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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이웃들이 있는 삶의 모습

 

해거름이 되자 한낮의 열기가 많이 식었다. 마을사람들이 밭으로 나왔다.

 

옆집아저씨가 알타리무를 솎고 있다. 씨 뿌린 지 2주 정도가 지나 제법 파릇파릇해졌다. 뒷집아저씨는 농약통을 짊어졌다. 고구마 밭고랑에 난 잡초를 잡을 모양이다. 젊은 쌍둥이아빠는 낫을 들었다. 빠른 손놀림에 잡초가 여지없이 쓰러지고 있다. 건너집 아저씨는 낮잠을 주무시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밭 너머 뒷집할머니가 서리태모를 내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허리를 펴고 하시는 말씀이 푸짐하시다.

 

"원! 농사짓기가 이렇게 힘들어서! 콩이 싹틀 땐 비둘기 떼가 훼방을 놓더니만, 이젠 고라니 녀석들이 못살게 구네! 선생님네 팥이랑 콩은 멀쩡하네! 뭣 때문에 우리 것만 손을 댈까! 선생님이 하도 열심히 하니까 손을 못 대는 건가?"

 

할머니는 말끝에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그 웃음 속에서도 할머니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데 짐승 녀석들이 두 번 일을 시키니 말이다. 녀석들도 더위에 애쓰는 심정을 좀 헤아려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에서 삶의 정겨움이 느껴진다.

 

"내일은 손 털고 장군봉에 오릅시다!"

 

한참을 참외밭에서 순을 질러주고 있는데, 옆집아저씨가 나한테 소리를 지른다.

 

"전 선생, 우리 집 평상으로 집합이야!"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좋은 일은! 곁두리로 막걸리나 한 잔 하자구!"

"전 어제 과음해서 별로인데!"

"딱 한 잔만이야!"

 

아저씨 채근이 예사롭지 않다. 장화도 벗지 않은 채 부리나케 아저씨 집으로 갔다. 말은 그랬어도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던 참이었다.

 

그늘 막에 소박한 술상이 차려졌다. 안주는 닭도리탕이다.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좀 전에 보이지 않던 건너집 아저씨도 잔을 기울이며 반가이 맞아준다. 쌍둥이 아빠는 밭을 더듬으며 풋고추를 따온다. 막걸리 안주로는 풋고추에 된장이 제격이라나?

 

부지런히 일하다 이웃과 함께 먹는 막걸리! 같은 막걸리라도 목이 탈 때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단숨에 한 잔을 들이키자 갈증은 저리가라 한다.

 

노상 만나는 이웃들이지만 모이면 말이 많다. 화제가 바뀌고,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졌다.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다 쌍둥이아빠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건강 걱정할 필요 없어요. 장군봉에 한 번 오르면 운동도 끝나고, 스트레스도 끝나요! 마니산 기(氣)가 얼마나 센지 다 알잖아요? 장군봉이 만병통치약이라니까요! 우리 그러지 말고 내일 장군봉으로 소풍가면 어떨까요?"

 

두어 잔 술이 들어가자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함께 모여 산에 오른 지가 꽤 되나 보다. 농사일 제쳐두고 산에 오르자는데, 그래도 만장일치다. 빤히 보이는 뒷동산 마니산 장군봉이 우리를 부르는 듯싶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여름산이 좋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배낭에 짐을 주섬주섬 싼다. 산행할 때 배낭꾸리는 일은 내 몫인데 오늘은 웬일이실까?

 

"내가 알아서 챙길 건데! 막걸리 마른안주만 있으면 돼. 오징어나 굽지?"

"어르신들 모시고 산에 간다면서요. 오징어보단 북어포가 낫지요."

"그거 좋겠네!"

"음료수랑 재워둔 토마토, 오이도 챙겼으니 맛나게 드셔요."

 

아내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웃들과는 좋은 관계로 지내야 한다며 어른들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하다. 이제 남은 것은 막걸리. 가게에서 냉막걸리 두 병을 샀다. '좀 적으려나? 그래, 산에서는 적당히!' 배낭을 짊어지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우린 마니산 장군봉을 향하여 출동이다. 다섯 명의 발걸음이 가볍다. 떠나는 이웃들은 나이가 층층이다. 팔순을 넘기신 할아버지, 일흔이 코앞인 옆집아저씨, 건너 집 아저씨, 씩씩한 쌍둥이 아빠 그리고 나. 지천명을 넘긴 쌍둥이 아빠는 막내이다.

 

쌍둥이 아빠가 내가 짊어진 배낭을 본 모양이다.

 

"선생님, 배낭에 뭘 쌌어요? 제가 짊어질 게요. 셀퍼하면 저 아닙니까?"

"별로 무겁지 않은데! 그나저나 어르신들 힘들지 않게 쉬엄쉬엄 가자구!"

 

우리가 나눈 말을 듣고, 제일 연장자인 할아버지께서 손사래를 친다.

 

"나는 걱정 말라고! 한두 번 간 길도 아니니까! 내 산 타는 실력을 다 알면서!"

 

씩씩한 발걸음을 옮기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당차시다. 건강만큼은 자신 있다는 밝은 표정이 참 보기 좋다. 점점 산길이 가팔라지자 땀이 비 오듯 한다. 앞서간 쌍둥이 아빠를 찾았다.

 

 

"여기서 숨 좀 돌리자! 어르신들 힘들잖아!"

"어르신들은 말씀이 없으신데, 선생님만 그러시네! 좀 더 가면 쉴 데가 있잖아요."

 

펑퍼짐한 바위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 보니 우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숨을 고르며 마시는 음료수가 청량제이다.

 

무슨 식물 하나 알아올까?

 

산에 오르다 한참 쉬면 팍팍한 다리에 힘이 실린다. 겨드랑이에 시원한 바람이 파고 든다. 정말 시원하다. 아마 이 맛에 여름산에 오르는지 모르겠다.

 

유월 중순경, 경기도 광주 문형산에서 본 천남성이 생각났다. 요염한 자태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앞선 아저씨께 물었다.

 

 

"마니산에서 천남성이라는 풀은 못 보셨어요?"

"천남생이 말하는 거야? 있지! 아마 지금쯤 열매가 달렸을 걸!"

"그래요? 그거 어디 있죠?"

"조금 가면 갈라진 길이 있지? 그 골짜기에 숱하게 있어! 고놈들 독초인데, 꽃은 볼만하지!"

 

아저씨를 따라 가보니 천남성이 일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문형산에 본 것과 똑 같다. 그런데 아쉽게도 꽃이 졌다. 아저씨가 예상한 대로 벌써 씨가 맺혔다. 열매가 참 특이하다. 옥수수 모양을 닮았다고 해야 하나?

 

"이 녀석도 익으면 옥수수처럼 누렇게 되요?"

"아냐! 요놈은 아주 빨게! 10월쯤이면 여문 열매를 볼 수 있을 거야! 천남생이 여문 열매 보러 이곳에 또 오자구."

 

산행을 하며 자연 하나하나를 익히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른 데서 본 식물을 이곳 마니산에서 확인할 수 있어 새로운 맛이 난다.

 

"장군님, 잘 계신 거죠?"

 

 

어느새 정상이다. 쌍둥이 아빠가 장군봉 정상에서 정복의 환호성을 지른다. 마니산 기를 받아야한다며 두 팔을 벌려 산하를 껴안으려 한다. 그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옆집아저씨는 장군바위께 인사를 드린다.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장군님, 우리 또 왔수다! 장군님 행복한 미소 때문에 오늘도 건강하게 올라왔지요!"

 

 

자연을 벗삼아 함께 하고자 하는 깊은 마음이 엿보인다. 준비한 음식을 풀어놓았다. 늘 대하는 음식이지만 산에서 먹는 맛은 맛이 다르다. 갈증을 덜어주는 한 잔의 막걸리가 꿀맛이다.

 

이웃들과 가끔 함께하는 장군봉 산행이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여름산의 묘미는 싱그러움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녹음 짙은 산을 아무리 쳐다봐도 싫지가 않다. 눈이 시원하다. 숲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함도 그만이다.

 

어디서 들리는지 뻐꾸기 두 마리가 맞장구를 친다. 이쪽에서 "뻐꾹 뻐꾹" 하니까, 다시 저쪽에서 "뻐꾹 뻐뻐꾹" 응답한다. 녀석들은 사랑의 속삭임을 이런 식으로 나누는 건가?

 

마니산 장군봉에 올라 막걸리 잔을 서로 권하는 우리 이웃들도 자연의 소리만큼이나 정겹다.


태그:#마니산, #장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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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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