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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촛불 시위 소식을 전한 <신경보> 7월 6일자 기사.
 한국의 촛불 시위 소식을 전한 <신경보> 7월 6일자 기사.
ⓒ <신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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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이 불만을 품는 것은 쇠고기 문제 자체가 아니라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정책 실패, 고유가 시대에 날로 부담이 가중되는 경제 위기와 이명박 개인의 '독재주의'적 태도이며, 이 모든 것이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게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다."

중국의 유수 언론 <신경보>(www.thebeijingnews.com) 7월 6일자 기사의 한 대목이다. <광명일보>와 <남방일보>가 2003년 공동으로 창간, 북경에서 발행하고 있는 <신경보>는 중국 젊은 층의 신뢰를 얻고 있는 신문이다.

<신경보>는 한국의 촛불 시위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전문가 견해를 빌려, 촛불의 원인 중 하나로 이명박 대통령의 "'독재주의'적 태도"를 지목했다. 이 신문은 7월 5일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촛불 시위를 전한 이 기사에서 한국인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함께 "이명박은 하야하라", "국민이 승리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전했다. 또한 "미친 소, 미친 정부"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색 깃발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전했다.

"촛불 시위의 초점은 이명박 정권의 핵심 정책들"

이처럼, 그동안 한국 촛불 시위에 대해 단편적인 보도 위주이던 중국 언론들 중에서도 단순한 외신 번역을 넘어 나름의 분석까지 곁들이는 기사를 전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 한국에서 쉬지 않고 타오르는 촛불의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신경보>에 앞서 <중국일보>도 6월 13일자에서 촛불 시위 장기화 현상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시위의 초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넘어 "대운하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학교 자율화 반대" 등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핵심 정책들에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명박 정권이 많은 한국인이 반대하는 이러한 정책들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촛불을 끄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도 전했다. 아울러 많은 한국인이 촛불 집회 생중계 방송을 보기 위해 <오마이뉴스>와 '아프리카' 사이트를 방문하는데, 그 수가 평소에 비해 3배 정도 늘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중국 언론들의 한국 관련 보도는 대체로 중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의 주요 언론이나 <연합뉴스> 같은 통신사의 뉴스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촛불 시위 관련 보도는 이른바 '조중동'식의 편향적인 보도 틀과는 달라 보인다.

6일 청와대에서 외신인 교도통신·BBC와 합동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자료 사진).
 6일 청와대에서 외신인 교도통신·BBC와 합동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자료 사진).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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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 향해 시위할 수 있다니..."

신문 보도 이외에도 기자는 베이징 현지에서 관영 CCTV 화면, 한국에 상주하는 중국인 특파원과 전화로 연결해 촛불 시위 현장 모습을 전하는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서 한국의 '촛불'이 중국으로 전해지는 모습을 접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중국인들은 한국 촛불 시위의 실체를 아직 잘 모르거나,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다. 중국의 20대 학생들과 이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기자는 이러한 점을 여러 차례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인민대학을 졸업한 왕아무개씨(24)는 "한국 경제를 살리겠다고 선언한 후보자를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투표해서 뽑아놓고 어떻게 시위를 할 수 있는가, 모든 국민이 원해서 뽑은 대통령이 아닌가"라며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왕씨는 "한국인들은 1980년대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스스로 민주를 얻은 민족"이라며 평소 한국 정치 상황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1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던 중국대학생 손아무개씨(24)도 한국 촛불 시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손씨는 "미국은 자본주의에 충실한 국가라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광우병 위험 요인이 있는 쇠고기 한국에 수출하지 않을 것"이라며 "(촛불 시위는) 한국의 몇몇 언론과 배후 세력이 조장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 대동소이한 생각이다. 또한 손씨는 "장기간의 촛불 시위는 외국인 투자자나 한국으로 유학 가려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인민대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당아무개씨(23)도 "한국에서 진행되는 촛불 시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씨는 "경제를 살리려는 대통령을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한미FTA를 위해서라면 개방해야 할 시장은 개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과 달리, 북경대학 MBA 과정에 재학 중인 헨리씨(Henry·26)는 "국가 지도자가 잘못을 하면 국민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며 촛불 시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에게 "만약 광우병 발생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중국에서도 수입한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물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중국인들은 대체로 "중국의 정치 지도자와 검역 체계를 신뢰한다, 중국에 유입되는 쇠고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왜 한국인들은 자기 손으로 뽑은 정치인과 검역 체계를 믿지 못하느냐"며 의아해했다.

기자는 이러한 반응이 최고 지도자를 선출할 투표권이 일반 시민들에게  없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특성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만나본 중국인들 중에는 한국의 선거 제도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는데, 그들 중엔 국민이 이명박 정권을 향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 자체를 의아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각자 권리를 행사해서 선출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뜻을 지지하는 것이 총의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중국도 같은 상황 놓인다면? "우리는 중국 정치 지도자 신뢰한다"

이처럼 체제의 차이 때문에 한국의 실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촛불 시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베이징올림픽 등 중국 내 현안들 때문에 한국의 상황 자체를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는 중국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또한 부정적인 의견 일색이라고 볼 수도 없다. 중국 야후 사이트의 한국 촛불 시위 관련 문답 중에서는 '왜 한국인들은 촛불 시위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한국의 정치 상황과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야후 사이트에는 '중국인들이 저렇게 시위해 본 지가 오래됐다'는 회고조 의견,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발생한 소란을 두고 한국 누리꾼들이 중국 유학생에 대해 미쳤다는 표현을 썼는데 요즘 보면 한국인들도 미쳐가나 보다' 같은 냉소적인 의견도 있다.

중국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북유모'에는 "몸은 중국에 있어 평화적인 촛불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함께 한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염려된다, 먹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며 화장품, 생리대 등 여러 곳에 사용될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 등 촛불 시위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올라오고 있다.

많은 유학생이 촛불 시위를 지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촛불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만 대한민국 국민이고 반대하는 사람은 매국노인 것처럼 몰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중국 거주 한인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북유모' 첫 화면.
 중국 거주 한인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북유모' 첫 화면.
ⓒ 북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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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 시위, #이명박, #독재,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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