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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났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결과야 어떻든 홀가분한 걸음과 표정으로 학교를 나선다. 아마 학교에서 지정한 영화관보다는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편을 택한 녀석들이 많을 듯하다. 쉼 없는 숨바꼭질을 마친 선생님들의 표정도 밝다.

 

학교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시험감독'이다. 사격 훈련장 조교가 된 느낌이다. 책상 줄을 정리하고, 책상 위에 널부러진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한다. 자세를 바르게 하도록 한 다음, 근엄하고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모습이 흡사 사격 훈련장의 훈련병 다루듯 해야 한다. 시험이 시작되면 작은 소리도 조심스럽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핀다.

 

정말 못할 노릇이다. 비록 40여 분이지만 고개도 돌리지 못하는 뻣뻣한 자세로 아리송한 문제들과 씨름하는 녀석들을 보면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래도 어쩌랴. 아이들은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

 

시험 감독은 2명이다. 중학교에선 현실적으로 2인 감독이 불가능하다. 전체 교사가 총동원 되어 모든 시간에 투입되어도 절대수가 부족하다. 38학급에 교사가 모두 64명뿐이다. 일부 평가 담당 선생님들은 시험 관리에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수가 부족하다. 그런데도 고사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교육청의 지침은 2인 감독 원칙을 준수하라고 성화다. 부족한 인원은 학부모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다.

 

'교사 도우미'라는 명목으로 2인 감독을 위해 학부모의 지원을 받았다. 가슴에 명찰을 달고 익숙지 못한 걸음으로 교실을 드나드는 어머니들의 표정이 무어라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말도 해서는 안 되고, 표정도 없이 근엄하게 교실 뒤편을 지켜야 한다. 교실에 뒤편에 계시는 학부모 부감독의 처지는 아이들보다 더 불편했으면 했지 나을 게 없다.

 

아이들은 최소한 그 시간 동안 할 일이라도 있다. 집중하다 보면 쉬 시간이 간다. 선생님이야 시험지 나눠주고 아이들과 살벌한 신경전을 벌이다 보면 한가할 여유가 없다. 그런데 그냥 앉아서 눈알만 굴려야 하는 학부모 부감독의 입장에선 난감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고 명색이 시험감독인데 책을 볼 수도 없고, 교탁 앞에 선생님이 버티고 있으니 편한 자세를 취할 수도 없다. 잠이라도 오기 시작하면?  발소리를 내며 돌아다닐 수도 없는 처지에 하염없이 나오는 하품을 무슨 수로 참는단 말인가? 시험 보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말이라도 건넸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는 일이다. 남는 시험지를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몽롱한 상태에서 5분만 지나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우리가 아이들을 잘못 지도했을까?'

'어른들이 아이들을 너무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무감독 시험을 실시할 수는 없을까?'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한 줄 세우기 교육 풍토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이런 고민들은 3일 동안 실시되는 시험 중에 나타나는 소란 속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자세 바르게 하세요. 그런 자세는 부정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앗싸! 한 명 제쳤다!"

 

자세가 흐트러진 학생을 지적하자 장난스럽게 받아치는 다른 녀석의 말이 섬뜩하다. 시험이 진행되는 교실은 정글이다. 교탁 앞에선 도끼날을 한 눈초리로 선생님이 감시하고, 그 포근하던 엄마가 뒷통수를 지켜보는 교실. 내가 친구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야 앞에 설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리게 만드는 교실…. '더불어 다함께' 생활하는 정겨운 세상은 최소한 시험이 실시되는 교실에는 없다.

 

어쩌면 녀석들은 그런 꿈마저도 꾸지 못할지 모른다. 무서운 일이다.


태그:#시험감독, #시험, #교사도우미, #기말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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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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