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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부엌이 바야흐로 매우 붐비는구나
▲ 6월 29일은 크리스탈워터스 축제날 공동부엌이 바야흐로 매우 붐비는구나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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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우리는 드디어 그날을 맞았다. 6월 29일, 이날은 우리가 두 달 전부터 점찍어놓고 눈여겨봐오던 날이다. 형태를 보아선 그다지 특별할 것 같지도 않은 날인데 유독 크리스탈워터스에 와서는 꽃이 되었다. 이것이 뭔 날이냐, 바로 크리스탈워터스 생일. 그것도 올해는 무려 20번째 생일이다.

준비는 두 달 전부터... 두 달 전부터?

이 날을 위해 두 달 전에 이미 준비 위원회가 결성됐고 요리팀, 홍보팀, 관리팀 등등 다양한 팀이 꾸려졌다. 이에 대한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도 크리스탈워터스 전 가구에 뿌려졌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두 달여 전, 메일을 받은 맥스는 우리들도 준비 위원회에 들라고 지속적으로 독촉했다. "마을 활동에 참가해봐라, 이런 게 바로 배움이다." 이틀에 한 번 독촉하면 모르겠는데 맥스는 하루에 한 번, 때론 두 번 잊지도 않고 꼬박꼬박 독촉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 모두는 각각 팀에 자원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크리스탈워터스 기억 속으로'팀, 브렌단은 홍보팀, 알리샤와 성천이는 '아이들과 놀아주기'팀, 우구는 청소팀. 어쩐지 내 팀 이름이 제일 멋져보여서 으쓱했다.

맨 처음 준비팀에 들어가게 됐을 때 나는 두근두근 기대가 컸다.

'야, 이거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모여서 서로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때로는 뜨겁게 논쟁도 벌이고 그러나 결국은 아름답게 화해하고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청춘을 빛내겠구나.'

그러나 거사를 하루 앞둔 6월 28일 자정까지 내가 한 일은, 회의 1회 참가가 전부였다. 그것도 준비 위원회 전체 회의였다. 준비 위원회 전체 회의는 거의 매주 한 번씩 있었던 모양이지만 팀 회의는 28일 전까지 없었다. 나만 열외로 특별대우를 받은 건가 아니면 여기서도 벼락치기 하시는 건가.

크리스탈워터스 기억 속으로

28일, '크리스탈워터스 기억속으로'팀은 모였다. 약속 시간이 11시였는데 내가 5분 정도 늦었다. '이런 큰 일 났다. 이미지 관리해야지'하고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 구경하기, 멍하니 한 사물만 뚫어지게 바라보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니 11시 20분쯤에 다른 팀원들이 왔다.

크리스탈워터스가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있었던, 퍼머컬쳐에 관한 책도 쓰고 코스도 가끔씩 진행하는 로빈. 역시 크리스탈워터스 초기부터 거주했던 걸걸한 아줌마 데니스, 96년쯤에 크리스탈워터스에 와서 현재는 반상회 총무로 있는 제니.

우리가 할 일은 크리스탈워터스 생일파티가 열리는 공동부엌에 둘러친 벽을 따라 사진으로 보는 크리스탈워터스 역사 길을 내는 것. 이를 위해 많은 거주자들로부터 수많은 사진들을 수집했다. 데니스가 어제 밤늦게까지 정리한 사진들이 준비되었으니 자리를 잘 잡아 붙이기만 하면 된다.

내 옆으로는 로빈이.
▲ 그래서 붙였다 내 옆으로는 로빈이.
ⓒ 정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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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부엌을 둘러싼 유리문벽을 가로지르는 '크리스탈워터스 추억길'. 11시 반쯤부터 4시에 이르기까지. 점심을 쿠키로 때우며 일한 보람.
▲ 해냈다 공동부엌을 둘러싼 유리문벽을 가로지르는 '크리스탈워터스 추억길'. 11시 반쯤부터 4시에 이르기까지. 점심을 쿠키로 때우며 일한 보람.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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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이전, 크리스탈워터스에 첫 입주자가 들어오기 전, 크리스탈워터스의 댐이며 뭐며 열심히 지어지고 있던 당시의 사진부터 2008년 크리스탈워터스 반상회 회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20년 역사가 쭉 늘어서니, 고작 3개월 동안 크리스탈워터스에 머물었던 나도 감회가 새롭다. 크리스탈워터스가 지어지고, 사람이 와서 살고, 다같이 모여 크리스마스며 결혼식이며 이벤트한 거며 행사한 거며 파티한 것 등, 다들 20년 기억 길을 따라 흐른다.        

파티 속에서 역사는 흐른다

그래서 6월 29일 당일 오전 11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크리스탈워터스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오고, 지금은 크리스탈워터스를 떠났지만 전에 살던 사람들도 초대받아 왔다.

마을 만능 수리사 토니가 색소폰을 불고, 매회 마을 이벤트면 음악부를 담당하는 탐이 키보드 치며 노래도 부르고.
▲ 생음악도 흐르고 마을 만능 수리사 토니가 색소폰을 불고, 매회 마을 이벤트면 음악부를 담당하는 탐이 키보드 치며 노래도 부르고.
ⓒ 정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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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른 이후로 사람들이 케이크 받겠다고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벌떼 중엔 물론 나도 있었음.
▲ 20주년 기념 특별 케이크도 자르고 자른 이후로 사람들이 케이크 받겠다고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벌떼 중엔 물론 나도 있었음.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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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가 지금까지 이름만 들었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제프 영, 로버트 탭, 밥 샘플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크리스탈워터스 '역사' 내에서는 위인급 인물들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가 보자. 크리스탈워터스 생태마을이 생태마을이 아니었을 때. 그 때는 이 다소 넓은 땅에 몇 가구만이 대안적 공동체로 모여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마저 주 법률에 어긋난다고 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었다.

당시 이 땅의 소유자였던 밥 샘플은 당시 퍼머컬쳐 그룹을 결성하고 컨퍼런스를 갖는 등 적극적으로 퍼머컬쳐에 파고 들던 맥스에게 제안을 했다. '여기 이 땅을 실험의 장으로 제공해주겠다. 생태마을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 거기에다가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이 법률상으로도 떳떳해진다면 프로젝트는 성공인 거다. 내게는, 성공한 생태마을에서 10가구분의 토지만 배분해주면 된다'고 했단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시작인가.

크리스탈워터스를 실현한 디자이너 4인방, 그리고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밥 샘플.
▲ 크리스탈워터스 창립 위인들 크리스탈워터스를 실현한 디자이너 4인방, 그리고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밥 샘플.
ⓒ 정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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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을 받은 맥스는 같이 생태마을을 디자인할 사람들을 모았다. 맥스, 제프 영, 로버트 탭, 그리고 4편에서 소개한 베리굿맨까지 하면 크리스탈워터스 디자이너 4인방이 완성된다(이중 로버트와 베리의 나이 차는 30살이며 맥스와 베리는 20살 차이난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토론했다. 도로는 이렇게 지나서 저렇게 내는 게 좋다, 연못은 어디에다 만드는 게 좋다 등등. 때론 논쟁 끝에 누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지만 그 과정 다 거치고 해냈단다.

지금은 인공 연못으로 안 믿기는 연못. 대부분이 웃자란 풀들 무성한 벌판이었던 땅에 길을 내고 연못 만들고 저수지를 만들고 했다.
▲ 1988년 연못 디자인 지금은 인공 연못으로 안 믿기는 연못. 대부분이 웃자란 풀들 무성한 벌판이었던 땅에 길을 내고 연못 만들고 저수지를 만들고 했다.
ⓒ 정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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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이 디자인해 낸 생태마을에는 지금 약 2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마을은 변해왔고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있다. 그럼, 2008년 3월에는 나도 왔는걸.

요 사진도 이제는 '추억길'에 포함될 수 있겠구나
▲ 크리스탈워터스 현재 거주자들 모여라 요 사진도 이제는 '추억길'에 포함될 수 있겠구나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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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코너] 고마워 벌들아
생태마을에서 '벌치기'를 배워봅시다

6월 25일에서 26일 양일간, 맥스는 약 160리터의 꿀을 얻었다. 25일에는 트루디의, 26일에는 나와 우구와 성천이의 도움을 받아 기록한 결과(알리샤는 미국에서 온 가족과 함께 바닷가로 떠났고, 브렌단은 여권 연장하러 갔다) 올해 겨울에는(여긴 겨울) 정말 신기하게도 꿀이 척척 모인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 번 꿀 원정에 나갔다. 매번 맥스는 '이번이 올 겨울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꿀이 또 모이고 모였다.

벌치기에 대해서는 지난 6편에 약간 언급한 바 있는데, 오늘은 한 번 본격적으로 꿀을 얻는 과정을 사진으로 소개하려 한다. 난 처음에 되게 신기해서 다른 사람들도 보면 신기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은 세 번의 꿀 원정에 걸쳐 모인 것이다.

 
▲ 우주복을 입고 벌통에 접근한다 
ⓒ 신혜정,Alicia,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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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을 쓸어낸 벌통은 가져간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박스까지 따라오려는 벌들이 있는데 최대한 박스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벌이 박스 안에 담겨 실내까지 따라오면 꿀을 뽑는 과정 중에 벌들이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 비로 쓸든 입으로 불든 벌들을 벌통에서 떼어내자. 나는 열심히 입 내밀고 불어주다가 입술을 쏘였다. 이런 자식을 봤나.

 
▲ 맥스와 트루디의 주차장이다 
ⓒ 신혜정,Alicia Mar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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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가 다 차면 실내로 이동한다. 벌들은 꿀을 벌통에 저장하고 밀랍으로 안전하게 봉하기 때문에 벌통에 붙은 밀랍을 제거해줘야 한다. 한 쪽에선 밀랍을 제거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밀랍이 제거된 벌통을 기계에 넣고 꿀을 빼낸다. 아까 미처 벌통에서 못 떼낸 벌들이 실내에 웽웽거리므로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지금까지의 과정 중에 이리 묻고 저리 묻은 꿀은 깨끗이 햝아 먹는다
▲ 마무리. 지금까지의 과정 중에 이리 묻고 저리 묻은 꿀은 깨끗이 햝아 먹는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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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산뜻하게 꿀 내기 끝! 아, 물론 이제까지 쓰인 도구와 박스들은 깨끗이 박박 닦아주어야 한다. 그건 언제나 맥스의 일. 다음에 또 꿀 내러 가면 그때는 도와줘야지.


태그:#크리스탈워터스 , #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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