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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에 참석했던 막내 누님과 매형도 돌아가고 형님도 출근해서 혼자 소파에 앉아 있는데 코흘리개 시절 뛰놀던 고향동네(중동 274번지) 풍경이 뇌리를 스칩니다. '이번 기회에 내가 태어났던 집이랑 동네를 한번 둘러봐야지' 하는 생각에 대문을 나섰습니다.

 

형님댁 근처만 오갔지 정작 제가 태어난 고향동네는 찾아보지 못했는데 좋은 기회라 생각되었습니다. 도시계획으로 골목과 오두막들이 많이 사라졌다는데 얼마나 변했는지, 추억의 향기에 취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가볍고 조금은 흥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동과 금암동 경계인 신작로를 지나니까, 건방질 정도로 높이 솟은 교회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초라하고 허름한 가옥들을 보니 성스러운 교회 건물이 얄미울 정도로 거만해 보입니다.

 

평화와 사랑의 종소리로 죄인인 나를 철부지 때 하느님 앞으로 인도해준 고마운 교회, 하느님의 말씀으로 주정꾼들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을 찾아주었고, 헐벗고 굶주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식량과 구호물자를 나눠주던 성스러운 교회가 오만해 보이다니···.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던 교회의 종소리였는데, 종각은 흔적도 없고 건물 꼭대기의 십자가가 추억을 더듬으려는 제 목을 마르게 합니다. 문득,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대신 종지기 노릇을 하던 금룡이의 해맑은 얼굴이 푸른 하늘에 그려집니다.   

 

고개를 돌리니까 돼지 새끼들이 젖을 먹는 그림 액자와, 인기영화배우 故 김진규씨의 흑백사진이 벽에 걸려 있던 '재생이발관' 자리에 서 있는 높은 시멘트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말이 건물이지 며칠을 굶은 사내처럼 초췌해 보여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이발소에 극장 포스터를 붙이는 대가로 주는 할인권(포스터 권)을 가지고 우쭐대면서도 아버지에게는 꼬박꼬박 가져다주던 기성이 형의 뽀얗고 기다란 얼굴이 그려집니다. 손님들 머리를 감겨주던 기성이 형은 이발 기술을 배워 서울로 올라가 잘 산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고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되었겠네요.     

 

건물 일층에는 슈퍼가 들어서 있는데 해묵은 잡동사니들이 널부러져 있어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가게임을 말해주고 있고, 냉면으로 유명했던 '평양옥' 식당 건물은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처럼 흉물스럽게 변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향동네 여름풍경

 

제가 태어난 군산의 '중동 274번지'는 금강 하구의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나있고, 초가와 함석집이 얽히고 설킨 게 조개껍데기를 엎어놓은 것처럼 고즈넉하고 정이 넘치는 골목동네였습니다.

 

 

가난했지만, 쌀뜨물도 나눠 먹을 정도로 사람들 마음은 넉넉했고 이웃과 함께 웃고 울며 가족처럼 지냈으며 호남평야의 넉넉함을 닮아 마음이 온유하고 인정이 묻어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코흘리개 시절에 뛰놀던 고향동네 여름은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장마철에는 아궁이에 물이 넘쳤고, 똥 덩어리가 떠다니던 빈촌이었거든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땅이 질퍽거려 치마는커녕 신발조차 신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사는 동네'라고 소문이 났겠습니까. 그 속에서도 물장구를 치는 재미로 비만 오면 마냥 '좋아라!'했으니···.

 

허리를 반쯤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집에서 살던 동네 사람들에게 궁궐처럼 보였던 사택단지는 주차장으로 변해 사방이 탁 트이고 하늘이 더 높이 보여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멀리 '뱃공장'이라 불리던 조선소와 제빙공장 사이로 흐르는 금강이 오늘따라 더욱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사택 세 번째 집에 살던 여학생 얼굴이 시나브로 떠오르며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쪽빛 창공에 그려집니다. 교회 앞길에서 공차기할 때마다 대문 앞에 서서 구경하면 괜히 힘이 났는데 이사 갈 때까지 눈길만 주고받았지 대화를 못해본 게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꼭 닫힌 대문 옆의 우편함을 보니 여전히 '중동 274번지'로 적혀 있어 친구에게서 온 편지처럼 반갑게 다가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흉물스러운 판잣집과 함석집의 숫자가 늘어갑니다. 루핑으로 지붕을 덧씌운 허름한 가옥들이 포승줄에 줄줄이 엮인 죄수들을 연상시키면서 마음도 더욱 심란해집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사이사이에 텃밭이 있어 봄이면 장다리가 피고 나비들이 날아다녀 여유와 운치가 있는 동네였는데···.

 

진짜 고향집은 내 마음

 

제가 태어난 집은 입구와 끝이 어디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골목 모퉁이에 있었습니다. 동네가 넓고 작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도둑이 잠입하면 손꼽히는 형사들도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빈민촌이나 달동네에는 '이곳은 가난한 동네요'라고 몸으로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 고향동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골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무엇이 그리 반가운지 해죽거리며 제 주위를 빙빙 도는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정신지체와 자폐증 환자들은 감정이 전달되지 않을 뿐 같은 영혼이기에 불쌍한 생각이 들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몸을 계속 뒤틀며 웃을 뿐 반응이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큰 누님이 떠오르며 감정이 치솟지만 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없이 계속 해죽거리는 여인이 '교회도 크게 짓고 이층집도 많아졌지만, 가난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게 마뜩찮아 집니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는데, 눈이 부시도록 은빛을 발산하며 흐르는 금강이 떠오르며 짱뚱어와 농게를 잡던 갯벌로 당장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그래, 가난을 상징하는 정신지체 환자가 반겨주면 어떻고, 흉물스러운 판잣집이 환영하면 어떠냐. '뻘바탕'(갯벌)에서 친구들과 미끄럼 타며 놀던 벌거숭이 시절의 추억들이 가슴에 영원히 담겨 있을 것이니 진짜 고향집은 내 마음이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작은 미소가 지어지며 무거웠던 발길도 가벼워집니다. 


태그:#고향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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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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