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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유죄'를 선고받고도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말했다.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지지한 죄, 그것이 그의 죄였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종교가 법의 위치와 권위를 차지해 과학을 검증하고 심판했다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라고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권력이나 권위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주장을 제기할 수 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고자 하는 것 역시 '자유'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는 사실이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망'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부터는 영화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1993년작 할리우드 영화 <데몰리션 맨>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 영화는 2032년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콕토'라는 인물에 의해 통치되는 미래는 말 그대로 '전체주의 사회'다. "안 좋은 것은 모두 금지한다"라는 모토 아래, 폭력은 무조건 금지돼 무기조차도 마음대로 소지할 수 없다. 무기를 보려면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소지해서는 안될 물품의 목록 중에는 석유·초콜릿·소금 등이 포함돼 있다. 욕을 할 경우에는 국가로부터 벌점을 받아 그 벌점을 계산하는 기계도 있다. 임신도 국가의 허락을 맡아야 할 수 있으며, 육체적인 관계도 당연히 금지. 성욕은 대신 해결해 주는 기계가 있어 그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욕설에 따른 벌점을 계산하는 기계와 성욕을 대신 해결해 주는 기계가 말해 주듯이, <데몰리션 맨>이 다루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권력이 앞서간 기술력과 정보력을 오히려 인간의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한 마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좋은 의도였다."

 

저런…. 그러고 보니, <데몰리션 맨> 속 전체주의 사회는 "안 좋은 것은 금지한다"는 '선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국가권력이 '과학'을 수사하는 사회

 

 

<PD수첩>을 향해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의 근거는 농림수산식품부가 <PD수첩>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를 제기했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방송이 국가권력의 정책 집행에 대해 이견과 오류를 제기한 것에 대해 '허위'와 '왜곡'을 근거로 수사권력의 힘을 빌고자 한 것이다.

 

그 힘을 빈 근거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름아닌 '명예훼손'이다. 갈릴레이의 지동설 재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종교권력이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심판한 이유는, 다름아닌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다른 학설을 지지하면서 종교의 권위를 실추 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인간 광우병'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질병이다. 그래서 그 숱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실체가 명확하지 않기에' 우리의 검역주권을 더욱 명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 아닐까. 집요하고도 다양했던 문제제기는 그런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실수, 혹은 무능이 발견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D수첩>은 그것을 거론했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검찰에 '명예훼손' 수사의뢰를 요청한 근거 중 하나는 분명히 "농식품부가 미국의 실정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숨기고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합의했다고 왜곡했다"는 것이다.

 

글쎄, 정부가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조치'를 잘못 이해하고 오역한 것은 많은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 그리고는 "미국을 못 믿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명대사를 남긴 것도 분명한 사실일 텐데, 그 사실을 '공연히 거론'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라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쉬운 수사방식 외면하고 '프로그램 원본' 고집, 이상한 검찰

 

 

한가지 불가사의한 것은, 농식품부의 입장을 사실상 대변하고 있는 검찰과 '조중동'이 아주 쉬운 방법을 애써 외면하면서 <PD수첩>을 향해 '프로그램 원본'을 요구하는 현상이다. '프로그램 원본'을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고 아레사 빈슨이 CJD로 사망했는지, 아니면 vCJD로 사망했는지. 그리고 '주저앉은 소' 관련 동영상을 보여준 이유가 "주저앉은 소는 모두 광우병 걸린 소"라는 주장을 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주저앉은 소 중에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도축 작업장에서 검역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려고 했는지. 이 2개의 요소를 판가름하고자 함일 것이다.

 

나로서는 검찰의 대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검찰은 "<PD수첩> 측이 자료 제출을 계속 거부하면 고 아레사 빈슨의 주치의를 직접 접촉해 방송 내용의 왜곡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수사의 기본은 어디에 두고 온 것일까? '프로그램 원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수사에 결정적인 증언을 해둘 증인과 접촉하는 것 아닌가.

 

증인은 1명이 아니라 2명이다. 주치의도 있지만, 고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 로빈 빈슨 여사도 있다. 물론, 로빈 빈슨 여사는 인터뷰 도중 CJD를 언급함으로써 지금의 혼란이 유발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수사 당사자인 <PD수첩> 제작진이 더욱 확실한 수사방법을 제기했다.

 

"보수언론에게 묻고 싶다. 특파원은 왜 외국에 보내나. 특파원들이 현지에서 충분히 취재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취재 가능하고 인간 광우병 우려 소견을 밝힌 의사들도 취재가 어렵지 않다. 이렇게 취재에 뛰어들면서 비판하고 감시했으면 좋겠다."

- 오동운 PD

 

그러게 말이다. '조중동'이 미국 현지로 보낸 특파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취재 가능하다"고 하질 않나. 대한민국 검찰도 마찬가지다. <PD수첩> 측에 뭔가 제출을 요구한다면 '프로그램 원본'보다는 '로빈 빈슨 여사의 연락처'다. 전화 두 통화, 그리고 영어가 가능한 검사 1명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질문도 딱 한 마디씩만 하면 된다.

 

"여사님의 따님은 CJD로 사망했습니까? vCJD(혹은 Mad Cow Disease)로 사망했습니까?"

"당신이 주치의를 맡았던 '아레사 빈슨'은 CJD와 vCJD 중 무엇 때문에 사망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까?"

 

서울중앙지검 <PD수첩> 전담 수사팀(팀장- 부장검사 임수빈), 뭐하고 있나? 지금 당장 국제전화 두 통만 걸면 쉽게 수사할 수 있다. "인터뷰의 흐름상 바롯이 '빈슨이 CJD에 의한 사망으로 진단된다'는 얘기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PD수첩>이 이를 방송분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만 할 것이 아니라, 전화를 걸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프로그램 원본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건너가 보자.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영화는 <시네마 천국>이다. 신부가 영화를 검열하고 있다. 종을 흔들어가면서 영화 속 러브신을 철저하게 삭제할 것을 명령한다. '프로그램 원본'을 검열할 검찰, 과연 어느 장면에서 종을 흔들까?

 

시민들은 이미 '브이 포 벤데타'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그리는 2040년의 영국 사회는 <데몰리션 맨>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사회다. 정부의 핵심 지도자와 정치적 성향은 물론 심지어 성적 취향까지 다른 사람들은 '정신집중 캠프'로 가야만 하며, 거리 곳곳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가 설치돼 모든 사람들을 통제한다.

 

그러다가 '가이 포크스'라는 역사 속 인물의 가면을 쓰면서 혁명을 꿈꾸는 남성이 나타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수십만의 시민들이 같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뛰쳐나와 혁명에 동참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촛불시위에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왔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시민들이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난 7일, MBC 본사 앞에서 MBC 노조원을 비롯한 전국언론노조 구성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했던 촛불문화제를 취재하면서 나는 다시금 <브이 포 벤데타>를 떠올렸다.

 

 

 

말없이 간절한 눈빛을 통해 더 많은 말을 던졌던 손정은 아나운서, 재치 속에 뼈를 담은 멘트로 시민들을 웃게 했던 김완태 아나운서와 광주 MBC '신얼씨구 학당' 남녀 진행자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무대 위에 올라와 '자유발언'을 남기고 행진에도 동참했던 시민들. 시민들은 그 '동참' 자체로 MBC 노조원들과 함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좋은 의도였다"고 했다. 영화 <데몰리션 맨> 속 전체주의 사회도 그 발언의 취지가 그대로 반영된 사회였다.

 

하지만, 농식품부와 검찰의 '그 일을 시작한 동기'에는 어떤 '좋은 의도'였을까? 그 '좋은 의도'조차도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민의 건강이 달린 사안에 대한 본인들의 실수를 거론한 것조차도 '명예훼손'을 운운한 마당이다.

 

나와 잠시 인터뷰를 가졌던 전국언론노조 박성재 MBC본부장은, 본질적으로 같은 위험, 하지만 더욱 시급한 현실에 처한 YTN 노조와 KBS의 일부 구성원들을 향해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MBC 노조는 KBS의 '낙하산 사장' 음모 저지 투쟁에 대해 이미 동참을 선언했다. 과거, KBS 박권상 사장이나 서동구 사장 등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영방송은 필히 겪는 투쟁이다. 정연주 사장도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인사 임명 아니었나.

 

하지만, 이 정권처럼 특보단을 각 방송사 및 관련 공기업 사장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투하시켜가면서 노골적으로 장악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MBC 노조는 KBS는 물론, YTN의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수십만의 시민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거리로 뛰쳐나온 장면은 시민들의 연대의식을 의미한다. 박성재 본부장은 그렇듯 같은 위기에 처한 타 방송사 노조와 일부 구성원들에게 '연대'를 이야기했다. 게다가, 시민들이 앞장서서 '촛불'로써 '연대'를 뛰어넘어 앞장선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더불어 쓰고 나왔다는 의미로 봐도 된다.

 

이런 현실에서도, '전화 두 통화'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사조차도 이상한 방식으로 전개하면서 그 명분의 빈곤을 드러낼까? 그럴수록, '촛불'로써 드러난 <브이 포 벤데타>의 메시지는 더욱 확산될텐데, 정부와 수사기관의 이해할 수 없는 대처가 나날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결코 '영화 나부랭이'만이 아님을 알아야 할 텐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위기의 언론독립, #PD수첩, #쇠고기, #광우병,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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