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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7월 5일 저녁 8시 30분쯤. 시어머니(72)와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촛불집회에 간 것은 이번이 3번째였다. 2번은 내 제의로,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먼저 "우리도 마음 보태야 한다"고 하여 함께 가게 된 것이다.

"비가 올까 봐 걱정했는데 날이 개어서 다행이다. 먼지를 쓸어 내줘서 얼마나 다행이니? 올 때마다 보면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저렇게 어린 꼬마들까지 욕하고 물러나라고 야단이니 말이야.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잠이 편히 온다니? 죽어서 천벌을 받지. … 난리도 이 난리가 없다. 6·25전쟁보다 더한 것 같다. 재협상도 못하면서 왜 물러나지 못한다니?…그런데 몇 명이나 된다니?"

"어머니도 참, 아무렴 6·25보다 더 하겠어요?" 옛날 같으면 하늘같던 양반에 대한 어머니의 원성이 끝이 없다. 

어머니의 근심이 깊다(7월 5일)
 어머니의 근심이 깊다(7월 5일)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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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의 40만촛불
 7월 5일의 40만촛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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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 집회에 처음 참여한 것은 5월 3일. 어머니는 그날 이후,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텔레비전 뉴스 등을 통해 촛불 집회 소식을 볼 때마다 대통령에 대한 원성도 계속됐다. 이런 어머니와 함께 뉴스를 보던 남편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당신도 참 대단해. 어떻게 어머니를 저렇게 싹 바뀌게 만들었어?"라고.

남편은 어머니의 아들. '내 나름의 모종의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아신다면 어머니와 남편은 어떤 표정이 될까?' 상상하다 다시 웃었다. '그래, 절대로 말을 흘려선 안 돼. 다음의 거국적인 때를 위하여!'

유해한 식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시어머니, 어떻게 포섭할까?

몇 년 전, 어머니께 MSG성분이 들어간 조미료의 유해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미원'과 '다시다' 애용자인 어머니는 "여태 먹고 살아도 아무 일 없었는데 새삼스럽게,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음식이 맛이 있어야지. 미원을 넣지 않으면 써서 어떻게 먹니?"라며 변함없는 사용을 고집하셨다.

'L-글루타민산나트륨(monosodium glutamate, sodium glutamate, MSG)은 무력감, 알레르기, 두통, 암, 뇌손상, 발열…을 일으킨다.',
'L-글루타민산나트륨의 대표적인 조미료인 미원 등의 조미료를 우리 식탁에서 없애야….'

방송 등에서 이처럼 MSG의 유해성을 아무리 떠들어도 어머니는 실감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니 댁에 들러 음식을 하다가 싱크대 문을 열면, 며칠 전만해도 달랑달랑하던 조미료가 어느새 큼지막한 봉투의 새것들로 바뀌어 있곤 했다. 찌게나 국을 끓이며 간을 보는데 다가와 "미원은 넣었니? 다시마도 좀 넣지?"하며 참견을 하시기도 했다.

어느 때는 참견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맛을 확인하고 '한 스픈 듬뿍!', '맙소사 어머니!'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어머니는 뒤이어 "아무리 쓴 음식도 미원 하나면 맛있게 변하는 것이 참 대단해"라며 조미료의 힘을 그야말로 신통스러워했다. 내가 한마디만 더 보태면 맛있는 저녁은 둘째, 사태가 험악하게 변할 수도 있는 판국이다.

집안 살림 아무리 옹색해도 미원이 하루라도 떨어지면 안 되는 세대인 우리 어머니의 고집을 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이 판국에 설명을 하자면 '유식한 젊은것들' 운운, '어른을 가르치려 드는 못된 며느리가 될 것'도 분명하다. 그와 함께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수십 년의 자존심은 더욱 완강해질 것이니 말이다.

5월 3일 첫촛불집회 참여,SBS인터뷰중인 시어머니
 5월 3일 첫촛불집회 참여,SBS인터뷰중인 시어머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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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법회 후 50일 동안 촛불 광장에 나왔다는, 28일 경찰의 강경진압에 손까지 다쳤다는 60대 아저씨와 즉석 대담중인 어머니
 시국법회 후 50일 동안 촛불 광장에 나왔다는, 28일 경찰의 강경진압에 손까지 다쳤다는 60대 아저씨와 즉석 대담중인 어머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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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머니와 올봄 GMO 수입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어머니께 GMO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조미료 문제, 손자들 간식 때문에 고부 간 갈등이 팽팽한 집도 여럿 보았다. 그러니 조심조심.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어머니의 모성을 자극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의 기분을 최대한 살펴가면서.

"토마토는 쉽게 물러지잖아요. 그런데 너무 빨리 물러지면 파는 사람은 손해잖아요. 그래서 물에서 사는 물고기의 유전자를 잘라 토마토에 넣어 쉽게 물러지지 않는 토마토를 만들어 낸 것이 시초예요. 1970년대에 '지놈'(게놈)이란 것이 발견되어 유전자를 마음대로 자를 수 있게 되고 때문에 유전자 조작이 쉬워진 거죠.

그런데 토마토와 물고기가 결혼할 수 있나요? 없지요? 그런데도 둘을 강제로 결혼시켜서 돌연변이를 낳게 한 것이 GMO예요. 겉으로 보기에는 토마토지만 유전자를 보면 토마토도 물고기도 전혀 아니죠. 이 돌연변이를 먹게 되면 우리 몸에 돌연변이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죠? 그런데 토마토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콩도 옥수수나 감자도 그렇게 만들어 음식으로 만들고 있지요."

GMO? 지놈? 유전자조작? 어머니껜 여전히 어렵고 아리송한 낱말인가 보다. 아니, 우리가 먹는 음식에 들어가도 너무 광범위하게 들어가는 GMO인지라 그만큼 이해도 뿌리치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무시하기에는 께름칙한지 "얘, 이것도 좋지 않니? 이건 어떠니?" 하면서 집에서건 슈퍼에서건 종종 물어보시기도 했다.

MSG와 GMO는 현재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물질들이다. 둘 다 달콤한 맛으로 우리 몸속의 면역체계를 교란, 각종 질환과 병을 유발한다. 한쪽에서는 유해하다고 반대하지만 한쪽에서는 무해하다고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우리 밥상에 올라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난 이들 물질이 절대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2008년, 어머니는 더는 모든 음식에 MSG가 들어간 조미료를 넣지는 않는다. 제일 큰 포장의 조미료를 샀던 것과 달리 이젠 제일 작은 것. 어쩌다 간혹 넣게 되어도 예전의 절반, 그 절반의 절반 정도만 넣는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입맛이 조미료와 멀어지면 언젠가는 영영 외면하리라. 이런 와중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터졌다.

어머니께 광우병에 대해 설명했다. 역시나 "사먹지 않으면 된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사고 안 사고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 다양한 쓰임새와 유통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다. 한우로 속여 팔릴 수도 있는 위험, 아이들 급식에 쓰일 수도 있는 위험 등, 어머니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부분부터 설명해드렸더니 관심을 두셨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5월 3일의 촛불집회.

촛불집회 후 처음으로 1000여 명이 청와대 돌진을 시도한 그 촛불집회에서 어머니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전단지의 굵은 글씨들을 보면서 분노하셨다. 그날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과 조카도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그날 이후 어머니도 아이들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물론이다.

어느 때는 뉴스를 통해 빗속 촛불집회를 보며 나가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기도 했다. 뉴스로 본 것을 다시 들려주는가 하면 물대포를 맞은 사람이 실명될 뻔했던 일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뉴스는 물론 예전에는 좀체 보시지 않던 <100분 토론>과 <피디수첩>까지 보시기도 했다.

밥상동지인 어머니, 값이 싸다는 미끼에 매수당하지 않기를!

7월 4일의 시국법회 촛불
 7월 4일의 시국법회 촛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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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어머니
 7월 5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어머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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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찾게 된 세 번째 촛불 집회. 참으로 선량하고 평범한 며느리가 정보에 부족하고 살아온 날의 습관을 쉽게 고칠 수 없는 어머니에게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못함을 알리고자 이처럼 면밀하게 의도하였음을 어머니는 아실까? 시가행진을 마치고 보신각 앞에 30여 분 동안 쉬는 동안, 어머니와 아이스콘을 먹다가 혼자 씽긋 웃었다.

불행하게도 현재,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고 있다. MSG도, GMO도 유해성과 무해성이 팽팽하게 대립되는 가운데 우리 식탁에 비일비재 오르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이 가공적이고 돌연변이적인 물질들과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 위험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더욱 굳게 믿고 있는 것은 이 위험한 것들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주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먹을거리 문제는 온가족, 무엇보다 밥상을 책임지는 주부들의 일치된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며느리인 나 혼자만의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주장은 정보에 약할 수밖에 없는 시어머니와 오히려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을 터. 밥상 문제로 고부 간의 갈등도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우리집 밥상을 책임지는 동지인 어머니를 꼭 참여하게 하고 싶었다. 뉴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현장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과 목소리가 아닌, 어머니의 생각과 말을 통하여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함을 굳게 믿고 함께 불매할 수 있기를! 어쨌건 내 작전은 성공했다. 값이 싸다는 것에 어머니께서 절대 매수당하지 않기만을 바랄뿐!


태그:#촛불문화제, #시어머니, #안전한 밥상, #GMO,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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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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