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해요! 그만두라는 말, 그만 좀 하라고! 누군 걷고 싶어서 걷는 줄 알아요? 우린 어
쩔 수 없이 걷고 있는 것뿐이야! 지금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게 뭔지 잘 알잖아요. 알면서 왜 자꾸 그래요? 그 포기하란 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협적으로 들리는 줄 알아요? 언니가 그 말 할 때마다 숨이 콱콱 막힌다고!(46쪽)
저 역시 이런 막막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벽 일찍 잠을 깨고, 어쩔 수 없이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어쩔 수 없이 일요일에도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갔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느냐고 묻는다면,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느냐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먼훗날이 무엇인지 정작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미래가 우울해 질 거라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막막하고 메마른 날들 속에 신기루만을 쫓아서 헤맨 날들이 있었습니다.
이 책, <하이킹 걸즈>는 두 여학생이 인솔자와 함께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민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은성이는 다른 아이를 때려서 구치소에 가고, 보라는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해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물건을 훔칩니다. 그리고 이 두 소녀는 소년원에 가는 대신, 실크로드 도보 여행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소년원에 가는 대신 이렇게 도보 여행을 하게 되면 재범율이 아주 낮아진다고 하여 두 소녀에게 그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실크로드가 정말 실크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길이라고 생각하는 은성이와 모범생처럼 인솔자의 말을 잘 듣지만 그 속에 말 못할 상처와 고민을 안고 있는 보라가 40여 일간 도보여행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합니다.
참 맹랑하고 쾌활한 은성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행기라 유쾌하기도 하고, 미혼모 엄마에게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 자란 은성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삶 이야기라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인생에 오아시스가 나타나길 바랍니다. 어떤 이는 그 오아시스가 아주 우연히 마치 복권 당첨처럼 나타나 주길 바라고, 어떤 이는 그 오아시스를 향해 계속 땀을 훔치면서도 끊임없이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어떤 이는 오아시스를 찾아가다 가끔 신기루를 발견하고는 엉뚱한 발걸음을 하기도 합니다. 은성이가 신기루를 쫓아 헛된 걸음을 하면서도 신기루를 신기루라 믿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잘못된 욕망에 사로잡혀 그걸 향해 나아가면서도 그게 잘못된 욕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참 후 그게 신기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다시 오아시스를 찾아가기에는 너무 힘이 빠져 한참을 쉬어야만 하기도 합니다.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그 길에 가끔은 이탈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아시스를 찾아내지 못할까 두려울 수도 있고, 오아시스를 찾는 여정이 너무나 길어 가끔은 다른 길로 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내가 꿈꾸는 일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혹시나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하여, 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느라 정작 내가 먹고 입고 자는 일들이 너무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여, 우리는 가끔 다른 길로 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알고 있습니다. 이미 그 오아시스가 우리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잠깐 이탈을 하더라도 그 오아시스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곳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입니다. 현재 처해 있는 현실에서 아파하고 고민하며, 또한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쓴 책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책은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또는 어디에 오아시스가 있는지 모르는, 또는 어쩌면 오아시스라는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들 모두를 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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