대표'라고 일컫는 데 대해서도 적극 반박에 나섰다. 대통령이 총재를 겸하며 여당을 쥐락펴락했던 과거의 '허수아비 대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탓이다. 박 후보는 "'고분고분 야당'이 아닌 '꼿꼿한 여당'을 만들겠다"며 "내가 대통령과 가까우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맞받았다.

 

박 후보는 "대통령과 전혀 불통인 사람이 얘기하면 오히려 의견이 전해지지 않는다"며 "남편에게 가장 충고를 잘하는 이가 아내이듯 그런 대표가 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반대한다면 대운하 사업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일을 거론하며 "우리들(측근)의 끈질긴 조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저더러 '관리형'이라고 부르는데 내 입으로는 그런 얘기를 한 일이 없다"며 "나는 '화합형'"이라고 강조했다.

 

정몽준 "강력한 신형 엔진 필요한 때... 당 변화시키겠다"

 

반면, 정몽준 후보는 당의 변화를 강조하며 "지금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신형 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와 강한 추진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정 후보는 만 58살로 박 후보보다 13살 아래다.

 

정 후보는 '쇠고기 정국' 때 당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못 냈다는 지적을 의식해 "이 어려운 위기에 한나라당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당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 후보에게는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무소속이던 정 의원은 지난해 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정 후보는 이와 관련 "저는 후보 중 제일 다선인 6선"이라며 "그런 저를 보고 뒤에서 '열중쉬어'만 하고 있으라고 한다면 당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맞받아 쳤다. 이어 "저에게 당에 들어와 달라고 해 들어왔고 (5선을 한 울산이 아닌) 서울로 출마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며 "앞으로도 능력이 닿는 한 한나라당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성조 후보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했던 일을 거론하며 "해당 행위를 한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당시 이회창 후보는 국민의 열망인 변화의 욕망을 충족하는 후보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한나라당은 좋은 당이라고 생각한다"고 되받았다.

 

3조6천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정 후보가 대표가 되면 과거 '웰빙당', '부자당' 이미지가 되살아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서민이 아니면 서민사정을 잘 모르느냐고 하는데 대머리에게 필요한 발모제는 꼭 대머리만 개발해야하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박 "정 의원도 계파 만드는 것 아닌가" - 정 "나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

 

이날 토론회에서는 박희태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은근한 기 싸움도 엿보였다. 두 명씩 상대를 정해 질문하는 상호토론 때다. 차례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각각 서로를 지명해 질문했다.

 

박 후보는 "정 후보와는 20년간 의원생활을 같이 한 정든 친구인데 이렇게 경합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화합의 풍토를 만든 뒤에 (차기) 대권주자들이 옥토 위에서 경쟁하도록 해야하는데 정 후보는 (우리 당에) 너무 빨리 왔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박 후보는 "정 후보가 대표가 되면 (다른 대권주자들처럼) 혹시 계파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정 후보는 즉각 반론을 폈다. 겉으론 웃었지만 목소리에서 불쾌감이 묻어났다.

 

정 후보는 "저도 박 후보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주고 받게 될 줄 몰랐다"며 "오래 사귀어도 (상대방에 대해) 모르는 건 모르나 보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제가 전혀 분별 없는 사람이라면 계파를 만들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또 정 후보는 "당 대표 자리는 고난의 자리라 의욕 있는 분이 해도 쉽지 않은 자리다. 저희가 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상대적으로 고령인 박 후보의 나이를 부각시켰다.

 

다음은 주제별 후보들의 주장 요지이다(순서는 추첨).

 

▲ 바람직한 당·정·청 관계

 

정몽준 "이 어려운 위기에 한나라당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당이 바뀌어야한다. 민심을 정확히 정부에 전달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신형 엔진이 필요하다."

 

박순자 "국민과 함께 책임지는 국정의 중심에 서는 여당이 되도록 하겠다. 대통령과 민심이 소통되도록 쓴소리를 아끼지 않겠다. 무엇보다 어려운 서민 경제와 물가안정을 챙기겠다."

 

박희태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이 태풍을 벗어나기 위해 노련한 선장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국민 간 소통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싫은 소리, 고운 소리 모두 하는 꼿꼿한 여당이 되겠다."

 

공성진 "대의 민주주의가 실종되는 정치 위기다. 대표가 된다면 정부 뿐 아니라 국민과도 소통하겠다. 소통과 쇄신으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정부가 되도록 하겠다."

 

김성조 "우리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천막당사'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저는 다른 후보들보다 소통하기 좋은 눈높이를 가졌다. 국민과 함께 하는 당을 만들겠다."

 

허태열 "이 비상한 시국을 뚫기 위해 '비상한 지도부'를 꾸리지 못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이면 당은 또다시 위기에 당면할 것이다. 당을 바로 세워 국민과 소통하는 한나라당을 만들겠다."

 

진영 "대통령이 당에 지침을 주면 그대로 시행하던 때는 지났다. 그러나 그간 갈팡질팡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바뀐 시대에 맞는 당·청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 내각 개편 폭(※박순자 후보는 발언하지 않음)

 

정몽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넓게 인재를 두루 등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여야를 아울러 좋은 분들이 참여해야 한다."

 

공성진 "내각의 개편은 국민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야 한다. 윤리적 기준에 맞는 장관들이 채워줄 수 있도록 새 당과 새 청와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허태열 "최근 보도에 따르면 촛불집회가 다소 수그러졌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다고 해서 중폭개혁을 해서는 안된다."

 

진영 "대폭의 개혁이 필요하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대폭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김성조 "여야를 초월해 거국 내각에 가까운 내각을 만들어야 한다. 제도권 정당에 속하지 않은 분들도 당연히 환영한다. 폭넓은 인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희태 "국민의 쇄신 바람과 국정의 안정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정치력이 없는 분들이 내각과 청와대 있어서다. 국회의원들이 입각하면 좋겠다. 인재 풀도 '천하'에 두고 살펴봐야 한다."

 

▲ 공기업 민영화

 

진영 "공기업 선진화·공기업 합리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민영화는 민간에 맡겨 경영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인데 아예 민간에 매각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박순자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은 개선, 민영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선 안된다. 근로자, 학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거치자."

 

공성진 "공기, 땅, 물, 전기, 가스 등은 국가차원의 공기업이 관리해야 한다.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경영능력이 뛰어난 민간인 CEO를 영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성조 "전기, 수도, 가스, 건강보험 등 공공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민영화를 서두르는 것은 옳지 않다. 기획재정부 산하에 공기업 관리 기구를 설치하자."

 

허태열 "민영화·선진화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그러나 국민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거나 국가전략에 해당하는 공기업은 관계자나 국민의 협조와 설득이 필요하다."

 

정몽준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이 우정성하나 민영화하려다 자민당이 분열상태까지 갔다. 우리는 민영화 고려 대상이 200~300개라고 하는데 이런 점을 잘 고려해서 해야한다."

 

박희태 "공기업 민영화나 선진화엔 찬성한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혁명하듯 해선 안된다. 단계적이고 개별적으로 소리 안나게 정리해 나가는 게 옳은 방향이다."


태그:#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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