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월에 이어 4개월 만에 다시 제주도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 및 폭염경보가 내려질 만큼 뜨거웠던 토요일(5일) 낮. 한참 손 바쁘게 농사일을 하던 마을 몇몇 분들은 서울에서 손님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마을회관으로 달려오셨다. 우리들의 만남은 식사 시간도 잊은 채 마을회관과 해군기지 건설예정지가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와 강정천 등으로 이어졌다.

이지스함을 본뜬 최병수 화백의 설치 작품. 이지스함을 통해 범섬이 보인다. 기지건설 예정지가 포함된 서귀포 앞바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이지스함을 본뜬 최병수 화백의 설치 작품. 이지스함을 통해 범섬이 보인다. 기지건설 예정지가 포함된 서귀포 앞바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 전은옥

관련사진보기


주민 한사람 한사람이 곧 평화의 교과서

"국가안보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개인과 가정, 마을이 있어야 국가도 있는 것입니다. 지역주민의 의사가 무시된 안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힘의 논리보다 대화의 논리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풀어가기를 희망합니다."

강동균 마을회장의 눈빛은 세찬 바람을 이겨내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굳은 평화를 길러낸 듯 흔들림이 없었다. 예전과 다름없이 강단 있는 마음과 촉촉한 평화의 숨결이 눈동자에서도 비쳐졌다.

마을회관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강동균 마을회장.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아있는 이가 윤상효 전 시의원.
 마을회관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강동균 마을회장.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아있는 이가 윤상효 전 시의원.
ⓒ 전은옥

관련사진보기


여유를 갖고 마을회관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마을 일꾼들이 몇 대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책상에는 엄청난 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자료의 양만큼 주민들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그야말로 평화의 교과서였다. 주민들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의 문제점과 핵심 논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건물외벽에는 네 장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중 '주민동의 없는 해군기지 결사 반대', '국방부(해군) 제주도정은 국회부대의견을 이행하라' 등은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 대책위원회의 핵심 요구사항이다. 한쪽에는 'NO 해군기지'라는 노란색의 아담한 현수막이 두 장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 현수막은 행정당국에서 자주 떼어내 버린다고 한다. 그러면 마을주민들은 다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새롭게 걸어둔다.

마을회관 앞에 현수막 네 장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 현수막을 행정당국이 자주 떼어내 버리곤 한다고 한다.
 마을회관 앞에 현수막 네 장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 현수막을 행정당국이 자주 떼어내 버리곤 한다고 한다.
ⓒ 전은옥

관련사진보기


"해군측 보고서, 사실 정보도 누락"

강정마을 주민이며 시의원을 지낸 바 있는 윤상효씨는 "우리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목적은 어떤 보상을 바라서도 아닙니다. 이것은 생존권 문제입니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윤씨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수 없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했다. ▲ 생존권· 터전· 공동체 문제 ▲ 안보관계 ▲ 환경문제 ▲ 절차 문제 등이 그것이다.

강정마을은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러나 설촌 400년 이래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생존의 터전에 군사시설이 들어와 마을내 공동체를 분열· 해체시키고 있다. 해군기지 문제로 삼촌과 조카가 원수지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국가안보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윤씨는 강정마을에 해군시설이 들어오면 오히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 해군기지는 오히려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의 일환으로 동북아 정세가 불안해지면 오히려 제주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게 윤씨의 생각이다.

윤씨 옆에 앉아있던 한 마을 주민은 "해군기지 들어오면 좋다고 말만 하는데 그렇게 좋으면 도지사네 마을에 유치하라. 해군기지가 좋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 직접 유치하라"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밖에 환경문제도 심각하다. 강정마을은 국제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이며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종인 산호충류와 천연기념물 442호인 연산호 군락지가 있다. 그러나 해군은 사전환경성검토서에 강정마을 해양 생태계의 핵심인 산호충류에 대한 조사를 안 했고, 이곳에 멸종위기종은 없다는 거짓발표까지 했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주장이다.

지난 2006년 5월 환경부는 강정을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했다. 강정 일대는 원시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며 천연기념물인 원앙, 녹나무를 비롯하여 멸종위기종인 솔잎란 등이 자생하고 있다. 또 제주도 내 최고의 은어 산란지이고, 제주연안에 연산호 군락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 연산호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도내 최고의 하천인 강정천은 서귀포 시민의 식수 80%를 공급하고 있다. 그밖에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환경보호활동을 우수하게 펼치고 있다는 점이 강정마을이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선정된 이유다.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해놓고 해군기지 건설 추진"

환경부가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하고 예산을 지원했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건설에 대한 시민불복종과 저항의 방법으로 자연생태우수마을 지정과 그 예산지원을 거부하기로 하였다.
 환경부가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하고 예산을 지원했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건설에 대한 시민불복종과 저항의 방법으로 자연생태우수마을 지정과 그 예산지원을 거부하기로 하였다.
ⓒ 전은옥

관련사진보기


한쪽에서는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할 만큼 그 환경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해놓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소중한 마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여 마을에 심각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자연생태우수마을 예산 지원금 24억 원과 정보화우수마을 지원금도 모두 반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환경도, 지역 공동체의 발전도 모두 소용없는 일일 텐데, 그런 돈을 받아가면서 정부의 이중적인 정책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강정마을이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윤호경 사무국장은 생태우수마을 지정을 반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지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훼손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개발을 정당화시켜 주는 요식행위로 전락해버린 환경영향평가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서귀포 바다의 생태는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생물종 다양성에 따른 생태자원 확보와 학술적 연구체계를 정립하고 청정바다 보존을 위해 더 깊이 노력해야 합니다."

윤 국장은 강정마을 일대 해안은 우리나라 해양 생태계 중 가장 보존연구 가치가 높은 곳이어서 아무리 환경친화적인 개발 운운해도, 매립이나 군함 통행으로 인한 생태계 피해는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원시자연상태를 잘 간직하고 있기에 그만큼 인공을 조금이라도 가하면 곧바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개발 자체를 피해야 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해군기지 문제 잘 모른 채 실시한 총회와 여론조사 무효"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찬반이 엇갈리면서 공동체에 생긴 상처가 너무 크다. 또 예산심의과정에서 국회가 '민군복합형 기항지의 쿠르즈 선박 공동활용 예비 타당성 조사 및 연구용역' 실시를 부대조건으로 내걸었는데도 해군측은 국회의 부대의견에 신경쓰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군기지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모든 일을 추진하고 있다.

대책위원회 양홍찬 위원장은 최초 마을총회 때도 대다수 주민은 해군기지 유치를 위한 모임인지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으며, 모호하게 해군 관련해서 논의하는 단계의 모임인 줄로 인식한 사람이 많았다고 말한다.

도정과 당시 마을회장이 논의 초기단계에서 투명하게 주민에게 정보를 공개한 뒤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는 것. 한마디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해놓고 순식간에 총회를 매듭지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위원장은 "대다수 주민이 해군기지 유치가 마을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나 총회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에서 찾아온 평화활동가들에게 해군기지건설예정지에 대해 설명하는 반대대책위원회 양홍찬 위원장.
 서울에서 찾아온 평화활동가들에게 해군기지건설예정지에 대해 설명하는 반대대책위원회 양홍찬 위원장.
ⓒ 전은옥

관련사진보기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양홍찬 위원장. 평소에는 백합과 한라봉을 재배하며 땀흘리는 농군이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지금은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양홍찬 위원장. 평소에는 백합과 한라봉을 재배하며 땀흘리는 농군이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지금은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 전은옥

관련사진보기


양 위원장은 삭발투쟁을 할 만큼 투혼으로 해군기지를 반대해왔지만, 운동과정에서 "도와 국방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반대주민들을 압박해 들어오는 것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 "제주도민 다수가 강정마을에 군사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목소리를 발신해주는 사람은 강정마을 안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물론 시민단체들이 많이 지원해주고 있지만 각 지역의 지도자급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 위원장은 "도지사가 해군과 너무 유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화운동가로 거듭난 강정 주민들, 릴레이 1인 시위 돌입

참으로 아름다워 눈물겨운 강정마을과 강정 사람들. 이러한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명과 평화의 활기가 넘쳐 흐르는 강정마을. 건강한 웃음과 따뜻한 정이 묻어나던 강정 사람들과 함께 했던 주말 오후는 진정한 평화와 인권과 민주주의의 수업이었다.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며 투혼을 불사르는 강정 주민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살아있는 교사였고, 건강한 평화운동가였다.

이들은 지난 월요일(8일)부터 제주도의회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하였다. 7~8월 두 달간 집중적으로 1인시위를 계획하고 있으니, 여름휴가를 내서 언제라도 다시 한 번 오라고 말하던 마을회장을 비롯하여 뜨거운 폭염 속에서 지금도 고생하고 있을 강정 주민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태그:#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