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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Stage 2, 체험 삶의 현장

거리: 36.6km, 해발: 2053m 

 

어제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이런 현상은 3일째까지 이어졌는데 비는 기본이고 눈까지 내렸으니 "여기가 사막 맞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어쨌든 비와 눈 때문에 모든 참가자들이 저체온증이라는 또 다른 복병과 싸움을 하게 됐다. 

 

오늘 송경태님의 도우미는 송기석님이 맡기로 했다. 이미 한국에서 도우미 로테이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상태라 현지에서 당사자들의 몸 상태를 보고 매일의 도우미를 결정한다. 매일 도우미가 바뀌면 상호간 호흡은 약간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또한 도우미 입장에서는 체력적인 소모가 덜해지는 장점이 있다. 그래도 도우미에게 요구되는 의무는 막중하다.

 

먼저 자신은 철저하게 발이 망가질 작정을 해야 한다. 시각 장애인을 인도할 때 도우미는 절대로 좋은 길로 가면 안 된다. 좋은 길은 우선적으로 상대방을 위해서 비워 놓고 앞의 장애물이 있으면 제거 해야 한다. 도우미는 항상 앞장을 서야 하며 계속적으로 주변의 상황과 풍경을 설명해야 하는 수다쟁이가 되야 서로간의 호흡을 맞출 수가 있다.

 

도우미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연기를 하는 연기자가 아니다. 절대로 도우미는 주인공이 아니다. 철저한 자기 희생이 뒤 따라야 하는 그림자다. 어찌 보면 진정으로 그림자가 되어야 빛을 보는 게 도우미인데 가끔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마디 하고 싶다. "정신 차리세요." 

 

 

나는 오늘 자유의 몸이기에 처음부터 달리기로 했다. 강을 따라 구비구비 이어지는 시원한 비포장 길을 달리자니 속이 다 후련해지는 해탈감이 든다. 이쪽 저쪽 코스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스펙터클한 풍경에 도취되어 무아지경 속을 달리는 기분이 든다.

 

분명 산 위를 보면 눈이 쌓여 있는데 온도는 계속해서 더워지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이 따갑다를 지나 뜨거워지고 있다. 분명 어제와는 다른 온도, 분위기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 두 번째까지는 김성관님, 홍현분님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 갔다.

 

역시 두 명의 고수를 따라 가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주위의 배경들이 순간적으로 내 뒤로 지나간다는 속도감은 즐거움을 유발시킨다.

 

 

하류로 내려와서인지 강 폭도 더욱 넓어지고 다리도 철재로 된 현수교가 기본이다. 아무리 철재 다리지만 아래를 내려다 보면 포악하게 흐르는 강물이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다리를 건너 두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니 다른 쪽 강의 상류 방향으로 코스가 변한다. 다시금 산들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그늘 하나 없는 계곡을 가자니 더위로 몸이 화끈 달아 오른다.

 

최근에 이 지역은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습기가 있는 더위를 우리는 만나게 됐다. 보통 사막에서 50도가 넘는 더위에서도 견딜 수 있는 건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낮 기온 40도인데 체감 온도는 50도 이상의 더위로 느껴지고 있다. 첫날부터 탈락자가 나왔는데 오늘도 몇 명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서부터 나머지 9.6km는 전부 걸었다. 뛰고 싶어도 몸이 안 움직인다. 터벅터벅 힘없이 길을 가는데 시차를 두고 일본의 유카코, 재미교포인 그레이스, 이태리의 라우나 등 5명의 여자 참가자들이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면서 지나가 버린다. 정말이다, 사막에 오면 여자들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알 수 있다. 갑자기 여자들이 무서워진다.

 

 

길을 가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주변의 산들과 멀리 보이는 산들의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아무래도 내일이 마운틴 데이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4000m 정도 올라간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한 번에 올라가는 높이가 어느 정도일지 걱정이 된다.

 

철재 현수교를 하나 더 건넌 후 얼마 후 사진작가인 일본의 후지사키와 비디오 팀인 제이슨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만 가면 캠프라는 생각에 힘을 모아서 뛰는데 갑자기 가파른 고개가 나온다. 위에서 북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얼굴이 하나 둘씩 보인다. 고개 위가 마을이자 캠프였다. 기록은 5시간 43분 14초. 막판에 허우적댔지만 양호하다.

 

우리 팀은 마을 족장 집에서 융숭한 대접과 함께 실크로 된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 받았다. 예상치도 못한 대접을 받고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체험을 갖다 보니 모두가 꿈 같다고 한다. 우리는 내일 초 죽음 지옥 코스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안락함에 빠져서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그리고 다음날 죽다 살아났다.

 

덧붙이는 글 | 20007년 6월 17일부터 23일까지 열렸던 고비 사막 마라톤대회 참가기입니다.


태그:#마라톤, #고비사막, #여행, #중국,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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