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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에 결혼해 50세에 미망인이 될 때까지 직업을 가져 본 적 없는 할머니가 있다. 미쓰다 후사코. 올해 96세의 정정한 이 일본인 할머니는 공무원이던 남편과 사별한 뒤 남편의 상사가 소개해 준 사무직 직원으로 15년간, 65세까지 일했다. 그 다음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88세에 처음 출간한 <50세에 발견한 쿨한 인생>이후 94세에 쓴 <60세부터의 심플 만족생활>까지 모두 세 권의 책을 썼다.

 96세 할머니 미쓰다 후사코가 들려주는 독신 생활 예찬을 담은 책.
 96세 할머니 미쓰다 후사코가 들려주는 독신 생활 예찬을 담은 책.
ⓒ 기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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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후사코가 88세에 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남편과 사별한 후 자기만의 인생을 옹골차게 살아온 할머니의 독립정신과 노하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성격 때문인지, 출판사의 스타일 때문인지 책은 군더더기나 낭비 없이 할 말만 딱 하는 합리적인 형식이다.

사진이나 일러스트 하나 없이 내용만 담고 있는데, 1장부터 9장,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목차만 봐도 이 할머니가 '한성격' 하시는 분임을 눈치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제목들의 연속이다.

- 노혼은 싫다
- 모아둔 돈도 없지만, 소 한 마리를 먹을 것도 아니고 
- 마지막은 자연사로 
- 사위와 같은 욕조를 사용하기는 싫다 
- 신문 투고 경력 50년 
- 노인이여, 거리로 나가자 
- 돈이 드는 교제는 모두 그만둔다!

"노혼은 싫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할머니의 생각은 이렇다. 50세 이후의 결혼은 자칫 잘못하면 배우자의 뒷바라지나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대도 늙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여러가지로 보살펴 줘야 하는 존재이기에 부부 간에도 아내는 두 사람분의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 한 마리 운운하는 대목은 집과 돈에 관한 이야기다. 늙을수록 노후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견에 할머니는 반대한다. 여자는 그저 편안히 쉴 수 있는 집 한 칸만 있으면 그리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는 것. 많이 먹지 않고, 소식하면 건강에도 좋고,경제적인 압박감도 덜 느끼게 된다. 그러니 소 한 마리씩 먹을 게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혼자 살아도 시간표대로 철저하게

남편이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외동딸마저 결혼을 하자, 할머니는 '독거노인'이 된다. 한 시간 거리(할머니 표현을 빌리면, '스프가 먹기 좋게 식는 거리'란다)에 사는 딸 내외가 함께 살자고 해도, 사위와 같은 욕조를 쓰기 싫다며 거절한다.

혼자 살지만 5시 기상, 9시 취침은 거의 지키는 편이며, 건강을 위해 매일 와인, 칼피스, 사이다를 1:1:1의 비율로 섞어 마신다. 게다가 청결한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목욕을 하고, 간단한 화장을 해서 언제라도 외출을 할 수 있게 단정하게 차려입어야 비로소 하루의 시작이 완성된다. 그런 철저한 면이 있기에 혼자 살아도 나태하거나 시시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멸사봉공하는 대신 '오직 홀로' 지내면서 많아진 시간을 할머니는 공부로 채운다. 긴 인생을 지루하지 않게 살기 위해 54권짜리 <겐지 이야기>를 15년 만에 원문으로 독파했다고 한다. 15년간 딱 두 번 결석한 것 외에는 빠짐없이 출석하는 열혈 학생이었다. 고전 읽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자 이백의 시에 흠뻑 빠졌고, 중국의 <장자>에 몰두하게 됐다.

할머니는 늙으면 산이나 리조트, 실버하우스 대신 도시 한가운데 살면서 자주 거리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노인이야말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번화한 거리로 나가서 활기를 흡수하자는 얘기다. 자극을 받아야 활기차게 살 수 있고, 도심 한복판에 살아야 문화센터에 가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올해 96세 할머니는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즐기라면서, 어린이처럼 살기를 권한다.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자는 것. 매일매일 즐거운 일상을 만들어가자는 것. 그리고 사소한 일에 화내지 말고 늘 내일을 기대하며 살자는 것이다.

삐딱하게 보면 까칠하고 완고한 할머니의 이기적인 일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독거노인'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인의 노하우에 귀를 기울여보자. 혼자 사는 인생의 후반전이 이렇게 깔끔하고 명랑할 수 있다면, 그 곁에 둘이건, 셋이건 누군가 더 있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단련된 자기 자신의 시각과 세계가 있다면 옆지기가 누구이든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내공이 갖춰지지 않았을까? 젊어서부터 노후자금 모으느라 돈에 치이는 생활에 함몰되지 말고, 큰 돈 없이도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는 할머니의 지혜를 배워보자.


50세에 발견한 쿨한 인생

미쓰다 후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기파랑(기파랑에크리)(2008)


태그:#독거노인, #인생, #후반전, #할머니, #노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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