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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주민들이 동네촛불 거리행진을 하려고 모였다. 동사무소 앞에 놓인 장미꽃과 양초.
 저녁 8시 주민들이 동네촛불 거리행진을 하려고 모였다. 동사무소 앞에 놓인 장미꽃과 양초.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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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시네요~ 우리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하고 계시네요.”

촛불을 손에 들고 동네를 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머니 한 분이 말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과 거리를 지나는 이들 모두는 한 동네 사는 이웃들이었다.

유치원에 다닌다는 어린이가 직접 그리고 쓴 손팻말. "나는 미국산 쇠고기 먹지 않아요."
 유치원에 다닌다는 어린이가 직접 그리고 쓴 손팻말. "나는 미국산 쇠고기 먹지 않아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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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겐 풀을 주고 우리에게는 꿈을 주세요!!
 소에겐 풀을 주고 우리에게는 꿈을 주세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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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만이라도 촛불을 켜볼까?’ 하는 마음이 모여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같이 촛불을 켜자는 일이 8일(화) 저녁 8시로 정해졌다. 대전 유성구 신성동에 사는 주민들은 동네 촛불거리행진을 하는 날짜와 시간을 이웃들에게 서로 알렸다. 장소는 신성동사무소 앞이었다.

저녁 8시 즈음이면 대부분 가정들이 저녁을 끝낸 때이다. 신성동사무소 앞에는 누군가에게 전해줄 장미꽃이 한 송이마다 포장되어 모여 있었다. 소식을 듣고 나온 주민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촛불에 불을 켰다.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온 유치원 어린이와 초등학생들도 자기 손에 촛불을 들었다.

“장미꽃은 몇 분이 갖고 있다가 우리가 동네를 돌 때 호응해주시는 분들께 드리면 됩니다. 오늘은 조용히 걸으면서 주민들이 어떻게 이 분위기를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만 일단 해 보기로 하지요. 차들이 다니는 길에서는 어린이들 안전에 특별히 주의해 주세요.”

동사무소에서 한울아파트로 내려가는 길. 주민들 손에 촛불하나씩 켜들었다.
 동사무소에서 한울아파트로 내려가는 길. 주민들 손에 촛불하나씩 켜들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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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장터를 돌면서 걷는 주민들.
 아파트 장터를 돌면서 걷는 주민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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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직접 그리고 만든 손 팻말을 들고 동사무소에서 한울아파트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는 밤이어도 여전히 더웠다. 처음 30여명이 모여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거리를 지나던 동네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촛불’을 반기며 함께 걷는 주민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한울아파트에 들어서자 장이 서는 날이었는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그 시간까지 남아 있었다. 채소를 파는 할아버지는 촛불행진을 하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원, 차두 막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동네서 차 막혀봐야 얼마나 막히나’ 대꾸했다.

어린이들 안전에 주의해주세요!
 어린이들 안전에 주의해주세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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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운전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운전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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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아파트로 들어가는 횡단보도를 지나 두레상가를 지나면서는 한 가족 네 식구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가 같이 행진을 했다.

신성교회 부근에서 잠시 혼잡했던 길.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다시 바라본 시간이었다.
 신성교회 부근에서 잠시 혼잡했던 길.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다시 바라본 시간이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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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촛불이 켜졌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에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과 중학생인데 지금 이 모습은 그 아이들의 산 교육장이 될 겁니다.”

두레아파트 후문 쪽에는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음식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촛불행진을 보면서 손을 흔들기도 했다. 금성초등학교 근처에 치킨을 파는 가게에서는 콜라를 전하며 응원을 보냈다. 신성교회에서 다시 동사무소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회식이나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과 섞여 잠시 혼잡했다. 사람들은 ‘어, 우리 동네서도 촛불을 켜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시 동사무소 앞에서 모인 동네사람들.
 다시 동사무소 앞에서 모인 동네사람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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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물을 마시느라 잠시 쉬고, 다시 동사무소까지 오는 동안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동네촛불행진에 참여한 주민들은 45명 정도가 되었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신성동 주민뿐만 아니라 노은동과 전민동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동사무소 마당에 둥글게 앉아 자기발언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자유롭게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도 말할 수 있었다. 어두워서 말하는 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자기발언은 모두 우리들 생활의 현장(현실)이었다.

언제까지 제 몸을 태워야 하나요?
 언제까지 제 몸을 태워야 하나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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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곧 (촛불을 켜는) 새로운 문화로 대체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사회를 이끌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봤어요. 언제까지 이 촛불을 켜야 할지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함께 힘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전민동에서 살고 있어요. 친구가 이 동네 살고 있는데 친구 보러 왔다가 같이 하게 됐어요. 동네에서 촛불을 켜니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엄마들 모임 때 우리 동네에서도 이런 걸 제의해 보고 싶어요.”

바닥에 걸터앉은 주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귀에 익숙해진 노래는 합창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명박이는 전과 14범이다 이명박이는 전과 14범이다 이명박이의 모든 권력은 거짓으로부터 나-온-다~’

신성동 마을 촛불행진은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동사무소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다음 모임은 7월 15일(화) 저녁 8시이다. 장소는 동네 형편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예정입니다.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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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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