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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필자는 방송의 논리를 잘 모른다는 것을 밝힌다. 이 글은 전적으로 방송에서 표출된 김구라의 발언만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방송의 '발언'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문제의 글일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버라이어티 추세가 바로 이 '발언'의 난장판을 그 대세로 밀어붙이고 있음은 방송계 스스로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내가 방송의 언어를 'REAL'스럽게 듣는것을 방송 자체가 원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김구라의 문제를 확대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그 원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방송에 있다. 난 그런 프로를 즐겨 본 죄밖에 없다.

독설은 '논리성'의 문제가 아니다.

버라이어티의 트렌드 변화에 따른 최근 김구라의 약진은 아주 의미있는 일이다. 그의 과거발언을 추궁하기 이전에 그러한 과거사의 족쇄에도 불구하고 '유쾌, 통쾌 독설가'의 입지로 방송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그의 능력이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의 논리를 볼 때 그러한 캐릭터를 시청자가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열띤 호응을 해 주기에 그가 계속 등장하는것 아니겠는가?

  버라이어티 트렌드에 따른 최근 김구라의 약진은 대단하다.
▲ 김구라 버라이어티 트렌드에 따른 최근 김구라의 약진은 대단하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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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트렌드 속에서 김구라는 '독설가'라는 타이틀을 받았다. 할 말도 제대로 하지않는 언론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판국에 개그맨출신 방송인의 속시원한 말에 대중들은 많은 찬사를 아마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찬사가 그의 '논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김구라의 독설을 '지금 현재' 좋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지 그의 독설이 탄생되는 논리에 박수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김구라가 '비논리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100분 토론>이 아닌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시청자는 논리 이전의 감성적인 받아들임에 먼저 반응하게 마련이다. (물론 100분 토론도 충분히 감성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독설이란 무엇인가? 독설은 여러 사전적 정의를 떠나 '뭔가 속시원하게 똑부러지게 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게다. 여기서 속시원하고 똑부러지는 것은 지극히 '듣는자의 감성'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감성은 특정한 상황에 따라서 달리 작동된다. 물론 상당부분 논리적인 전개에 감성이 더 뭉클해지겠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변수는 아니다.

김구라의 과거 (일부 연예인들에 대한 근거없는) 발언들이 지금도 일부사람의 '그럴수 있다~'는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그가 지금부터 '무진장 가난했기에' 그럴수도 있다는 일종의 '생계형 폭언'에 대한 동정표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누군가가 부자인 특정 연예인을 까는데 분명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약간 속은 시원한~' 그런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이 친구! 말 하나는 시원하게 하네~!". 독설가의 탄생은 이렇게 '말'에 대한 감성의 반응이다.

망언의 탄생 : 독설을 유지하기 위한 집착의 과오

독설가는 특정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반응이다. 다만 트렌드에 따라 그러한 개인이 엄청 많을 뿐이다. 즉 독설가는 '법칙'을 설명하는것이 아니다. 법칙은 탄탄한 논리에 기반한 일종의 공식이다. 흔히들 이것을 '진실'이라고 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때 독설가는 사실 한때의 유행을 주도하는 인기가수의 수준이다. 이 말은 2008년 최고히트 가수가 "내 음반이 가요계의 정석이요~"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기가 '법칙'이 될 순 없는 것이다. 물론 인기있는자가 탄탄한 법칙을 구축하고 있다면 대중은 '더' 기뻐하긴 할것이다.

문제는 독설가가 자신의 발언을 유도시킨 사고의 체계를 당연히 논리적인 무엇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즉 독설이 통했다는 것은 '특정한 발언'과 '특별한 환경'의 결합이 아주 우연적으로 긍정적임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그 발언을 '보편적 진리'와의 결합으로 오인하게 될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설가는 평소의 발언 '테크닉'을 유지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진리'에 억지로 재구조화할려는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논리적인 반론에 직면했을때, 그리고 그것이 감성적인 독설을 충분히 반증할 이유가 될때, 독설가는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지 않는다. 평소의 습관(?)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몇몇의 개인들만이 인정할 사례를 보편적인 '구조의 문제'인양 제기하기에 이른다. 그때부터 그의 독설은 '망언'이 된다. 역설적이지만 대중은 독설가를 탄생시키면서 그에게 망언을 할 수 있는 심리적인 상황까지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김구라의 거침없는 언변! 하지만 몇가지 망언들

예를 들어서 "교과서 좌편향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자체는 망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발언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독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좌편향적이지 않다. 그것을 좌파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다"라는 반론을 "친미반북의 단체들이~ "라는 피드백으로 나아간다면 이것은 분명 망언이다. 망언은 '감정적인 독설'을 논리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어거지에서 나타난다.

김구라는 최근 <명랑히어로>에서 거침없는 독설속에서 망언으로 평가받을 발언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몇 주전 방송에서 아들 동현이와 4만원짜리 뷔페를 하면서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이런것도 잘 먹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방송국 PD들 다 연고대 나온 사람들이다"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였다. 그리고 어제 방송에서(7월 12일) 김구라는 신해철과의 논쟁중에 남성의 피해의식을 필요이상으로 강조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의 고충을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감성의 호소는 지나칠 정도였다.

 7월 12일 방송 이후 김구라 의견에 대한 찬반론이 팽팽했다
▲ <명랑히어로> 시청자게시판 7월 12일 방송 이후 김구라 의견에 대한 찬반론이 팽팽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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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견해이지만) 김구라의 발언은 망언이다. 이것은 그의 발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니다. 물론 그의 지나친 남성중심성 자체에 이미 흥분한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의 발언에 대한 시청자의 감성적인 반응이다. 김구라의 발언은 또 다른 곳에서는 독설로 평가받을수도 있다. 일종의 '의견차이'일수 있다.

하지만 의견차이는 반응하는 시청자들의 문제이다.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김구라가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한 과정, 정확히 말해 독설가로의 입지를 지속시키고자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이것은 분명 '망언'을 탄생하게 하는 메커니즘의 답습이다. 그만큼 최근 그의 모습은 독설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무리수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위기를 '특정한 사례'를 등장시켜 무마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그 사례들의 '구조적인 맥락'을 꼭 보자는 식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가 제시하는 사례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사례다. 단지 그러한 개인들과 그러한 공간에서 환영받을수도 있는 그런 사례들 말이다.

일단 4만원 뷔페 사례를 보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보편적인 법칙으로 강조하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사회의 구조는 돈을 벌 수 있는 방안으로서 "학력"을 한개의 범주로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돈을 많이 벌 '확률'은 높다. 하지만 구조의 문제는 확률의 다툼이 아니다.

경제학 개론서에 '자본이 소유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즉 동현이게는 충분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코 합리적인 경제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은 여러 변수들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또 다른 변수일 수 있지만 그것이 법칙의 단일변수임은 분명 아니다. 즉 김구라의 경제관은 우리의 현실에서 지극히 당연한 아버지로서의 바람일수 있겠지만 그 바람이 '학력과 경제'의 상관관계를 너무나 당연하게 어필해도 되는 변수는 아닌 것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어필이 바로 망언이다.

특히 "PD가 연고생 출신이 태반이라는 것"이 어떻게 자본과 학력의 합리성을 반증하는가? 이런 것인가? <PD = 괜찮은 연봉 = 연고대 졸업자 많음 = 연고대를 가야지 좋은 연봉을 받는다 = 돈 벌려면 공부 열심히 해라 >.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망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국의 이상야릇한 현실이지 구조적으로 바람직한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학력과 경제구조를 완전히 부정함은 아니다. 다만 학력이란 변수가 다른 변수들을 아무 근거없이 제압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더 이상 '아버지'라는 감성에 호소하지 않기를...

7월 12일 <명랑히어로>에서 김구라 발언은 상당부분 신해철에 의해서 지적되었고 게시판에서도 성토의 글이 꽤 있다. 물론 마초적 발언에 대한 반응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는것처럼 이 발언 자체를 망언이라 규정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아버지'라는 허울아래 노동자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종의 대세론이기도 하다. 이 말은 그 만큼 남자들이 현실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십년을 고생하신 이 땅의 아버지에게 김구라의 발언은 충분히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아버지'라는 정서적 공명이 독설을 증명하는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신해철이 "일단 같은 시각으로 여성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논리적인 반론에 대한 김구라의 "아니~ 그래도 이 땅의 가장은 힘들다니까요~"라는 반응은 문제이다.

왜냐하면 힘든 사람들 리스트에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등재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이 랭킹까지는 결정할 순 없다. 아버지에게 접근하는 시각을 그대로 여성이라는 범주에 옮기기만 하여도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문제는 속속 보여짐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방송작가들 대부분이 여자"라는 발언은 여자의 차별이 심각한것이 아님을 반증하고자 하는 김구라의 사례제시였다. 김구라의 상황인식이 얼마나 단편적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발언이다. 물론 방송계라는 작은 공간만을 볼 때, 또한 김구라가 개인적으로 남자작가를 추천하려다가 안 되었을 그 경우에만 볼때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아주 대단함을 이해할 수 있다. 또 그러한 관련자들에게는 '속 시원한' 독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자신의 독설을 증명하고자 하니까 이것이 망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방송작가에 여성이 집중되는 것 자체가 '방송작가'의 구조적 특징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PD보다 연봉이 적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PD처럼 MBC에 직접적으로 채용되어 있지 않는 프리랜서가 많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평균근속년수가 터무니없이 짧을 것이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몰리는 직종일수도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기준으로 작가를 대해서는 안된다, 충분한 대우가 부족하다는 논의를 필연적으로 동반해야 한다.

결국 겸손만이 독설을 유지시켜 줄 것이다.

김구라의 독설은 매우 유쾌할때가 많다. 특정 연예인에 대한 비난이어도 그것을 시원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논리적인것을 떠나 감성을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설은 지극히 감성에 의존한 것, 즉 감성의 반론에 대해서 한없이 겸손할줄 알아야 한다. 감성으로 출발한 독설이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지난친 개인의 사례를 들먹일때 그것은 망언이 된다. 독설가일수록 겸손하길 바란다. 그게 가장 멋진 독설가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http://blog.daum.net/och7896



태그:#김구라, #명랑히어로, #독설,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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