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이른 아침부터 청소하시네요.”
“선생님도 청소하려고 쓰레기 봉지 들고 나왔나요?”
“저는 그저 담배꽁초나 주워 보려고요. 어르신은 이 동네에 사세요?”
“아니요, 저쪽 노인정에서 나왔어요.”
“이 길을 청소하신 지 몇 년이나 되셨어요?”
“한 4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어떠세요. 힘들진 않으세요?”
“솔직히 힘도 들지만, 이보다 더 보람된 일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러세요. 존경스럽네요.”
오늘(4일) 아침 6시 30분쯤 된 것 같았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동네 앞 쓰레기를 줍고자 골목길을 나섰다. 마천동에 '주님의교회'를 새로 시작하면서 내가 사는 동네에 조금이나 이로움을 주고자 골목길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물론 그것도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만 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부터 골목길을 쓸고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뵈었다. 74세의 차상진 할아버지가 바로 그분이었다. 할아버지는 허리가 약간 구부정해 있었고, 말수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더욱이 몸이 불편하셨던지, 낡은 유모차 위에 올려놓은 검은 봉지 속에 온갖 쓰레기들을 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골목길을 청소하고 계셨을까? 궁금한 것은 좀체 못 참는 성미라 여쭈어 볼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나이가 많으신 데도 앞으로도 계속 청소하실 생각이세요?”
“그렇죠. 그래야만 왠지 눈 뜬 기분이거든요.”
“하루 세끼를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것과 같은가요?”
“그렇죠. 그래야만 뭔가 손에 잡히거든요.”
차상진 할아버지는 정말로 아침에 눈만 뜨면 자신이 맡고 있는 골목길에 마음과 눈이 쏠린다고 한다. 그래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골목길 청소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그래야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고, 그래야만 어정쩡하지 않는 개운한 맛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믿음의 차원을 넘어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른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그것은 ‘나’라는 좁은 우물에서 탈피해야 함을 뜻한다. 진정 이 땅이 하나님께서 배려하신 광활한 우주임을 믿는다면 자기 자신을 벗어나 사회와 인류를 품고 살아야 함이 마땅한 바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 본다면 차상진 할아버지가 골목길을 쓰신 것은 단순한 골목길을 쓰신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우주의 한 부분을 쓰신 것이요 곧 우주를 청소하신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차상진 할아버지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땅을 밟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