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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1일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하여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남북 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어야 한다, 호혜의 정신에 기초해 '선언의 시대'를 넘어 '실천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초 이 대통령이 6·15와 10·4 선언에 대한 '존중'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일부 언론들의 예상 보도가 있었지만, 이 단어는 없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게 6·15와 10·4 선언의 계승 의지를 밝히라면서 현재 남북 당국간 대화를 끊은 상태다.

 

통일부 당국자들의 입에서 이날 이 대통령의 입장과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 나온 적은 있다. 그러나 대통령 입에서 직접 6·15와 10·4를 언급하면서 전면적인 남북대화 재개를 강조한 것은 눈에 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게 이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이다. 이 대통령은 곤경에 처하면 '반성'을 말하다가 어려움에서 조금 벗어나면 표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현재 통미봉남(북한이 미국과만 대화하고 남한을 배제하는 정책)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전면 중단되었고 이대로 가면 재개될 기미가 없다. 이런 어려움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해 이번 제안을 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 대통령의 이날 국회 연설 내용 가운데는 "신뢰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큰 자산이다, 신뢰가 없다면 경제도 정치도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들어있는데 이는 바로 그 자신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이제까지 나온 발언 가운데 가장 전향적"

 

이날 이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존중'이라는 단어가 빠져 파격성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나온 발언 가운데 가장 전향적이라며 긍정 평가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6·15와 10·4를 계승하겠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 북한을 대화 자리에 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 대통령이 더 이상 6·15와 10·4 선언을 무시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라며 "이 대통령의 보수적인 지지기반을 감안할 때 이 정도 발언이라면 북한도 비난할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남측과의 접촉 등 조금 더 기다리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6·15나 10·4를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고 최고위급에서 남북대화의 전면 재개를 말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통상 8·15 때 대북 특별선언이 많이 나왔는데 오늘 대통령의 언급도 8·15를 위한 징검다리용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즉 지금 바로 기존의 대북정책에서 확 바꿀 수는 없으니 오늘은 이 정도로 방향을 어느 정도 틀고, 8·15 때 더 달라진 대북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오늘 대통령의 언급은 이제까지 나온 대북정책 가운데 가장 전향적"이라며 "그러나 진정성이 문제다,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대화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바로 이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하고 나올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즉 대북 식량 지원)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6·15는 남북 공존을 말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중시하는 북한 인권 제기 문제와는 상충되는 면이 있다"며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렇게 비교적 긍정적으로 본 견해들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었다.

 

"발언 시기 늦어... 북한 움직이기 쉽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6·15와 10·4 선언에 집중하고 있는데 오늘 이 대통령은 7·4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등을 모두 나열했다"며 "이렇게 섞으면 물타기로 보인다, 현 정부가 보수층을 의식해서 그렇겠지만 그러면 북한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아직도 이명박 정부가 6·15와 10·4 선언을 이행할지 안할지 입장을 못 정한 것 같다"며 "그러나 보수층 생각대로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기에는 국제 정세와 시간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예 이 대통령의 이날 제안을 '뒷북치기'로 평가 절하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오늘 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4월 정도에 나왔어야 했다"며 "북핵 협상이 진전된 지금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속보이는 뒷북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북핵 협상 진전 상황을 볼 때 오늘 제안은 너무 소극적이다, 지금은 명확하게 6·15와 10·4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밝혀야 한다"며 "남북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에서 오늘 정도의 표현으로 남북 대화가 재개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권에서 한 협의를 무시해서 남북 당국간 대화가 이미 완전히 중단된 상태인데, 이제와서 그 이행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고 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은 오늘 MB의 발언을 보고 '남쪽이 급하기는 급했구나, 통미봉남을 더 강화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보수층은 보수층대로 반발하고 북한은 시큰둥하고 MB정권의 대북 정책이 더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태그:#이명박,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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