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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고는 청와대가 이를 인지한 지 무려 2시간이 지나서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 2시간 동안 청와대에 접수된 보고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손에 머물러 있었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피격 당하는 중대한 안보사안이 발생해도 외교안보수석실이나 위기정보상황실이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없도록 청와대 시스템이 짜여 있다는 사실이다.

 

외교안보 분야 경험이 전무한 정 대통령 실장은 보고를 받고도 신속한 판단을 못해 초기 대응을 그르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참모들로부터 신속히 보좌를 받지 못하는 이같은 시스템은 앞으로 유사한 위기발생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비가 시급하다.

 

청와대, '늑장보고' 이틀 만에 인정..."초기 상황판단 문제 있었다"

 

북측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된 시각은 11일 오전 4시 50분이다.

 

통일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시각은 오전 11시 30분, 청와대 위기정보상황실이 금강산 총격 사건을 인지하고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한 시각은 오전 11시 40분이다. 10분 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다시 정정길 실장에게 추가보고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로부터 약 2시간 뒤 국회 개원연설을 위해 청와대를 출발하기 직전에야 첫 보고를 받았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3일 이같은 늑장보고와 관련해 "청와대 내부에서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늦어진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당시 초기 상황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이틀전 사건 당일에 이 대통령에게 보고가 지연된 데 대해 "종합적인 상황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12일 관계장관회의에서 위기대응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뒤늦게 생각을 바꾼 것이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이번 사건이 청와대 관련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인 나에게 보고되는 데 무려 두 시간 이상이 걸린 것은 정부 위기대응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며 "위기대응시스템의 개선 방안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중요 사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신속히 1보 보고를 한 뒤에 관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시스템 차원의 대응이 부족했던 것은 솔직히 인정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장 외에는 대통령에게 직보 못한다?

 

첫 보고를 접수한 청와대 위기정보상황실은 참여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 소속된 위기관리센터에 해당한다.

 

참여정부의 경우 위기관리센터에 접수된 정보는 통일외교안보실장을 통해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속실로 1보 수직보고를 한 뒤, 청와대 비서설장이나 정책실장 등에게 수평보고를 하는 체계로 운영됐다. 통일부나 국정원 역시 통일외교안보실장을 거쳐 대통령에게 수직보고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NSC를 폐지한 뒤 현 청와대의 위기정보상황실은1급에서 2급 선임행정관으로 위상이 격하되면서 대통령실장 직속으로 재편됐다. 따라서 위기정보상황실 팀장은 1보 보고를 외교안보수석이나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실장에게 하도록 돼있다.

 

또 현 정권이 취임하면서 청와대가 '1실장 7수석 체제'로 개편된 뒤, 기존의 장관급이었던 통일외교안보실장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바뀌어 대통령실장 밑으로 들어갔다.

 

이 때문에 김성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금강산 총격 사망 사실을 인지하고도 대통령이 아닌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먼저 1보 보고를 한 것이다.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뒤, 정 실장이 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기까지 사고 소식을 직보한 청와대 참모는 아무도 없었다.

 

참여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장은 통일·외교·안보를 비롯해 전문 분야에 대한 상황판단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중요한 사안이 벌어졌을 경우 빠른 판단능력과 정확한 감각이 있는 장관급의 전문가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가 남북관계는 물론 외교안보 분야의 비중 등을 감안해 대통령비서실장과 동급으로 통일외교안보실장을 따로 뒀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들 부문을 모두 대통령실장 산하로 개편해 모든 정보를 집중시킨 것이 결국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사건으로 '국민과의 소통' 뿐만 아니라 '청와대 내부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셈이다.


태그:#금강산?피격,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청와대 위기대응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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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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