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수업,’ ‘영어몰입교육,’ ‘학교자율화’ 때문에 학생들과 대한민국이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이상해지는 시대이다. 공부 때문에 다들 이상해지는 이 때 ‘공부’ 이야기 한 번 들어보자. 지금도 이상해지는데 ‘공부’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지만 이 분이 말하는 공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가 쓴 <공부도둑>이다. 장회익 교수는 고체물리학과 물리학기초이론을 전공한 물리학자이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민주화운동과 환경운동에 삶을 바친 사람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칠십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은 공부인생을 이 책에 담았다.
<공부도둑>은 곳곳에서 상 할아버지(장회익 교수 5대조)와의 가상의 대화를 통해 읽는 이들을 재미와 사색으로 이끈다.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면 책을 덮는 재미있는 독서법을 가졌던 아버지, 제도권 학교에는 보내지 않으셨던 할아버지를 통하여 ‘자기 안에 있는 스승을 통해 배우는 법’ ‘학문의 길에도 야생이 있음’을 통하여 공부가 온실 속 꽃이 아니라 야생에서 피는 잡초 같은 것임을 책 곳곳에 보여주고 있다.
야생을 생각하면 무자비함과 잔인함을 떠올리겠지만 장회익 교수는 달리 생각한다. 야생은 생존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어진 여건과 조화를 이루어나갈 뿐 경쟁을 위한 경쟁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야생의 세계에는 ‘길들여진 경쟁’이 없다. 강아지나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하나같이 미끼를 활용하고 경쟁을 조장한다.”(276쪽)
장회익 교수가 학생일 때나 지금이나 제도권 교육은 길들이는 경쟁일 뿐이다. 미끼 하나를 던져주면서 이기는 실력만 가르친다. 이렇게 길들여진 사람은 다른 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모른다.
장회익 교수는 야생에서 잡초 같은 삶을 살아오면서 경쟁과 이김의 공부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삶을 위하여 공부했다고 말한다. <공부도둑>이란 제목을 언뜻 생각하면 입신출세를 추구한 삶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그는 공부, 곧 학문의 길이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학문 그 자체는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요즘은 가히 경쟁만능 시대라 할 만큼 모든 것을 경쟁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학문은 기여이고, 협동이지 결코 경쟁이 아니다.”(274쪽)
공부를 입신출세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다. 장회익 교수는 개인의 입신양면만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학문도 거부한다. 그가 공부하는 최종목적은 지구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인민을 위함이다. 모든 인민을 위한 학문이기에 ‘공부도둑’이라는 말이 왠지 낯설지 않고, 심지어 읽는 과정에서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위한 공부꾼으로 살아가려는 장회익 교수에게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바깥세상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인슈탄인을 상대성이론을 정립한 과학자로 이해하지만 그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예리한 안목을 지녔으며, 이를 과감히 전파한 사람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긍정형의 천재와 부정형의 천재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탄인은 대표적인 부정형 천재다. 부정형 천재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관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과감히 척결한 후 그로써 생기는 공백을 자신의 창조적 작업을 통해 메워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대안이 없는 비판자가 아니라 대안을 창조하는 비판자가 된다. 이러한 작업이 과학으로 향하면 혁명적인 새 과학이론이 나오며, 사회로 향하면 혁명적인 새 사회사상이 나온다.”(283쪽)
바깥세상으로 나온 그가 지향하는 삶은 ‘생명’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명은 낱생명이었다. 낱생명은 나무에 비교하면 ‘나뭇잎’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생명이다. 여기에 ‘보생명’이 함께 해야 한다. 보생명은 ‘나무둥치’를 말한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다. 진짜 나무가 되려면 나뭇잎과 나무둥치가 붙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온생명이다.
낱생명과 보생명이 떨어지면 생명이 아니다. 붙어 있을 때 온전한 생명, 온생명이 된다. 이 온생명을 위한 공부, 학문이 진짜 학문이다. 세분화된 이 시대 학문에 대한 비판이다. 장 교수는 학문을 하는 이들에게 통합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그리고 학문이 자연과 사람, 그 자체를 보면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살맛나는 공동체를 이루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온생명은 결국 자연과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개념이다.
"나는 한 개체로서 10년, 20년 혹은 60년, 70년 전에 출생한 그 누구누구가 아니라 이미 40억 년 전에 태어나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살아온 온생명의 주체이다. 내 몸의 생리 하나하나, 내 심성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이 40억 년 경험의 소산임을 나는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내 진정한 나이는 몇 십 년이 아니라 장장 40억 년이며, 내 남은 수명 또한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아니라 적어도 몇 십억 년이 된다. 내 개체는 사라지더라도 온생명으로 내 생명은 지속된다. 지금 나는 오직 ‘현역’으로 뛰면서 온생명에 직접 기여할 기회를 누리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좀더 큰 의미의 생명 그리고 좀더 큰 의미의 ‘나’는 앞으로도 몇 십억 년 혹은 그 이상으로 지속될 온생명이 된다."(347쪽)
이 고백을 읽다보면 <공부도둑>을 공부 잘하기 위한 비법으로 여겨 책을 든 자신이 무참히 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입신출세와 입신양면, 경쟁만을 위한 '공부'는 이 대목에서 깨진다.
내가 앎을 통하여, 깨우친 학문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구 위를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내가 비록 앞서가지 않더라도 그 공부는 결국 다른 이를 위한 씨앗이 되는 것이다. <공부도둑>은 '공부' 때문에 이상해져버린 대한민국에 정말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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