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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6월 30일부터 시작된 4일간의 학기말 고사가 끝났다. (둘째의) 중간고사에 이어 이번 학기말 고사에도 학부모 도우미(보람교사) 신청을 하여 배정받은 교실에 들어가 시험 감독을 했다. 처음 지원하여 교실 분위기에 어색하기만 하던 지난 중간고사와 달리 이번에는 여유까지 조금 생겨 OMR카드를 재배부하는 것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며칠 전 '학교에 수시로 드나들어 교사를 폭행, 교권 추락을 막기 위해 학부모를 비롯한 일반인들의 학교 출입 제한 방침을 마련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편 이해도 되고 한편 아쉽기도 한 그런 소식이었다.

 

이틀 전쯤 교사 한분과 전화통화를 하던 중 학기말 고사 감독을 다녀왔다는 이야길 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학부모들에게 공연한 부담 주는 그런 제도는 없애자고 해요"라고.

 

난 물었다. “학부모들의 시험감독 보조가 별 도움 안 되나 보죠? 도움도 안 되는데 공연히 신경만 쓰이나 보죠? 그래요? 하기야, 한 줄씩 학년과 반을 섞어놓아서 컨닝할래야 할 수도 없겠더만요”라고. “그래도 컨닝 하는 애들은 다 해요. 학부모들의 참여가 많은 도움이 되죠. 관심도 고맙고…." 우린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난 왜 다시, 중간고사에 이어 학기말 고사에도 시험감독 보조교사를 원했나? 앞으로도 계속 지원할 것인가?

 

 

둘째딸이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입학을 며칠 앞두었을 때만해도 조잘거리며 잘 따라다녔다. 이런 우리 모녀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언제까지고 마음속 이야기와 고민을 털어놓아주기를, 그리하여 친구처럼 다정한 모녀로 지낼 수 있으리라 철썩 같이 믿으며 내심 뿌듯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는 입학을 하자마자 싹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끝났을 텐데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믿어야지, 기다려 보아야지’ 참고 참다가 해질녘에야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하면 친구 집이거나 인근의 거리에 있기 일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빠져나가기 바빴다.

 

'○○이 필요해 친구들과 사러 갔다' '함께 모여 숙제를 해야 하는' '친구 생일이라서' 등, 무슨 핑계도 그리 많고 구실도 많은지. 아이가 주워대는 온갖 핑계와 구실에 ‘그래도 이번에는 모질게 혼내야지’라며 독하게 마음먹지만, ‘다른 아이들로부터 내 아이만 따돌림 받으면 어쩌나?’의 생각에 다시 놓아주고 있었다.

 

일주일 남은 중간고사를 보긴 볼 건지, 쏘다니는 것도 모자라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컴퓨터로 어울렸던 친구들과 다시 수다, 메신저의 쪽지가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매일 쓰던 일기도 오래전에 잊은 듯, 초등학교 졸업 때만 해도 그 학교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도 이미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니 매일 잔소리와 큰소리만 오갔다.

 

 

'오늘은 아이의 이야길 좀 더 진지하게 들어보아야지, 오늘은 아이에게 절대 큰소리 내지 말아야지. 가급이면 아이 편에 서서 생각해 보아야지….'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 혹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그 시간에 다짐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둑어둑해져서야 나타난 아이를 보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뿐이었다. 게다가 예전에는 전혀 없었던 행동-반항적인 눈빛과 이죽거리는 입-은 가까스로 눌러 참고 있던 인내를 폭발하게 하였다.

 

회초리가 몇 개나 꺾여 나갔다. 그래도 아이는 굽히지 않았다. 타일러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봄내 전쟁은 계속되었다. 중학교 입학 두세 달 사이에 아이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고민, 이전 전쟁 중에 참여하게 된 중간고사 시험감독 도우미였다.

 

학기말 고사 시간표가 발표될 무렵인 6월 초에 느닷없이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머리가 많이 아파 조퇴를 하고 싶어 하기에 어머니 의견을 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퇴한 아이는 그러나 어디가 언제 아팠냐는 듯 쌩쌩하게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같은 반 아이 ○○와 신경전을 아침부터 벌였던 것이다. 아니, 단 하루의 신경전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입학과 동시에 봄내 벌인 전쟁이었다. 그리고 난 선생님께, “우리 엄마는 늘 늦게 집에 와서” 아이의 이런 거짓말에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도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참으로 무심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과 긴밀한 전화 연락 등을 통해 두 아이는 화해를 했다. 하지만 며칠 후 두 아이는 다시 붙었다. “전학 보내 달라!”며 아이는 징징댔다. 선생님 앞에서는 화해를 한 척, 뒤에서는 내 아이를 계속 괴롭히는 그 아이가 괘씸했다. 그 아이를 혼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이건 모르시죠? 수연이가 3주 넘게 10여명의 아이들을 주동하여 ○○이를 왕따 시켰었던 것을요. 그런데 그때 함께 휩쓸렸던 애들이 최근에 ○○이 쪽으로 달라붙어 수연이를 왕따 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때 ○○이는 개의치 않고 다른 애들과 잘 어울렸어요. 그런데 수연이는 마음이 여려 그러지 못하는 거구요."

 

이어지는 말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이 노랬다. 현기증이 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부끄럽고 얼굴 모르는 그 아이에게 정말 미안해졌다. 내 아이가 주동하여 다른 아이를 왕따 시켰다니. 그렇게 여리고 착한 아이가 어떻게? 그리하여 난 선생님께 “그 아이에게 우리 아이가 크게 잘못한 것 같다. 사과할 방법을 알려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제는 남자 애들 사이에 돈 문제가 심하게 얽혀 있어서 어머니 일곱 분이 오셨는데, 못된 누구와 어울리며 누가 우리 애를 망쳤다, 집에서 얼마나 착한 아인데 그럴 리가 없다, 선생님이 잘못 아신 거다 등 아무도 자기애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더라고요. 어머니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어머님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 문제는 객관적으로 봐야만 해결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감정이 앞선 나머지 아이의 문제가 커지거나 아이가 마음의 문을 영영 닫아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거든요"

 

“지난 번 중간고사 때 다른 아이들 속에서 우리 애를 보니 집에서 보던 것과 많이 다르더라고요. 집에서는 귀하고 잘난 내 아이가 부족한 것도 구체적으로 보이고, 그걸 어떻게 해주어야겠다는 대안도 생각하게 되고, 만날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잔소리하는 것이 현명한지, 가급이면 옆에서 관심 갖고 들여다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때 감정적이고 내 주관대로만 바라보던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사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늘 아이 눈높이에 맞추려고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다른 엄마들은 어떤지 몰라도 제게는 무척 소중한 기회였답니다.”

 

그랬다. 아이와의 전쟁 중 아이의 자존심 때문에-제 엄마를 학교에 참여시켜야 직성이 풀리는-얼떨결에 지원하였던 중간고사 감독 보조는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봄의 일 때문에 수연이와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너무 당당한 의견이 당돌하다 싶었지만, 한편으론 '오죽 그 상처가 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이를 왕따 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를 따르는 아이들에게 저 싫은 것을 떠맡기는 등, 잘못이 몇 가지나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동안 봄내 집밖을 떠돌았던 아이가 이해되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 인기가 유난히 많았다. 그 무리들이 함께 진학했다. 그런데 다른 학교 출신인 ○○이란 아이가 패거리에 끼이고 싶었던 것인데 다른 아이들이 이 아이를 싫어한 것, 그리하여 우리애가 왕따를 주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가 잡은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 봄내 친구들과 휩쓸려 다녔던 것이다.

 

 

“(흑흑~)내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아는데 돌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잘 안돼. (흑흑~)… 친구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친구들을 많이 믿었는데, 친구 사이에 믿음이 깨져버려서 너무 슬퍼.(흑흑~)…"

 

아이는 내게 안겨 펑펑, 끝도 없이 울었다. 그 후 눈빛도 순해지고 웃음도 많이 밝아졌다. 이죽거림도 더 이상 없었다. 아이가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아는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하루아침에 너무 많이 변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순식간에 너무 많이 변했다. 어떤 날은 새벽 4시까지 잠들지 않고 시험공부를 하기도 해 안쓰럽고 고마웠다.

 

“엄마, 그런데 참 이상하지? 한 번도 풀지 않은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것이. 그런데 ○○이가 그 애들을 속여서 친구들이 다시 나랑 놀고 싶어 해. 하지만 이젠 반 친구로만 지낼 거야. ○○이 눈치만 보고 무서워서 아무도 나와 놀지 않을 때 어울려 준, 내가 무거운 가방을 들라고 했는데도 들어주고 내가 사과했을 때 받아준, 정은이만 진정한 친구 같거든!”

 

100여 일간의 전쟁은 그야말로 숨이 막혔다. 내 아이의 삶이 걸린 문제라 세상 그 어떤 전쟁보다 내게는 힘든 전쟁이었다. 중간고사 시험감독을 자처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아이문제를 푸는 데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아이가 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땅만 쳐다보며 걷는 아이 얼굴을 보았다. 눈물이 살짝 묻어나는 아이 눈, 마음 아프다.


태그:#학기말고사, #시험감독 도우미 교사, #중간고사, #교육,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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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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