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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구청입니다...내일부터 바로 출근할 수 있으세요?!”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예, 그럼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지난 2007년 2월 1일부터 말일까지 동사무소에서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학교를 다니고 있던 때였고 마침 방학을 맞아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찾고 있던 중이었다. 원래는 2006년 11월에 미리 동사무소에 가서 공공근로 신청을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물 건너 간 줄로만 알고 다른 일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미 한 달이 지났는데 뜻밖에 전화가 온 것이다. 공공근로는 벌써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기에 이곳에서 연락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구청 직원도 “이런 일은 거의 없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어쨌든 기뻤다.

 

내가 한 알바는 사무보조

 

2월 한 달 동안 걸어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동사무소에 출근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동사무소 사무실 내에서 전산입력(엑셀)을 하는 것이었는데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했다. 일당은 시간당 3,700원 가량 됐던 것 같다. 거기에 주휴 수당이 추가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일당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퇴근했다.

 

출근하면 먼저 사무실 안에 유리로 된 칸막이 안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컴퓨터를 켜고 암호를 입력해 정리하는 서류 창을 열었다. 그리고 지하 창고에 가서 사망자 기록카드를 한 아름 안고 다시 들어간다.

 

전산에 기록되어 있는 기록과 수기로 된 낡은 기록카드를 비교하고 누락된 것을 추가로 기록하거나 새로 기입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만들어 적당량씩 묶음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때는 마침 구청장 선거가 있어서 동사무소는 2월 한 달이 무척 바빴다. 시스템 변화와 구청장 선거 등 여러 업무가 폭주하다 보니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쓰기로 한 모양이었다.

 

매일, 사망자 신상카드를 만지며

 

내가 다루는 신상기록 카드는 가장 오래된 사망자 기록 카드들이었다. 그것도 연도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 뿌옇게 먼지가 앉은 오래된 사망자 기록카드를 수건으로 닦고 만지면서 전산 데이터와 비교하면서 기록하고 묶음으로 정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일을 하다보면 점심 때쯤이면 눈앞이 멍멍할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한 달 동안 매일 죽은 지 오래 된 사망자들의 카드를 만나며 하루를 보냈다.

 

처음엔 죽은 자들의 기록 카드를 매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차츰 적응 되어 갔다. 그들이 세상에서 남기고 간 것들은 무엇일까. 내게 주어진 그들의 인생 기록은 얇은 종이 한장에 기록된 것이 전부였다. 그들의 행적은 그들이 태어난 날짜와 거주지를 옮긴 날짜, 그리고 이름과 주소, 가족 이름 등 몇 개 숫자와 단어들의 조합에 불과했다.

 

그들의 인생은 이렇게 누렇게 빛바랜 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종이 하나에 기록되어 남았을 뿐이었다. 그들의 사망날짜는 붉은 글씨로 카드 맨 뒷면에 휘갈긴 글씨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하나의 기록카드 끝에서 끝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인생은 참으로 가엽고도 가벼워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죽어서 그들은 이렇게 하나의 카드로 남았다. 그들 중에는 아주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사람도 있고 아주 오래 산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카드에 몇 자의 단어와 숫자로 남았다.

 

사망자의 기록카드를 정리하면서 아는 이름을 발견하곤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그 사람인지 다시 확인해 보기도 했다. 이름만 들먹이면 알 수 있는, 한때는 광역시의 시장으로 역임했던 이름이 거기 있었다. 그 역시도 그의 삶과 죽음의 행적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름, 출생, 몇 번 옮긴 주소지 그리고 사망 날짜, 그것이 전부였다. 사망자들의 카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빨리 일을 처리하려고 애썼다.

 

나는 매일 아침이면 사망자들의 카드와 만나고 또 저녁이면 그들 기록들을 남겨두고 퇴근 했다. 얼마동안 사망자 기록카드를 정리하고 난 뒤에는 조금씩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카드로 옮겨갔다. 차츰 기분도 괜찮아졌다.

 

해가 지는 저녁 무렵 집에까지 타박타박 걸어가면서 죽은 듯한 앙상한 높은 나뭇가지 위에 집을 지은 새둥지를 보면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안식할 집을 원하는구나, 날아다니는 새들도 저렇게 집을 짓는구나 생각하면서 길을 걷곤 했다.

 

이곳에 한 달간 일하면서 동사무소 직원들, 특히 점심시간이면 함께 점심을 먹었던 몇몇 직원들과 친하게 지냈다. 역시 사람은 가까워지려면 함께 밥을 먹어야 하나보다. 일당을 벌며 비싼 음식을 사 먹을 순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선거기간 동안에는 수고하는 동사무소 직원들을 위해 위에서 배려한 까닭에 약 10일 넘게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그 후로는 싼 음식점을 함께 찾아다녔다.

 

모두들 착하고 순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기록카드가 한자로 되어 있어서 애매한 한자를 자주 물어보면서 내가 귀찮게 했던 현정씨는 성격이 원만하고 편했다. 모두들 원거리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달을 거의 다 채워 갈 무렵, 동사무소에서 슬픈 일이 생겼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일어 난 일이었다. 선거와 과중한 업무, 자기 개발 등으로 일을 많이 하던 성실한 한 직원이 간밤에 죽은 것이다. 김 주임이라 한 것 같다. 김 주임은 동사무소에서도 일을 아주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성격도 꼼꼼하고 일을 찬찬히 잘 하는 사람이라 했다.

 

함께 밥을 먹어본 적이 없고 그냥 사무실에 출근하면 가볍게 인사를 할 정도만 아는 정도의 사람이었다. 얼굴빛이 창백하고 많이 야윈 그의 첫 인상은 차가움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에 의하면 남의 일까지도 꼼꼼하게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내게 말을 걸어 온 것은 딱 한번 있었는데 한창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전산 입력 작업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다른 직원 두 사람과 유리 칸막이로 따로 된 작은 사무실처럼 되어 있는 곳, 바로 내가 일하는 곳으로 들어오더니 ‘잠깐 자리 좀 비켜 주실래요?’라고 했던 말이 전부였다. 나는 그때 ‘예’ 하고 사무실로 나와 잠시 서 있었다. 그것이 김 주임을 본 마지막 저녁이었다.

 

사건이 있기 전날 밤엔 전 직원 회식이 있었다. 나는 내 일을 끝내고 먼저 퇴근했다. 이튿날 출근을 해보니 사무실 분위기가 여느 날과는 달랐다. 사무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무거울까, 혼자 막연히 생각하며 내 책상 앞에 가서 앉았다.

 

얼마쯤 지나자 갑자가 오열하는 한 여직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슨 꾸중이라도 들은 것일까 하고 다시 업무를 보려는데 울음소리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계속 되는 침울한 분위기에 궁금했던 나는 함께 점심을 먹고 친해진 현정씨 옆에 살짝 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김 주임이 어제 새벽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데요!”

 

나도 할 말을 잃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그래도 그렇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오늘 아침에 이렇게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고 갑자기 싸늘하게 주검으로 변해도 된단 말인가. 이렇게 갑자기 가도 된단 말인가. 내가 이곳 동사무소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도 아니고 잠깐 한 달 동안 일해 왔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가까운데서 사람이 죽다니. 그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 직원이 간밤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 날 점심 때도 우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점심을 먹었다. 그런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우리는 밥을 먹는 것이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죽은 자에 대해 많은 말을 들었다. 그는 일을 잘 하는 꼼꼼한 성격에다가 남의 일까지도 맡아 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직장을 다니면서도 미래를 위해서 야간에는 대학에 시간 강사로 강의를 하고 또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젊은 아내와 이제 막 첫 돌을 넘긴 아들을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것이다. 그날 하루 온종일 동사무소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하지만 고객들한테는 애써 표정을 밝게 했다.

 

얼마 후 인사이동이 있다는 말에 사무실 안은 술렁거렸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이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바로, 어제 저녁 때까지만 해도 사무실 책상, 그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꿈도 많았던 한 사람이 간밤에 싸늘하게 시체가 되어 죽음의 소식을 전한 것이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아주 가깝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한 발 내딛는 이 걸음 앞에 바로 죽음의 문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편103:15)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편144:4)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모든 것을 다 누려보았던 솔로몬은 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도서1:1-2).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다 누려보았던 그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다. 그리고 전도서 끝에 가서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이토록 가벼운 목숨, 이토록 가벼운 인생, 이토록 허무하게 간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동사무소 한 직원이 죽고 난 뒤 얼마동안 화두가 되었던 것은 바로 삶과 죽음이었다. 한동안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길을 가다가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오늘 한번 이 짧은 스침이 그 사람과는 어쩌면 생의 마지막 스침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들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눈길 한번 더 주고, 한번 더 따뜻하게 손 내밀고, 한번 더 웃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빨간 신호등 앞에 서 있으면 푸른 신호등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쪽에도 건널목 저쪽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푸른 신호등이 들어오면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들, 그들이 그냥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건너면서 '잠깐 스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하고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늘 함께 있던 사람이 내일 또 다시 함께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 이 순간에 만난 한사람,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또 다른 사람들, 그들이 또 내일 이 세상에 존재하리란 보장은 없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을 또한 악으로 갚지 말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며, 사랑의 말, 정다운 말,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말, 겸손한 말, 그래서 상대방에게 진심을 심어주고 빛을 주는 그런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마땅히 사과해야 할 사람에게 용서를 빌지 않은 일은 없는지,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에게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말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배려가 필요한 그 누군가에게 인색하게 굴고 있지는 않은지,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무관심하게 있지는 않았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고나 할까. 한 달 동안 함께 일했던 사무실에서의 한 사람의 죽음 소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겸허하게 했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부음 소식은 자주 들려온다. 동창들 부모의 죽음 소식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동창들의 슬픈 죽음 소식도 들려온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에도 그 누군가가 태어나고 그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 또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자들이 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다.'(전도서 7:4)고 했던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아니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무엇으로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있을까. 한 발자국 내미는 그 발걸음도 책임질 수 없고 앞을 볼 수 없는 약하디 약한 인생들인 것을. 그래서 매 순간 겸손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한 달간의 아르바이트, 그것이 준 교훈은 인생에 대한 겸허함이었다.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태그:#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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