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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과 권력의 문제인가? 아니면, 제도 자체가 원래부터 이런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그동안 방치해왔던 것은 또 무엇인가?

 

최근 막강한 심의 권한을 여지없이 휘두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보면서 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방송통신심의위는 전혀 새로운 규제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관련 정보와 게시글을 포털사이트에서 삭제토록 하는가 하면 민감한 정치 사회적 현안을 다룬 보도 내용 등에 대해 잇달아 규제조치를 내려 논란을 빚고 있다.

 

물론 민감한 정치 사회적 현안과 관련된 사안이라고 해서 방통심의위가 그것을 피해갈 이유는 없다. 문제는 민감한 정치 사회적 현안일수록 그 심의와 결정에 있어서 신중하고 사려 깊은 판단이 필요한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엄정하지도 않고 중립적이지도 못한 방통심의위

 

단적인 사례가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문제와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다룬 <PD수첩>에 대한 심의결정이다. 방통심의위는 17일 제작진의 의견 청취 후 <PD수첩>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결정을 내렸다. 심의 제재 결정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의 제재 결정이다.

 

이 문제는 이미 범국민적 관심사가 돼 있다. 정부 여당은 공공연하게 <PD수첩>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5명의 전담 인력을 투입해 <PD수첩>을 수사하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상당수 신문들 역시 연일 <PD수첩>을 공격하고 있다. 정부 여당에 보수언론까지 가세한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방통심의위의 심의는 보다 엄정해야 마땅했다. 권력의 공격이 거센 만큼 방통심의위는 훨씬 더 중립적이며, 권력의 공격적 시각을 견제해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최소한의 균형도 맞추지 못했다.

 

절차부터 그랬다. 방통심의위는 합의제 기구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가 각기 위원을 추천하게 돼 있다. 의사결정을 위해 다수결이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위원회의 운영 원칙은 어디까지나 합의제가 기본 정신이다. 정치적 소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PD수첩> 심의는 야당 추천 위원 3명이 불참한 가운데 강행됐다. 야당 추천 위원들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예단'을 갖고 심의를 강행하려 한다는 점이었다.

 

당사자 의견 청취를 위해서는 심의규정 위배 사항을 먼저 명확하게 해야 하는 데 그런 사전 심의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 채 당사자 의견청취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충분한 심의 없이 이미 결론을 내놓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또 자신들의 발언을 제지하는 등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정부 여당 추천 위원들은 이들 '소수 위원'들의 항의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당 추천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심의를 강행했다. 위원회는 깨졌다. 당연히 그 심의 결정 또한 내용적 정당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방통심의위는 그들 스스로 합의제 위원회 운영의 원칙을 깸으로써 그 정당성을 의심받게 됐다. 해보나 마나 '6대3'인 '6:3위원회'로는 심의 대상으로부터 권위는커녕 최소한의 존중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사실상 방통심의위의 '정치적 파탄'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원인은 사람?

 

방통심의위의 정치적 파탄은 일찍이 예고됐다. 조·중·동 광고주 압박 관련 게시글 삭제 요청은 표현의 자유·시민운동·소비자운동과도 직결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처음부터 법정 민간기구가 다룰 사안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치열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시민사회에서 합의를 이뤄가야 할 사안이지만, 굳이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면 사법부의 판단, 나아가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방통심의위원들은 용감하게도 월권적 '위법 판단'을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방통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이전 방송위원회에서 하던 방송 심의 기능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통신 심의 기능을 통합한 기구다. 통합하면서 특별하게 심의기능 등이 특별하게 더 추가되거나 그 권한이 강화된 것은 없다. 심의규정 같은 것도 이전의 것을 '주어'만 바꾸어 거의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 방송위원회나 정보통신위원회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방송 심의나 인터넷 게시물 심의와 관련해 공정성 시비나 정치적 논란이 빚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법과 규정, 제도가 별로 바뀐 게 없다면 권력이 바뀌고, 사람이 문제란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바뀐 권력과 사람들이 그런 권한을 견제 없이 마구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법과 제도가 그만큼 허술하거나 시대착오적이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고칠 수 있을 때 무엇을 했던 것인지 통렬한 각성이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태그:#방송통신심의위원회, #PD수첩 ,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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