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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땀 뻘뻘, 겨울에는 오돌오돌. 10년 하고도 5년이 된 옛 이야기다. 내가 귀농하기로 작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야마기시 공동체 수련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이 수련 이후에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귀농을 단행했다.

그 수련회에서 ‘더우면 더위로, 비가 오면 비로’라는 주제로 수련을 했었다. 주어진 자연현실을 피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면화 한다는 것이다. 한여름에 목을 꽉 조르는 넥타이를 매고 사는 사람은 자기 목숨을 단축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겨울에 반팔입고 사는 사람들, 내복도 안 입고 거실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건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 그런 삶은 자기 혼자만 안 건강한 게 아니라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삶이다. 더울 때는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좋다.

콩밭매는 할머니들 내가 콩밭매는 길 건너편에 네 분의 할머니들이 품앗이로 콩밭을 매고 있다.
콩밭매는 할머니들내가 콩밭매는 길 건너편에 네 분의 할머니들이 품앗이로 콩밭을 매고 있다. ⓒ 전희식

오늘 콩밭을 맸다. 새벽 일찍부터 들깨 심고 감자 캐다가 벌에 쏘였는지 날파리가 물었는지 왼쪽 눈이 팅팅 부었지만 땡볕 아래서 밭을 매야 잡초들이 맥을 못 추는지라 맹렬한 땡볕을 등에 지고 엎드려 콩밭을 맸다.

향긋한 흙냄새가 계곡으로 치고 올라오는 바람결에 폴폴 날리는 콩밭은 색다른 매력이었다. 뜨거워 따끔거리는 흙 밭을 맨발로 누비며 줄줄 흐르는 땀 줄기를 흙 묻은 손으로 슥 문지르면 저절로 흙 마사지가 된다.

가끔 도시에 나가 찜질방에 가서 잘 때면 탁한 기운과 전자파, 그리고 소음 때문에 몸에 두드러기가 돋곤 했지만 불볕더위 아래서 이토록 상쾌하기는, 한 여름 콩밭매기 말고 뭐가 있을까 싶다.

호박잎 땡볕아래 푹 처진 호박잎
호박잎땡볕아래 푹 처진 호박잎 ⓒ 전희식

밭 언저리 호박순이 수줍은 새색시 같다. 맥을 탁 놓고 수분증발을 최소화시키고 있었지만 길 건너 할머니 콩밭에는 네 분의 동네 할머니들이 해 가리개 모자 하나에 의지하여 나처럼 콩밭을 매고 있었다. 도시 나간 자식들 줄 메주와 된장 만들 콩인지라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호미로 풀을 맨다.

콩밭매는 할머니 콩밭매는 우리동네 할머니
콩밭매는 할머니콩밭매는 우리동네 할머니 ⓒ 전희식

곁에 갔더니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콩밭에 엎드려 마을 사람들 이야기랑 면사무소에서 하는 노인 공공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새로운 화젯거리가 생겨 반갑다는 투다. 어머니는 어찌하고 혼자 나왔느냐고 물었다. 이 더위에 어머니 음식은 뭘 해 드리느냐고 대신 걱정이다.

여전히 태양은 하늘 한 복판에서 구름 한 점 안 남기고 다 물리치고선 수그러들 기색도 없이 기세가 등등하다.

덧붙이는 글 | 부모를 모시(려)는 사람들 카페(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콩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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