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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지금까지 그와 네 번 만났다. 처음 두 번은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만남이었고,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인 것이 세 번째 만남이었으니 실은 두 번 만났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두 번째 운남 여행을 떠났던 2005년 귀국하는 길에서였다. 쿤밍의 공항에서 지인의 소개로 스치듯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그저 그가 운남에 기거하며, 여행자들의 좋은 벗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그와 두 번째 만남 역시 그저 스친 인연이었다. 운남 남쪽 징홍에서였는데, 게스트하우스 '나무야(納木呀)'의 정원에서 여행객을 안내하고 온 그와 간단한 악수만 나누었다.

 

따리에서 여행과 삶을 이야기하다

 

그와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올 일월, 누지앙 여행을 위해 따리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넘버3'에 머물 때였다. 내가 도착한 날, 그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겨울 따리는 낮에 햇살이 더없이 따스하다가도 밤이면 살을 에는 추위가 몰려오곤 한다. 그래서 따리 여행자는 한낮의 햇살 아래 제 몸을 자주 덥히곤 하는 법이다. 아마 그도 그날 그렇게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층 도미토리 한 구석에 짐을 풀고, 테라스에 나와 서 있었는데, 그때 부부인 듯한 여행자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2인실은 없나요?"

 

여행자의 말에 그는 우렁우렁한 소리로 마치 자신이 '넘버3'의 주인인 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여기는 2인실이 없는데요. 요 아래 코리아나에는 있어요."

 

그러더니 그는 큰 소리로 게스트하우스 종업원을 불러 소리쳤다.

 

"코리아나에 2인실 비었지? 그럼 이 두 분 그리 안내해라. 거기도 여기하고 같은 곳이니까 걱정 말고 따라가세요."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는 그냥 햇볕을 쬐고 있었다. 얼마 후 투숙객 중 한 명이 쿤밍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해달라고 하자 그는 다시 종업원을 불렀다.

 

"너 삼촌이 버스표 판다고 했지? 그럼 가서 표를 구해와라. 얼마 깎을 수 있지? 깎은 값의 반은 너 갖고, 나머지 반은 표 사는 사람에게 깎아줘라. 서로 이익이니까, 됐지?"

 

표를 사는 사람도, 종업원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시원했다. 그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만했다. 그날 저녁, 회족 식당에서 양 꼬치구이를 앞에 놓고 그와 마주 앉았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자, 그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장애인 비행기 삯이라도 후원받았으면

 

- 장애인을 위한 운남 여행단을 꾸리고 있다는데, 언제부터 시작했나?

"2005년에 처음 시작했고, 2006년에는 걸렀다. 2007년에 두 번째 여행단을 꾸렸고, 올 여름에 세 번째 여행단을 꾸릴 계획이다."

 

- 참가 인원은?

"첫해에는 장애인 3명에 도우미인 비장애인이 나를 포함해 10명이었다. 작년에는 장애인 3명, 도우미는 운남에서 합류한 6명에 한국에서 오신 분이 7명이었다. 이 밖에도 여행지마다 만난 제가 운영하는 카페 회원님들이 여러분 도우미로 참여하였다."

 

- 참가하는 사람들에 조건이 있나?

"없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서로 마음을 열 준비만 되어 있으면 아무나 좋다. 작년에 참가한 장애인 세 명은 모두 휠체어를 타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아무 탈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장애의 등급을 정한 것은 나라에서 한 것이지 우리 여행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비장애인도 함께 여행할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으면 누구든 참가할 수 있다."

 

- 왜 장애인을 위한 여행단을 꾸릴 생각을 했나?

"몇 해 전, 리지앙의 호도협 트레킹을 할 때였다. 말도 힘겨워 헉헉대는 히말라야의 가파른 산길을 친구 등에 업혀 오르는 독일 청년을 본 적이 있다. 호도협은 당연히 휠체어도 갈 수 없는 곳이다. 사정을 물어보니, 그 청년은 호도협 트레킹을 하다 미끄러져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호도협을 잊을 수가 없어 친구 등에 업혀 오르고 있다며 그는 웃었다.

 

그가 그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마음의 고통이 있었을까, 저 웃음은 그런 아픔을 견뎌낸 사람의 달관 같은 것이 아닐까, 장애인이라고 왜 세상의 온갖 풍경들과 마주하고 싶은 절실함이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독일 장애인 청년이 장애인에 대한 내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 참가자들의 비용은 어떻게 하나?

"각자 부담한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실 비용만 내고 여행한다. 물론 여행 안내자인 나도 내 비용을 똑같이 낸다. 가능하면 장애인은 무료로 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다. 나는 그저 장애인이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 하필 장애인 여행지로 운남을 선택한 이유는?

"운남은 절박함과 넉넉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동쪽 자락이라서 고산의 험준함이 있고, 아열대성 기후 지역이라 사철 봄처럼 따뜻한 안온함이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장애인은 절박함과 넉넉함의 폭이 비교적 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이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운남의 자연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일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 장애인을 위한 여행단을 꾸리면서 어려운 점은?

"어려운 점? 없다. 나는 그냥 다 똑같은 여행자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느냐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 그런데 장애인을 위한 여행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우선 마음 자세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없다.

 

굳이 꼽으라면 경제적인 면이다. 작년 여행단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인천-상해-쿤밍을 이용해야 했다. 쿤밍 직항편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성수기인 여름에 여행단을 꾸리다보니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장애인들에게 환승은 무척 힘든 일인데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얼굴은 점점 열기로 가득 찼다. 장애인을 위한 여행단에 대한 그의 열정이 온몸에서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비행기표만이라도 마음 놓고 구할 수 있었으면, 장애인만이라도 비행기삯을 제공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이야기 끝에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씨익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이렇게 여행단을 꾸릴 수 있다는 게 저는 참 좋아요. 사실 저야 그냥 앞에서 일 추진하는 사람일 뿐이지요. 운남에 사는 분들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어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장애인을 위한 여행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여행지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분은 그 지역의 여행 경비와 식대를 제공해 주고, 후원금을 내 주시는 분도 많단다. 물론 그 후원금은 모두 여행단을 위한 경비로 사용한다.

 

"저는 그 분들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얻고 있어요. 사람에 대한 믿음, 삶에 용기를 북돋워주는 감동 같은 것이요."

 

그의 열정 때문이었을까? 그날 밤 따리에서 나는 술보다도 인간에 취해 비틀거리며 고성의 밤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2008 행복, 사랑 만들기 여행단

 

그와 네 번째 만남은 지난 6월 3일 대학로에서였다. 집안 일 때문에 잠시 귀국한 그와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나는 그저 회원 가입만 해 놓고 활동은 하지 않는 처지라 낯선 자리였는데, 나의 서먹서먹함은 금방 사라질 정도로 그들은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참석한 사람 중 두 명이 장애인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은평구에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빗줄기를 뚫고, 그 모임 자리까지 나왔다는 박부웅씨였다. 목발을 짚고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걸어왔을 그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다른 한 명 역시 걸음이 불편한 김중경씨였다.

 

작년 장애인과 함께 하는 운남 여행단에 참가한 사람들이라는데, 아마도 그 여행의 경험이 이렇게 먼 자리까지 나오게 만든 것이리라. 어쩌면 그들은 호도협의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걷듯, 서울의 길을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장애인에게는 세상이 모든 길이 히말라야를 걷는 것처럼 힘겨울 테니까 말이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자연 이야기가 올해 장애인과 함께하는 운남 여행단으로 옮아갔다.

 

"이번 여행단의 이름은 행복, 사랑 만들기예요. 나는 나와 함께 운남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사랑을 나누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거든요."

 

배경모씨가 또 그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올 해 여행의 테마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두 명의 장애인은 올해도 다시 여행에 꼭 참석하고 싶다며 간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였어요. 한 장애인이 휠체어 뒤에 '나는 살고 싶다'고 쓴 채 지하철 계단 앞에 멈춰 있는 것을 보았지요. 마음이 울컥해지고, 괜히 앞이 아득했어요. 아마도 저는 제가 운남에 사는 한, 해마다 이 여행단을 꾸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는 그런 말로 장애인 여행에 대해 스스로 다짐을 두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애인 여행자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그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2005년 여행단을 처음 꾸릴 때였어요. 자폐아인 여학생 수정이가 같은 장애인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여행에 참여했지요."

 

함께 온 선생님들은 그냥 일반사람 대하듯 자폐아를 대해달라고 부탁했단다. 너무 보살펴줄 경우 오히려 교육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자상하게 마음을 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대하지는 않은 여행이 며칠 흘러갔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말도 잘 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던 그 아이가 여행의 어느 순간 그에게 '경모삼촌'하고 부르더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여행의 참 맛을 그는 그 순간 느꼈다고 했다.

 

"공항에서 여행단을 보내고 돌아서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과, 그 여행에서 내가 얻는 행복, 헤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저를 울게 만든 것이지요.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제가 오히려 큰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 장애인과 함께하는 여행인 것 같아요."

 

모임의 끝 무렵, 장애인 한 사람에 도우미 네 명은 돼야 여행이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그에게 나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장애인 신청자가 도우미보다 많으면 어떡해요?"

 

그러자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불쑥 대답했다.

 

"그럼 뭐 중국 현지인을 도우미로 고용하면 되지요. 휠체어에 장대를 끼워서 메고라도 얼마든지 다니게 할 자신 있어요."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느긋하고 당당해 보였다. 나는 문득 그가 바로 히말라야와 같은 넉넉함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나는 운남을 생각하면 그 사람, 장애인과 이웃이 되어 살아가며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배경모씨를 떠올릴 것이다. 그의 생각처럼 그의 인터넷 아이디는 주는 기쁨이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카페(http://cafe.naver.com/chinahappy.cafe) 이름도 주는 기쁨 나누는 행복이다. 이름과 사람이 잘 어울리는 모습을 나는 그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부디 이번 여름의 장애인과 함께하는 운남 여행도 행복과 사랑을 나누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2008년 장애인을 위한 여행은 8월 9일∼8월21일(13일)에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쿤밍-보산-따리-텅충-징홍을 여행하는 일정이다. 여행 참가 희망자나 후원을 해 주실 분은 그가 운영하는 카페(http://cafe.naver.com/chinahappy.cafe)를 통하면 된다. 격려의 글과 관심이 그가 어려운 장애인 여행단을 꾸려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태그:#장애인 여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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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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