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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사과하고, 책임을 가리고 넘어가야지요.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죠. 고유가 불안은 오래전부터 예상됐었는데, '고환율'이라는 완전히 정반대 정책을 써놓고, 국민들만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말이죠…."

 

1시간 30여분간의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도 그의 이야기는 반복됐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김진표 민주당 최고위원. 지난 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한 그는 경제통이다. 참여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 11일 오후 18대 국회가 처음 열리던 날 그를 만났다. 오전엔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던 그는 오후엔 국회 개원식과 연이은 회의 등에 바쁜 모습이었다.

 

"70~80년대식 정부 주도 성장마인드가 정책 실패 원인"

 

이명박 정부 초기 경제 실정(失政)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자가 '경제팀에 대해 국민과 시장의 불신이 심각하다'고 말하자, 그는 곧바로 "지난 4개월간 정부는 시장의 안정을 추구하기 보다는 교란자 역할이었다"고 혹평했다.

 

'왜 그랬을까'라고 되묻자, 그는 "솔직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제 기름값과 원자재값 상승, 이에 따른 물가불안 등은 이미 작년부터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예견돼 왔던 것이었고, 현 경제팀이 이를 모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최근 일본을 비롯해 세계 어떤 나라도 이 같은(고환율) 정책을 쓴 나라가 없었다"면서 "그런데도 우리는 고환율 정책을 쓰면서 물가폭등을 가져왔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며 씁쓸해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결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70~80년대식 정부 주도 성장지상주의가 핵심 아니겠어요. 고환율 정책을 통한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산업마인드에, 조급한 성과주의까지 겹친 것이죠. 지난 4개월은 사실상 완전실패로 끝났다고 봐야죠."

 

그의 최고위원 선출은 민주당 내에서도 의외로 평가받는다. 정치 경력도 그리 길지 않고, 당내 어느 계파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순수 경제관료 출신으로 당내 선출직 자리에 입후보해 당선된 전례도 없었다.

 

김 최고위원은 "대의원들이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제전문가를 선택해 준 것이 아닌가 한다"고 의미를 찾기도 했다.

 

- 현재의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하는데요. 대통령부터 집권여당 핵심인사까지 "제2의 IMF"라고 언급할 정도인데, 현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물가와 유가 등 각종 통계를 보이며) 뭐하나 좋은 것이 없죠. 앞으로 잘못 관리하면 정말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데, 이건 경제책임자들의 위기론 조장도 한 몫 하고 있어요.

 

내가 장관했을 때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제 '위기'라는 말을 한 적 있습니까? 야당이나 언론에선 (그런 말을)할 수 있죠. 하지만 경제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위기다'라고 말하면 안되죠. 오히려 시장의 불안만 커지게 됩니다."

 

"참여정부 때도 7중고 겪었지만 한번도 위기라고 한 적 없어"

 

- 참여정부 초기 때도 경제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때 처음 재정경제부 장관 맡았을 때, '7중고(重苦)를 겪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대외적으로 북핵 위기를 비롯해, 이라크전쟁, 사스(SARS) 등이 일어났죠. 대내적으로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이 터졌고, 카드채 부실, 신용불량자 급증, 화물연대 파업까지 겹쳤죠."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목소리는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김 최고위원은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우리 신용등급을 2단계나 낮췄다"면서 "카드 사태로 엘지카드사가 도산했고, 신용불량자가 400만까지 늘었지만, '위기'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 최고위원은 "자꾸 대통령이 위기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쇠고기 사태로 야기된 정치적 위기를 (경제위기론으로) 바꿔보려는 것 같다"면서 "이는 오히려 경제주체들을 심리적 패닉상태로 몰아가고, 우리 경제의 대내외 신뢰도를 더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4개월간 정책실패의 핵심으로 환율정책을 꼽았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고환율 정책을 써서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이) 잠깐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가기 힘들죠. 제품을 만들 때 부품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데, (고환율로) 부품값이 오르고, 가격경쟁력이 좋아지지 않는 거죠. 대신 물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2배 이상 폭등하고, 실질 소득은 줄고, 덩달아 소비 급감하는데 어느 기업이 투자할 수 있겠어요?"

 

목이 말랐던지, 책상 위에 있던 물을 마셨다. 김 최고위원의 말대로 경제지표들은 온통 잿빛이다. 사상 최고치의 물가와 소비감소, 기업들의 설비투자 역시 크게 줄었다. 그는 "정책 실패의 책임을 차관에게만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장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최중경 전 차관은 참여정부 때도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겨 밀려났는데.

"당시엔 고유가와 원자재값 급등이라는 해외요인이 크지 않았어요. 대신 미국의 북핵 선제공격론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쉽지 않았죠. 거기에 카드사태로 내수가 급속히 붕괴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버텨준 것이 수출이었습니다.

 

정부에선 내수를 진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수출유지를 위해 한때 고환율 정책이 필요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쓰지 말아야할 고환율로 오히려 물가를 올리고 내수 소비를 줄어들게 하고 있는것이 다르죠."

 

"강남 아파트값은 더 떨어져야..."

 

일종의 해명인 셈이다. 김 최고위원은 "환율정책에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할 경우 오히려 외환투기꾼에게 이용 당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정부는 '시장 개입을 자제하겠다, 다만 투기꾼의 개입을 막기위해 변동폭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도의 언급만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물었다. '김 최고위원이 현재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답은 간단했지만, 해법은 쉽지 않아 보였다.

 

"현재 경제상황이 고물가 속에 저성장 구조로 가고 있죠. 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어렵죠. 무엇보다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제 주체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물가를 잡고, 경제가 안정국면으로 접어들게 해야죠."

 

최근 서울 강남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에서의 부동산 값 하락에 대해선, "급격한 아파트 값 붕괴는 안 좋을  수 있다"면서도 "강남 아파트 값은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국토해양부에서 재건축단지의 규제완화 방침으로 부동산시장이 다시 들썩거린다'고 하자, "현 경기 침체를 부동산 시장 완화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신 일부 부동산 관련 세금에 대해선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 그는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의) 보유세를 완화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라며 "취득세 등 거래세는 낮추고, 장기간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보유세나 양도소득세 등은 보완할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FTA 비준 처리는 미 의회 상황 봐가며"

 

18대 국회에서 논란이 될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 처리와 공기업 민영화 등에 대해서도 김 최고위원은 분명한 입장이었다.

 

그는 "한미FTA 비준안이 발효되느냐의 여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 의회의 태도에 달려있다"면서 "미 정부가 의회에 비준법안을 낼 때까지 우리는 피해대책을 보완하고 점검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그동안 미 의회를 압박하기 위해 먼저 비준안을 처리해야한다는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쇠고기 협상이 미 의회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지만, 현 정부가 이를 너무 쉽게 선물로 써 버렸다"면서 "이번 국회 때 가축법을 개정하려는 것도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는 "전기, 수도 등에 대해서 (정부가) 민영화 안하겠다고 하지만, 정말로 확실히 안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철저하게 국민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서 민간에 맡길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당 여부를 물었더니, "당연히 찬성"이라고 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개혁세력의 통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또 김 의원은 180석이 넘는 거대여당을 상대로, 이명박 정부의 성장드라이브 독주를 막기엔 야당의 힘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대신 '촛불민심'에서 보여준 국민의 힘이 앞으로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물론 민주당이 국민과 함께 갈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태그:#김진표, #민주당, #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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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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