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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시 탄손나트(Tan Son Nhat) 공항에 첫 발을 내디딘 지 보름 가까이 되면서 서서히 이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언어가 익숙해지고 있다. 

익숙해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론 우리와는 사뭇 다른 환경과 생활상 몇 가지가 처음 찾은 이방인에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절대적 대중교통 수단인 오토바이의 경우 충격을 넘어 압박을 안겼다.  

물밀듯 밀려오는 오토바이 행렬. 호치민시 변두리 도로에서.
 물밀듯 밀려오는 오토바이 행렬. 호치민시 변두리 도로에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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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덮은 오토바이

현지어로 '세마이'로 불리는 오토바이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다. 현재 등록대수만 2000만 대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구가 6월 현재 8600만 명을 조금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4명 당 1대 꼴로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호치민시 큰 도로에 나서면 오가는 오토바이 때문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자동차를 포위하면서 도로를 꽉 메운 수적인 우세와 아찔한 곡예운전이 낯선 이방인의 혼을 뺀다. 도로표지판, 교통신호는 기본적으로 '무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암묵적 질서에 의해 도로 흐름이 형성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오토바이가 아니면 차나 자전거를 이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보행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때문에 횡단보도를 이용하거나 도로를 가로지를 때는 다가오는 오토바이나 차량 운전자와 열심히 눈을 맞춰가면서 멈춰주거나 피해가기를 바라야 한다. 대부분은 멈추지 않고 보행자를 피해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떼선 안 된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좁은 도로 위에서 차와 뒤엉켜 흐르지만 사고가 난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또 도로 위에서 언성을 높여 싸우거나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일도 겪어 보지 못했다. 도로에서의 침묵은 일종의 암묵적 약속 같아 보였다. 그러나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도로변 공기는 호흡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주로 세로로 지어지는 독특한 건축 형태.
 주로 세로로 지어지는 독특한 건축 형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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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길쭉한 건물

우리나라에서는 가로가 넓게 대로변 상가를 짓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대로변이나 이면도로 모두 이색적이게도 세로로 길쭉한 건물 형태다. 이런 형태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통일 이후 분배과정에서 다수가 공평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묘책이었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는다.

월맹에 의해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남부지역은 소위 '공신전(功臣田)'으로 군인들이 나눠가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 탄손나트 공항 입구에 있는 탄빈(Tan Binh)군은 공군에게 하사된 땅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건물은 전면 기본이 4m며 배수로 확장할 수 있고 뒤로는 크게 제한이 없지만 대략 20~25m 정도로 약 100㎡ 면적으로 개발된다. 주택가의 경우 옆집과 아예 붙여서 집을 짓는데 이는 건물에 내려쬐는 한낮의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불가피하게 골목이 필요한 경우 오토바이 한대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게 만든다. 1년 내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아열대 기후인 호치민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집은 입구는 덥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햇빛과 멀어져 시원한 게 특징이다. 공평한 공신전 배급과 더위를 피하는 삶의 지혜가 잘 버무려진 가옥 형태가 아닐까 생각된다.  

전기와 전화선을 잔뜩 지고 선 전봇대.
 전기와 전화선을 잔뜩 지고 선 전봇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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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상징 거미줄 전봇대

경제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이후 급속한 경제개발로 각종 인프라가 확대되면서 가장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 전봇대가 아닐까 싶다. 기본적으로 전기선은 물론 전화선까지 짊어지게 하다 보니 무거운 어깨가 애처롭게 보일 정도다.

도심 가로변 전봇대에 늘어진 각종 전선은 폭이 족히 1m는 되고 중간 중간 끊어진 선들이 보행자를 위협하고 있다. 전력사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한번 정전이 될 경우 8시간 가량 지속된 경우도 있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8시간 정전은 오갈 때가 만만찮은 이방인에게 큰 고통이었다.

끝없는 집평선, 산이 없는 도시

호치민시 외곽에서 시내 쪽인 1군 지역을 바라보면 끝이 보인다. 6층 건물의 옥상에서 사방을 둘러보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건물뿐이다. 도시의 끝, 하늘과 맞닿은 곳은 그래서 ‘집평선’으로 불러야 옳겠다.

호치민시는 넓은 녹지를 찾기도 힘들고 완만한 구릉도 하나 없다. 한마디로 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도시다. 현지인 말로는 반경 100km 이내에서 산을 찾기 힘들다고 한다. 옆집과 붙여서 집을 짓는 독특함 때문에 도시 전체가 거래한 하나의 구조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끝이 보이는 이유로 답답함은 없다. 또 높은 건물이 없어 거침없는 바람을 맞이할 수 있고 넓은 하늘을 볼 수 있어 좋다. 밤이면 남십자성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호치민, 이방인이 2주간 살면서 맞닥뜨린 몇 가지 소회를 적었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지평선이 아닌 '집평선'의 도시 호치민.
 지평선이 아닌 '집평선'의 도시 호치민.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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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트남, #호치민, #오토바이, #세마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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