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나오코는 뭔가가 찜찜하다. 여행을 떠났던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살이라고 한다. 평소에 우울증 증세가 있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나오코도 그렇게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빠가 보낸 편지를 보면 아무리 봐도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오빠의 말투는 미래의 뭔가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오코는 1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그런 뒤에 친한 친구 마코토에게 오빠가 죽은 백마산장 '머더구스 펜션'에 가자고 부탁한다. 그곳은 관광객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인데 흥미롭게도 매년 같은 시기에 비슷한 멤버들이 모인다. 다시 말하면, 오빠가 자살했다고 판명됐던 1년 전에 머물던 사람들이 이번에도 있다는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일본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초기작이라 그런지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추리소설의 '낭만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첫 번째는 '암호'다. 자살에 의문을 가진 나오코와 마코토는 산장의 방 곳곳에 있는 암호를 알게 된다. 그것은 영국 동요 '머더구스'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곳이 암호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나오코와 마코토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오빠가 그것을 두고 뭔가를 풀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떨까? 순간 문자는 암호가 되고 나오코와 마코토는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암시하는 듯한 그것을 풀기위해 몰두한다. 덕분에 요즘 소개된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낭만적인 암호 트릭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오랜만에 만난 '밀실 살인', 반갑다이 소설이 사용하는 또 다른 트릭은 '밀실 살인'이다. 요즘에야 잔혹할 대로 잔혹한 연쇄 살인이 주목받고 있어서 그런지 밀실 살인을 구경하기가 어려운데 반갑게도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오랜만에 밀실 살인 트릭을 파헤치려는 치열한 '수 싸움'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과 별도로 추리소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전은 어떤가? 나오코와 마코토는 암호를 해석하여 죽은 오빠가 찾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낸다. 그 과정만으로도 추리소설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데 여기서 새로운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반전의 반전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는데 그 솜씨가 최신작에 비해서도 녹록치 않을 만큼 치밀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값에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해외작가의 경우 국내에서 좀 알려졌다 싶으면 무더기로 소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현상은 일본 소설가들에서 두드러진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른 일본 소설가들 다른 것이 있다면 <백마산장 살인사건>에서 보여주듯 초기작이 대표작과 질적인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본 소설가들이 대표작에 비해 수준 떨어지는 소설로 인해 인기를 잃어갔는가.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보건데 히가시노 게이고만큼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암호 트릭, 밀실 살인, 허를 찌르는 반전 등이 돋보인다. 추리소설 읽는 맛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셈이다. 그런 만큼 무더위에 지칠 때 꺼내 읽는다면 쏠쏠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