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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친구가 삼양 바닷가에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대에 시작한 방황을 좀체 끝내지 못해 오랜 기간 가족과 친구들에게 근심을 안겨줬던 친구다. 이제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던 삶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모양이다.

친구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가는 길이다.
▲ 삼양 해안도로 친구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가는 길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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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답답한 일이 생겨서 술 한 잔 생각나면 부담 없이 전화를 걸어오던 친구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음식점을 개업한다는 소식은 쑥스러웠는지 직접 전하지 않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다.

새로 시작한 음식점(이름이 ‘삼양정’이다)은 ‘서흘촌’ 해안에 있다고 했다. 삼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이므로 자기 마을을 부를 때는 옛 지명인 ‘서흘촌’이라 부른다. ‘서흘촌’은 삼양에 최초로 사람이 터 잡고 살기 시작한 삼양1동의 옛 지명이다.

식사 도중 창으로 삼양 바닷가와 그 건너 편에  있는 별도봉을 내다 보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바위 위에 새 한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오래도록 날아가지 않았다.
▲ 별도봉 식사 도중 창으로 삼양 바닷가와 그 건너 편에 있는 별도봉을 내다 보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바위 위에 새 한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오래도록 날아가지 않았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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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아내와 함께 친구가 개업했다는 음식점을 찾았다. 음식점 마당에는 철재 기둥에 비닐로 지붕을 덮어 만든 야외 카페가 지어져 있는데, 전망이 좋아 그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창문으로 맑고 잔잔한 바다와 그 건너 화북동 서쪽 끝에 있는 별도봉이 평화롭게 다가왔다. 

식사 후 삼양정의 동쪽에 있는 동카름성창을 둘러보았다. 하늘이 맑고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했던지라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지 어선 한 척이 급히 포구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과거 문서에는 '소흘포'라 기록되어 있다.
▲ 동카름성창 과거 문서에는 '소흘포'라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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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는 해저에 바위가 많다. 그래서 조선시대 이 일대를 답사했던 이증(李增)은 소흘포(所訖浦)에 대해 “어인(漁人)들은 밀물을 타고 와 소정(小艇)을 붙이나 타국 사람들은 쉽사리 배를 붙일 곳이 못된다”고 기록했다. 

동카름성창의 서쪽에는 앞개성창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포구가 있다. 앞개성창 안에는 ‘엉덕물’, ‘큰물’, ‘서쪽물’ 등에서 사철 담수가 풍부하게 솟아오른다. 포구의 진입로에는 담수와 해수가 교차하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모여든다.

제주는 강이 없어서 물이 귀한 섬인데, 삼양에는 여러 곳에서 연중 담수가 솟아난다. 삼양 주민들이 최근에는 이 샘물을 그냥 바다로 흘러 보내지 말고 물줄기를 돌려서 관광 상품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농부들이 샘물에서 채소를 씻고 있었고,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잠시 차를 세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앞개성창 농부들이 샘물에서 채소를 씻고 있었고,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잠시 차를 세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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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구의 앞에는 수면 위로 가끔 머리를 드러내는 수중암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배가 포구로 드나들기 위해서는 이 암초들을 피해야한다. 포구의 진입로가 서쪽을 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앞개성창은 1924년에 한차례 개수되었는데, 포구 입구에는 이 일을 기념하여 세운 개수기념비가 남아있다. 개수 이전에는 썰물에 포구가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개수 후에 포구가 확장되어 새로 생긴 바깥 칸에는 썰물에도 해수가 남아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동카름성창과 앞개성창 사이에 ‘고도리원’이라고 불리던 ‘원’이 있었다. ‘원’이란 바위와 돌을 이용해서 둥글게 낮은 성을 쌓아서 썰물에 미처 빠져나기지 못해 원 안에 갇힌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시설을 말한다. 고도리원은 소실되어 지금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고도리원이 있던 근처 바닷가에는 고동이 무리를 지어 서식하고 있었다.

바다에 서식하는 고동을 통틀어 제주방언으로 보말이라 한다. 각시고동은 그 중 한가지다. 과거 고도리원이 있었던 자리에 고동 무리가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 각시고동 바다에 서식하는 고동을 통틀어 제주방언으로 보말이라 한다. 각시고동은 그 중 한가지다. 과거 고도리원이 있었던 자리에 고동 무리가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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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고동 잡는 일에 정신이 팔렸다. 30분 정도 지나니 잡은 고동이 국수그릇에 가득 찼다. 아내 얼굴에 기쁨이 넘쳐난다. 마을탐방을 함께 나가면 아내는 늘 나와는 다른 기쁨을 추구한다.

삼양에는 삼양1동에 있는 동카름성창과 앞개성창 외에도 ‘벌랑’(삼양3동) 바다에 ‘검은여개’라는 포구가 있다. 이 포구의 안쪽도 수심이 낮아서 썰물에는 배를 댈 수가 없다. 그래서 썰물에는 바깥쪽에 배를 붙여둔다.

벌랑(삼양3동)에 있는 포구다. 포구로 가는 길가에 정자가 세워져 있어서 잠시 여름 볕을 피할 수 있었다.
▲ 검은여개 벌랑(삼양3동)에 있는 포구다. 포구로 가는 길가에 정자가 세워져 있어서 잠시 여름 볕을 피할 수 있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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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여개 포구로 가는 길가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정자에 앉으니 뜨거운 여름 볕을 잠시 피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이 마을 청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드럼통에 숯불을 피워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었다. 이 청년들의 자유로움에 대해 잠시 부러워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앞개성창과 검은여개 사이에는 검은 모래로 유명한 삼양해수욕장이 있다. 삼양해수욕장의 모래는 걸을 때 아프지 않고 느낌이 부드러운데 이는 이 해수욕장의 모래의 입자가 다른 지역 모래에 비해 가늘기 때문이다.

또 검은 모래의 태양열 흡수율이 흰색 모래에 배해 높기 때문에 모래의 온도가 높아 모래찜질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신경통이나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시민들이 여름에 이 해수욕장을 즐겨 찾고 있다.

삼양해수욕장은 검은모래로 유명하다. 해마다 8월이면 이곳에서 검은모래축제가 열린다.
▲ 삼양해수욕장 삼양해수욕장은 검은모래로 유명하다. 해마다 8월이면 이곳에서 검은모래축제가 열린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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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삼양해수욕장을 찾았더니 많은 시민이 자리를 깔고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 야간 피서객들 저녁에 삼양해수욕장을 찾았더니 많은 시민이 자리를 깔고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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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8월이 되면 이 해수욕장에서는 검은모래축제가 열린다. ‘삼양검은모래축제’는 제주도에서 특색 있는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낮에 부부만이 이 곳을 찾았기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저녁에 진주와 우진이를 데리고 삼양해수욕장을 다시 찾았다. 저녁이 되자 해수욕장 스탠드 위에는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자 자리를 깔고 있었다.

얕은 바닷속에서 부지런히 뛰놀았다.
▲ 진주와 우진이 얕은 바닷속에서 부지런히 뛰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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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 지친 아이들이 모래집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 모래집 짓기 놀다 지친 아이들이 모래집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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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모래 위를 걷는 것을 망설이던 진주와 우진이는 어느새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이윽고 옷을 입은 채 얕은 바다 속으로 걸어가 파도의 드나듦에 맞춰 뛰어다녔다.

뛰어다니기 지쳤는지 둘이 함께 모래로 두꺼비집을 짓기고 하고, 모래로 성을 쌓아 그 성안에 누워보기도 했다. 모래 자체가 아이들에게 더없이 흥미로운 장난감이 되는 듯 했다.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밤 10시를 알렸다.

해수욕장 야외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다.
▲ 샤워 시설 해수욕장 야외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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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야외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진주가 누나 역할을 한다고 동생을 씻겨주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아쉽다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차에 올랐는데, 5분쯤 지나니 아이들은 깊은 잠이 빠져들었다. 시간도 늦었거니와 너무 열심히 뛰어논 탓이다.

삼양동 해안에서 검은 돌담으로 만들어진 포구와 검은 모래로 뒤덮인 해수욕장이 고단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든지 삼양 해안에 가면 아직 병들지 않은 건강한 토종 제주바다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태그:#삼양 바닷가, #검은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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