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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 한 마리가 잣 먹는데 정신팔려 있습니다.
▲ 청설모.. 잣 따먹다... 청설모 한 마리가 잣 먹는데 정신팔려 있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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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사각 부스럭부스럭~~~'

어디선가 가녀리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열심히 잣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다람쥐와 함께 흔히 볼 수 있는 녀석. 다람쥐는 귀여운 구석이 있지만, 이 녀석은 색깔도 쥐색인데다 농작물에 피해도 끼치고, 다람쥐들에게 까지도 해를 끼치는 녀석인지라 그리 애착이 가지않는 녀석 중 하나입니다.

떨어뜨린 것인지 버린것인지... 갑자기 나무 위에서 잣방울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집니다.
▲ 떨어뜨린 잣방울과 나를 번갈아보며 고민중인 청설모 떨어뜨린 것인지 버린것인지... 갑자기 나무 위에서 잣방울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집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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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녀석이 먹던 잣방울이 나무아래로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제 옆에까지 내려왔습니다. 다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발로 잡고 먹다가 떨어뜨린 것 같기도 하고. 잣 열매가 남아 있는 걸로 봐서 먹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모양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녀석은 그렇게 소중히도 여겼던 먹거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나 봅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잣방울과 저를 번갈아가며 계속 쳐다봅니다.

잣방울을 떨어뜨린 청설모의 입주변에 먹던 흔적이 역력합니다.
▲ 먹성좋은 청설모의 모습 잣방울을 떨어뜨린 청설모의 입주변에 먹던 흔적이 역력합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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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참 식성도 좋습니다. 입 주위에 먹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녀석의 입주변을 휴지로 닦아주고만 싶습니다. 나름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걸 따먹을까? 저 녀석 가고나면 땅에 내려와 다시 주워 먹을까?"

그 뒤로도 녀석과 한참을 실랑이를 했습니다. 녀석은 계속 잣방울에 눈독을 들이고, 나는 녀석의 모습에 눈독을 들였으니…. 서로 한참을  대치하고 맙니다.

떨어뜨린 잣방울이 아쉬운 듯 떠나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는 청설모
▲ 청설모와 대치 중... 떨어뜨린 잣방울이 아쉬운 듯 떠나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는 청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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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 녀석의 얼굴에 귀여운 구석이 조금 보입니다. 색깔만 아니면 영낙없는 다람쥐입니다. 지난번 천안에 갔 을때도 호두농사를 망쳐놓은 천덕꾸러기였고, 얼마 전 가평에 갔을 때도 녀석은 천덕꾸러기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다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과 청설모는 극한의 대치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청설모 한 마리 잡아오면 5천원을 줬었다고 하니. 농작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만 두고 못볼 녀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잣방울을 주우려는 청설모와 찍으려는 나... 긴박한 대치중 마치 무엇을 발견한 듯 쳐다보는 청설모
▲ 무엇을 발견한 듯한 청설모. 잣방울을 주우려는 청설모와 찍으려는 나... 긴박한 대치중 마치 무엇을 발견한 듯 쳐다보는 청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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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청설모 그리고, 나무 아래서 녀석에게 촛점을 맞추고 꿈쩍도 안하는 나. 한참을 녀석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내 다른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듯합니다.

다른 먹이감을 찾았는지 청설모가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 어디론가 뛰어가는 청설모 다른 먹이감을 찾았는지 청설모가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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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음질을 시작합니다. 어찌나 빠른지, 그래도 다행히 용케 잡아냈습니다. 나무 위를 사뿐히 뛰어 저편의 나무로 건너가 버립니다. 그래, 넌 여기 있으니 행복한 거다. 다른 곳에서 호두 따먹고, 잣 따먹는 네 친구들은 이유없는 총성에 쓰러지고, 터전을 잃어간단다.

돌이켜보면 녀석들이 호두를 따먹고, 잣을 따먹으면서 농가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순전히 사람 탓 입니다. 녀석들의 식량을 사람들이 앗아가기 때문이죠. 산행하는 사람들, 여행하는 사람들은 밤, 잣, 도토리를 보면 그만 두지 않습니다.

녀석들이 먹고 살아야 할 식량을 아무렇지 않게 빼았습니다. 사람들이 밤, 잣, 도토리를 다 주워가는 바람에 녀석들은 한겨울 먹이를 걱정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다람쥐 식량이니 주워가지 말라는 현수막까지 붙여놨겠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자연만 즐기다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죽고 나서 다람쥐나 청설모로 태어나봐야 후회하시겠습니까?

다람쥐가 잣을 묻어둔 곳을 까먹자 그곳에서 싹이 터 자란 잣나무들입니다.
▲ 청태산 자연휴양림의 다람쥐가 심은 나무 다람쥐가 잣을 묻어둔 곳을 까먹자 그곳에서 싹이 터 자란 잣나무들입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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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강원도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갔을 때 보았던 유쾌한 장면입니다. 다람쥐의 습성상 먹거리를 묻어두는 습성이 있는데 아마도 묻어둔 다람쥐가 까먹은 모양입니다. 그 자리에 싹이 돋아 잣나무 15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까먹어서 자랐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람쥐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준 것이지요. 자연은 자연 그대로 돌아갈 때 비로소 그 순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앞으로 자연만 즐기실 것을 약속해주십시오. 절대 밤이나 잣이나 도토리를 줍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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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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