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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좀 너른 편이고 농장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땅이다. 그 땅의 절반에는 잔디를 깔고 꽃길을 만들고 남은 절반에는 상추와 고추 등 갖가지 채소는 기본이고 고구마와 야콘, 감자, 토란, 옥수수… 갖가지 작물을 고루고루 심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식탁은 거의 우리가 심은 것으로 채웠다. 상추와 부추, 쑥갓, 케일, 비트, 열무, 들깨 잎을 뜯고 주렁주렁 열린 고추와 가지, 오이, 토마토를 따면 우리 식탁은 문자 그대로 '참살이' 세상이 된다. 거기에 간식으로 먹는 우리 감자 맛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많든 적든 농사란 갖가지 쉽지 않은 일이다. 가난한 집에도 밥해먹을 솥단지는 갖추어야 하듯 최소한의 농기구를 갖추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시간에 맞추어 죽이라도 먹듯이 때맞춰 심고, 김매고, 수확하는 일도 해야 한다. 겨울에는 비닐하우스에 채소나 심어먹으니 힘들 것 없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는 쉼 없이 밭을 헤매는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뙤약볕 속에서 밭을 헤매는 ‘노동’이 마지못한 강제였다면 또 나를 위하고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이 없었다면 벌써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농민이었던 선조들의 유전자가 남은 탓인지 농사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던 점도 농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고구마와 야콘이 자라는 밭 겨울 길을 낸 것이 엊그제인데 다시 풀은 가득하다
고구마와 야콘이 자라는 밭겨울 길을 낸 것이 엊그제인데 다시 풀은 가득하다 ⓒ 홍광석

사실 농사를 짓다보면 작은 걱정은 그치지 않는다. 가물어도 혹은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요, 바람이 불면 열매가 떨어지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농사가 안될지라도 서운한 생각을 갖지 않겠다고 작정했음에도 열무 잎에 구멍을 뚫는 벌레들을 보고, 탄저병에 말라가는 고추를 보면 농약통을 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도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걱정보다 여름 풀만큼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연농법을 말하고 풀과 더불어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잔디밭을 차지하고, 애써 가꾼 철쭉 묘목을 덮어버린 풀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병충해가 오면 우리가 심은 작물을 응원하고 벌레가 생기면 벌레와 나누어먹는다는 생각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풀 속에 갇혀 누렇게 말라가는 묘목에게는 우리의 응원이 아무런 힘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잔디밭 일부 늘려 심은 잔디밭은 벌써 두번이나 사람을 사서 맸음에도 풀과 섞여 있다. 잔디가 자라면 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잔디밭 일부늘려 심은 잔디밭은 벌써 두번이나 사람을 사서 맸음에도 풀과 섞여 있다. 잔디가 자라면 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 홍광석

올해 잔디밭을 더 넓히고 더구나 철쭉 묘목을 밭에 옮겨놓고 보니 작년에 못지않은 일거리가 생겼다. 이랑 사이에서 자라는 풀은 예초기로 베어내면 길이 트이지만 잔디밭이나 철쭉 묘목을 심어놓은 밭은 그럴 수 없다. 특히 아직 묘목이라 며칠만 돌보지 않으면 훌쩍 키를 넘기고 마는 풀에 갇혀 누렇게 마르는 철쭉 묘목이 심어진 밭은 풀은 벨 수도 뜯을 수도 없다. 호미를 들고 아주 조심스럽게 일일이 풀 하나 하나를 뽑아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종종 어린 철쭉 묘목의 뿌리를 감고 있던 풀이 아직 뿌리가 깊지 않은 철쭉의 뿌리를 달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풀이 악착스럽게 저만 죽을 수 없다고 버티는 것 같아 정말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하긴 선한 일을 권하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자기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음모와 배신과 심지어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마당에 오직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는 풀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삽목을 하고, 또 옮겨 심은 일을 후회하면서 뽑힌 철쭉을 다독이며 다시 자리를 잡아 심으면서 어서 자라라고 힘을 보탠다.

요즘 해가 길어져 아내와 나는 오후에는 밭에 나가 풀을 뽑는다. 풀이 작물의 키를 넘지 않는 고추, 가지 밭은 그냥 지나치고, 수박 참외밭에서 참외가 다칠세라 손으로 풀을 뜯어낸다. 그리고 철쭉 밭에서는 풀과 씨름을 한다. 어쩌면 누구 말대로 풀과의 전쟁인지도 모른다.

나무와 잔디와 농작물을 가꾸는 일은 희망을 키우는 일이다. 감자를 캐고 자두를 따는 감동이 없다면 또 가을날 야콘과 고구마를 캐고 고추가 붉게 익을 것이라는 기다림이 없다면 그리고 철쭉이 꽃을 피우고 시원한 잔디밭을 산책하는 꿈이 없다면 뙤약볕에 엎드려 허리 아픈 고통을 참으며 풀을 뽑지 않을 것이다.

마을 노인들은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하지만 화학 비료마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농약을 뿌리는 일은 감동 솟아나는 요술의 땅, 새싹과 꽃과 열매가 주는 기쁨의 땅을 버리는 죄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그곳에 집을 못 짓고 있다. 출퇴근하는 농부인 셈이다. 앞으로 그곳에 살게 되면 지금보다는 일이 분산되고 그러다보면 쉬워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최대한 마음 비우려는 노력을 하면서 쉬엄쉬엄 풀과 함께 살아야 할 것 같다.

토란밭 토란과 키재기를 하려듯 풀은 기세졸게 자란다. 왼쪽 고추는 풀에서 벗어났다.
토란밭토란과 키재기를 하려듯 풀은 기세졸게 자란다. 왼쪽 고추는 풀에서 벗어났다. ⓒ 홍광석

지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는 풀, 병도 없이 튼튼하게 자라는 풀일지라도 한 계절이 가면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은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에 품었던 미움과 원망을 솎아 내는 심정으로 어린 묘목을 괴롭히는 풀만 뽑는다. 지난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저지른 실수에 대한 미안함을 되새기면서 마음의 짐을 부린다는 생각으로 풀을 뽑는다. 밭에 마음을 내려놓고 옷을 쥐어짜도록 온 몸에 땀을 흘린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각자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자라난 수많은 망상의 풀을 뽑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덧붙이는 글 | 아마 촛불 집회만 아니었다면 지나간 봄과 여름에 감자를 캔 이야기며 자두를 따고 채소들이 자라는 과정을 몇 번쯤 글로 썼을 것이다. 촛불을 든 시민들과 다친 시민들에게 미안했고 그렇게 만든 이명박 정부에 대항 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에 차마 사는 이야기를 올릴 수 없었다. 아직도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불안한 소강국면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주변의 이야기를 소감처럼 간단히 정리해 본다.



#김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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