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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Stage 3 : 'Stairway to Heaven'

거리: 40km, 해발: 3800m 

 

오늘은 사막 레이스에서 롱 데이와 함께 필수적으로 거쳐가야 하는 관문인 마운틴 데이다. 코스 이름은 'Stairway to Heaven'.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 한다. 하지만 수년간 이 바닥에서 굴러본 경험에 비춰보면 마운틴 데이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ll)'이 될 가능성이 99.9% 이상이다. 

 

예상치 못했던 현지인 집에서의 민박 덕분인지 새벽에 잠을 깼는데도 개운함이 넘친다. 지난밤 집주인의 환대에 감사하고자 중국돈 100위안을 자고 있는 주인장 머리맡에 살며시 포개놓고 집을 나선다. 

 

새벽의 어둠이 가시기도 전인 오전 8시경 한 무리의 군단이 또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이기에 순박한 이곳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쉽기만 하다. 몇몇 동네 아이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말도 안 통하는, 서로가 낯선 이방인이지만 순수함이 살아 있기에 통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가야 할 거리는 40km, 올라야 할 높이는 3800m다. 현재의 고도를 따졌을 때 두 번째 체크 포인트까지 2000m 높이를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보통 3500m를 넘으면 고산병이 온다고 한다. 과반수 이상의 한국 참가자들은 2000m 이상을 올라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어젯밤 최명재님에게 고산병에 대한 이야기와 예방약을 지급 받았다. 산을 오르는 코스이기에 시각장애인 송경태님의 도우미는 산행 경험이 풍부한 박미란님이 맡기로 했다. 

 

 

초반 코스는 계곡을 타고 가는 길인데, 세상에 처음부터 오르막에 온통 작고 커다란 바위 지대의 연속이다. '겹게 길을 가며 멀쩡한 사람도 힘든데 시각장애인 송경태님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쓰리쿠션으로 돌아간다. 그나마 코스 주변의 경치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하기에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나의 상태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진을 찍느라 뒤로 처져있다가 첫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선수들이 널브러져 있다. 무슨 낙오된 패잔병 보호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벌써부터 고산을 오르는 고통이 우리들의 신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닥터 브라이언이 고산에 적응할 겸 쉬었다가 가라고 했다. 그래도 아직은 호흡에 문제가 없고 힘이 넘치기에 물만 보충하고 떠난다고 하니, 산을 오르면서 계속해서 물을 많이 먹으라며 신신 당부를 했다. 몇 년째 이 대륙 저 대륙을 같이 다니다 보니 동지애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았다. 고맙다 닥터 브라이언. 

 

체크포인트를 지나 얼마간은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이다. 하지만 곧바로 본격적인 급경사가 시작되었다. 서서히 호흡도 힘들어지고 한발 한발 내딛기 자체가 무리다 싶을 정도로 몸에 변화가 생겼다. 진짜 고산을 오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만나는 선수들을 봐도 제대로 호흡을 하는 사람이 드물고 전진 속도가 거북이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평상시 같으면 서로 농담이라도 할 텐데 얼굴 보고 웃기도 힘들다. 2~3m정도 가서 가뿐 숨을 몰아 쉬며 한번 쉬고, 또 다시 조금 가서 또 쉬고…. 그 중 제일 힘든 것은 계속해서 구역질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머리는 안 아팠지만 신물이 넘어오는 괴로움은 그 다음날까지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인지 한국 참가자 중에서 호흡이 제일 짧은 홍현분님이 다시금 걱정됐다.

 

 

 

중간에 최명재님을 만나 지루하고 힘든 길을 동행했다. "헉헉" 한발 한 발 힘들게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갑자기 비와 함께 싸래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급히 방풍 재킷을 꺼내 입고 땀이 식을까봐 계속 전진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앞 그룹에서 '정상'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3800m 정상에 오른 것 이다. 시간을 보니 20km를 올라오는 데 6시간 30분 정도가 걸렸고, 나의 몸은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처럼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았다. 그래도 인체의 신비는 놀랍다. 약간의 휴식과 음식 보충, 즐거운 사진 찍기를 마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났다.

 

나머지 남은 거리는 혼자서 달리고 걷기를 반복하는데 엄청난 양의 폭우가 내린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후미 그룹은 산 정산에서 함박눈을 맞았다고 한다. 함박눈. 여기 사막 맞아?

 

 

오늘만 놓고 보면 어느 대회 때보다 어려운 하루였지만 높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험하고 긴 하루의 여정이 아름다운 도전으로 느껴졌다. 기묘한 날씨로 인해 많은 참가자들이 저체온증으로 고생을 했다.

 

우리 텐트에서는 김성관님이 심각한데 침낭을 두 개나 덮어도 좀처럼 회복이 안되고 있다. 점점 사막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과 크고 작은 부상의 발생.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야 하는 외롭고 긴 싸움의 시간이 온 것 같다.

 

오늘의 기록은 10시간 29분 40초. 롱 데이 만큼 기나긴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20007년 6월 17일부터 23일까지 열렸던 고비 사막 마라톤대회 참가기입니다.


태그:#마라톤, #고비사막, #여행, #사막,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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