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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YMCA전국연맹 아하성문화센터 홍상표 간사는 이학영 사무총장이 경찰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지난 29일 새벽 '눕자 시민행동'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참혹했던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적은 글을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에게 보냈습니다. YMCA측의 양해를 구해 그 전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평화 바위의 일부분이 되겠습니다

 

시민의 작은 촛불로 참여해오던 지난날들과 달리 YMCA 깃발 아래 모이니 다들 좋은 분위기였습니다만 대치선 쪽 경찰의 대응이 언론의 예고와 같이 이른 시간부터 강경해지는 터라 다소 긴장도 되고 과격한 장면을 보며 탄식도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눕자 시민행동'을 '과연 하게 될지 모르겠다'란 생각 속에 있던 중, 전경들의 진압작전이 시작된다고 한 시민이 외쳤고, 서울시 의회 옆 골목길에서 YMCA의 '눕자' 행동은 시작되었습니다.

 

맨 앞줄 좌측에서 YMCA 깃발을 들고 있던 저는 전경버스 구석에서 똑같은 복장과 보호구·방패·장봉을 든 전경들이 알 수 없는 훈련 구호를 크게 외치며 밀려나오자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스크럼을 짜기 위해 꼈던 팔에는 서로의 힘이 더욱 느껴졌으며 비장함마저 팔에서 팔로 전해져왔습니다. 나머지 한 방향에서도 똑같이 전경들이 밀려나오고 우리는 Y자 모양의 그 길에서 노래 두 곡 부를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대치했습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니 전경의 눈빛이...

 

전경 간부의 명령과 함께 전경들이 앞의 바리케이드와 화분을 거칠게 치울 때 '눕자'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구석에 깃발을 천천히 내려놓고 누웠습니다. 아무 것도 들지 않고 누워 있는 우리들을 중무장한 전경들이 욕설과 함께 무참히 내리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욕설과 함께 방패와 곤봉을 내리치는 전경의 눈빛이 보호구 사이로 보이고 옆을 보면 저와 같이 속수무책 폭행당하는 시민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시야에 보이는 장면과 함께 귀로 들리는 것들은 더더욱 공포스러웠습니다. 머리를 마구 까이면서 즐겨 쓰던 제 모자도 잃어버렸습니다.

 

제 몸을 길 삼아 전경들을 위로 보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저 죽음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수 미터를 전경들의 발끝으로 축구공 차이듯이 뒤로 굴러갔습니다. 그러던 중 간신히 일어나 지나간 전경들의 대열을 파헤치고 태평로로 나가보니 수많은 시민들이 남대문 방면으로 쫒기고 있었습니다.

 

YMCA 식구들을 찾고 있던 도중 저는 시민의료진에 붙들려 차에 태워졌습니다. 이미 승용차 안에는 부상당한 시민들이 꽉 들어차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국립의료원에는 수많은 부상자들이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깨져 붕대를 감고 있는 젊은 여자분, 턱이 나가 말을 못하는 젊은 남자분과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여자분, 원무과에 신경질 내는 아저씨,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전경까지.

 

병원 화장실에 가서야 제 몰골을 거울로 볼 수 있었습니다. 너덜너덜한 우비와 그 안의 더럽혀진 옷은 그렇다 치고 터진 입술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의 스크래치들을 보니 욕이 절로 나왔습니다. 우선 YMCA 사람들을 다시 찾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 저는 여기 저기 전화를 하여 저의 상황을 알리고 포화상태여서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국립의료원을 떠나 왕십리의 한 작은 병원으로 이동하여 진단을 받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인터넷에서 소식을 찾았습니다

 

곧이어 대학YMCA 황정화 간사님이 저를 살펴보기 위해 병원으로 오셨고 진단을 받은 후 정황을 알기 위해 종로에 있는 이윤희 간사님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종로로 걸어가는 그 길엔 빌딩 정문에서 나란히 비를 피하고 있는 전경들과 시민들이 보였고 종로에서 집회를 이어가는 광경도 보았습니다.

 

이 날 최악의 순간은 지나갔음을 느끼며 도착한 종각역 지하도엔 YMCA 간사님들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간사님들로부터 위로도 받고 하니 긴장은 다소 놓을 수 있었습니다만 부상당하신 총장님과 간사님들 소식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 기사를 통해 YMCA 시민행동단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종로에선 이윤희 간사님의 넉살좋은 위로도 듣고 기운을 많이 차렸는데 부모님 몰래 들어온 방 안에서 인터넷기사를 통해 총장님·국장님·간사님들의 부상당한 모습을 보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폭력과 평화를 함께 다짐하며 누웠던 그 때 그 순간과 매치되어 억울하고 분한 와중에서도 눈물을 계속 흘리며 인터넷에서 소식을 찾아 나갔습니다.

 

다행히 위험을 무릅쓰고 그 상황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겨준 시민 분들이 계시기에 많은 이들이 폭력경찰의 만행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그 상황이 담긴 동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합니다. 보다가 저도 모르게 닫아버립니다. 아마 6.28의 기억은 YMCA와 함께 제 머릿속에 두고두고 자리 잡을 듯합니다.

 

그 날로부터 5일째가 되어갑니다. 그동안 병원도 두 차례나 더 가고 연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도 참석하고 경찰청 정문에서 항의도 하고 엠네스티회원으로서 신고도 하고 일과 함께 정신없지만 7월 5일 다시 그 자리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변치않는 바위야말로 비폭력의 정신

 

또 다시 갈 수 있냐고들 하지만 괜찮습니다. 두려움은 빠르게 사라지고 자신감은 충만해갑니다. 평화적인 저항을 통한 희생은 잠자고 있던 지성과 양심을 깨운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말 직 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시작으로 종교계도 일어났으며 폭압으로 빼앗긴 시민들의 정당한 터전을 비폭력을 통해 금방 되찾고 있음에 기쁨을 느낍니다.

 

비에 젖든 눈에 덮이던 변치 않는 바위야 말로 비폭력의 정신 같습니다. 저는 YMCA와 함께 바위의 일부분이 되겠습니다. 저보다 더 부상이 심하심에도 인자하신 미소로 위로해주신 이학영 총장님과 여러 간사님들 께 감사드리며 언제나 우리에게 빛이 되어주심을 의심치 않는 하나님 사랑합니다.

 

더 더욱 강력한 평화정신으로 등장할 '눕자 시민행동단'으로 기쁘게 만나길 기대합니다. 


태그:#촛불, #홍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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